김영주 종근당 대표 등 주요 제약사 경영진 참석
[서울=뉴스핌] 김신영 기자 = 정부가 추진 중인 약가제도 개편안에 대해 제약·바이오업계가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포기 선언"이라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개편안이 강행될 경우 연구개발(R&D) 투자 위축과 의약품 공급 불안, 대규모 일자리 감소로 이어져 국민 건강과 산업 경쟁력을 위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는 22일 오후 서울 방배동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대강당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달 28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보고된 정부의 약가 개편안은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다"며 "시행을 유예하고 산업계와 함께 합리적인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제22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개최하고 내년부터 제네릭 약가 산정률을 현행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53.55%에서 40%대로 낮추기로 결정했다. 적용 대상은 주로 2012년 이후 약가 조정이 없던 품목들이다.
비대위는 이같은 약가 인하 정책이 현실화 될 경우 연간 최대 약 3조6000억원 규모의 매출 감소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해 전체 약품비(26조8000억원) 가운데 제네릭 비중(53%)과 예상 인하율(25.3%)을 적용한 결과다.
현재 국내 상위 100대 제약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4.8%, 순이익률은 3%에 불과해 추가적인 약가 인하를 감내하기 어려운 구조다. 비대위는 "제약산업은 특성상 한 번 기반이 무너지면 장기간 회복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약가 인하는 제약산업의 연구개발과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크다. 국산 신약 41개, 파이프라인 3233개, 올해 누적 기술수출 20조원 등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산업 성장 동력은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의약품 설비투자는 2023년 1조9327억원에서 2024년 2조6923억원으로 증가했지만, 약가 인하로 수익성이 악화될 경우 이러한 투자 기조를 유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비대위가 제시한 해외 연구 논문에 따르면 기업 수익이 1% 감소할 경우 R&D 활동은 1.5%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제네릭 약가 인하 기조는 제약바이오 5대 강국 목표 달성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나왔다. 1999년부터 2023년까지 누적된 약가 인하액은 약 63조원으로 약가 인하로 인해 시장 규모가 축소되면서 오히려 글로벌 경쟁지수를 역주행하고 봤다. 아울러 2012년 약가 인하 시 단기 재정 지출이 감소했으나, 소비자 부담은 13.8% 증가했다는 주장도 내놨다.
비대위는 국산 전문의약품, 특히 제네릭 의약품이 보건안보의 핵심 기반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초고령 사회에서 만성질환 치료를 뒷받침하는 필수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으며, 건강보험 재정 안정에도 기여해 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약가 인하로 채산성이 악화될 경우 공급 중단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2020년부터 2025년까지 6년간 의약품 공급 중단은 총 147건 발생했으며, 이 중 채산성 부족이 원인인 경우가 38.6%에 달했다. 특히 항생제, 분만유도제, 신생아 호흡곤란 치료제 등 필수의약품 품절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원료의약품 자급 기반 약화도 문제로 지적됐다.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023년 25.4%, 2024년 31.4%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일부 항생제 계열은 해외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비대위는 "약가 인하는 저가 해외 원료 의존을 심화시켜 공급망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고 밝혔다.
고용 감축에 대한 경고도 나왔다. 제약산업은 매출 10억원당 고용유발계수가 4.11명으로 반도체(1.6명)보다 높아, 약가 인하가 곧바로 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비대위는 최대 25% 약가 인하를 가정할 경우 약 1만4800명의 실직이 불가피할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생산시설과 연구시설이 전국에 분포해 있어 일자리 감소가 지방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지역경제 위축도 우려했다.
아울러 비대위는 이번 약가제도 개편은 앞서 시행한 시장형 실거래가제도의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요양기관의 초저가 낙찰과 과도한 할인 경쟁을 부추겨 제약사의 정상적인 영업 구조를 훼손하고, CSO(판촉영업자) 의존 심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장형 실거래가제는 지난 2014년 약가 절감액이 제약 연구개발 등으로 선순환되지 않고 대형병원에 집중된다는 비판 속에 폐지된 바 있다.
비대위는 약가 인하 정책에 대한 체계적인 평가와 점검도 요구했다. 1999년 이후 건보 재정 절감 등을 이유로 중복적·반복적으로 약가 인하가 이어졌으나, 이로 인해 제약산업의 수익 구조, 투자 여력, 연구개발, 시장, 국민 후생 등에 미친 영향에 대한 입체적·종합적·정량적 평가는 없었다는 이유다.
비대위는 "약가는 단순한 재정 절감 수단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정책"이라며 "예측 가능성과 공급 안정성을 고려한 약가 정책 패러다임 전환과, 산업계 의견을 제도적으로 반영할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비대위에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한국신약개발조합, 한국제약협동조합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제약업계 경영진들도 자리했다. 김영주 종근당 대표와 윤재춘 대웅 부회장, 김우태 구주제약 회장, 윤성태 휴온스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다.
sykim@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