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빌라촌 곳곳 '추진위' 간판만 무성
토지 확보 난항에 "언제 될지 몰라"
[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이 일대 신속통합기획 구역은 이미 결정이 나 내년에 이주에 들어가니 성공한 사례죠. 반면 지역주택조합은 몇 년을 끌다 지금은 관계자들이 전화조차 받지 않습니다. 사실상 없어진 셈입니다. 그래서 손님들이 지주택을 물어보면 아예 '모른다'고 손사래를 칩니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에서 만난 중개사 A씨는 지도 위 두 사업지를 번갈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명암이 갈린 두 정비사업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이다.
면목동 일대는 현재 서울시 정비사업의 축소판과도 같은 모습이다. 한쪽에서는 수년째 답보 상태에 머문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주민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는 반면, 바로 옆 블록에서는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사업이 본격 궤도에 오르며 속도를 내고 있다. 같은 생활권임에도 불구하고, 정비사업 추진 방식에 따라 체감 온도와 기대감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 "중개업소도 손사래"…지역주택조합 빈 사무실만 곳곳에

면목2동 인근 골목을 들어서자 빛바랜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면목2동지역주택조합'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건물 외벽은 세월의 때가 묻어 누렇게 변했다. 사무실에 연락을 걸고 출입을 시도했지만 문은 잠겨 있었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인근 부동산에 지주택 매물을 묻자 돌아온 반응은 냉담했다. 중개사 A씨는 "지주택은 욕을 많이 먹어서 우리 같은 토박이 부동산들은 아예 끼지도 않는다"며 "잘못 소개했다가 사고가 나면 그 원망을 어떻게 감당하느냐. 도매급으로 욕먹는다"고 손사래를 쳤다.

지역주택조합(지주택) 사업은 조합원이 납부한 분담금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주택을 건설하는 구조다. 이론상으로는 시세보다 저렴하게 내 집 마련이 가능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위험 요인이 적지 않다. 사업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토지 소유권의 95% 이상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른바 '알박기'나 토지주 반대에 막혀 사업이 장기간 표류하거나 좌초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 지주택 역시 2017년 주택 10여 채를 매입하며 출발했지만, 이후 토지 확보에 난항을 겪으며 사업이 사실상 멈춰 선 상태다. 인근 공인중개사들은 "사업을 벌여놓고 토지 매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동네가 '이 빠진 호랑이'처럼 흉물스럽게 방치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현장에서 마주한 '지주택 발전대책위원회'와 '지역주택조합' 사무실은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유리창 너머로는 사람이 빠져나간 텅 빈 공간과, 먼지가 쌓인 채 놓여 있는 낡은 모형도만이 남아 사업의 정체를 상징하듯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안심보장증서'를 믿고 가입했던 조합원들이 분담금을 돌려받지 못해 소송을 제기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조합 측은 가입 당시 '2017년 12월까지 설립인가를 신청하지 못하면 분담금 전액을 환불하겠다'는 이른바 '안심보장증서'를 교부하며 가입자를 끌어모았다.
하지만 법원은 총회 결의 없이 집행부 독단으로 발급된 이 증서를 '무효'로 판단했고, 이를 근거로 한 가입 유도를 사기로 판단했다. 결국 피해자들의 줄소송과 탈퇴 러시만 이어지는 중이다. A중개사는 "지주택 쪽은 내부 사정을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며 선을 그었다.
◆ 길 건너편은 '활기'…신통기획 확정에 투자자 발길
하지만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반대편 블록은 전혀 딴판이다.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개발 기대감이 감지됐기 때문이다.
이곳은 최근 서울시가 기획안을 확정하면서 최고 35층 높이의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할 준비를 마쳤다. 이곳은 침수 지역으로도 알려지며 서울 내 개발 낙후 지역 중 하나로 지목됐지만, 연이어 신통기획 대상지로 선정된 데다 면목선 경전철 신설 호재까지 겹치며 투자자들의 발길이 간간이 이어진다. 이날 뒤늦게 경매로 나온 물건들을 늦게서야 언질 받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내방객도 있었다.
중개사 B씨는 "면목 5동은 신통기획이 확정된 뒤 선정 내년 이주가 예상된다"며 "신통기획으로 추진 중인 지역들은 빠르게 사업이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투자 금액도 오른 편이다. 중개사 C씨는 "이미 땅값이 많이 올랐다. 3.3㎡당 3000만원이 넘어가는데, 대지 지분이 큰 매물은 초기 투자금이 많이 들어가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며 "경매 물건을 노리거나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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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정비 추진 방식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 가운데, 지지부진한 사업으로 엎어진 사업장들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서울 시내 지주택 사업장 총 118곳 중 약 74%에 해당하는 87곳이 모집 신고 단계에 머물러 있다. 오래된 빌라나 다세대·다가구 주택과 같은 저층 주거지가 밀집해 있는 노후 지역에 산재한 지주택 사업 특성상 빠른 교통정리를 통해 정비 절차를 재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지주택은 조합원들의 사업이다 보니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문제가 불거진다"며 "신통기획으로 다시 진행하는 절차를 통해 정비 속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doso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