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시공 모두 '단독 경쟁'…컨소시엄 관행 깨는 첫 사례
서울시 '자율 추진위 1호'…7~8개월 일정 단축 효과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송현도 기자 = "올림픽선수기자촌 재건축은 노후 아파트를 정비하는 수준이 아니라 한국 아파트 역사를 다시 쓰는 프로젝트입니다. 둔촌주공에 이어 또 한 번의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재건축이 될 겁니다."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재건축 추진을 총괄하는 유상근 추진위원장은 향후 비전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강조했다. 기존 재건축 사업지와는 다른 방식의 추진 전략을 통해 서울을 넘어 국내 정비사업사의 흐름 자체를 바꾸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 한 달 만에 동의율 70% 채워…의지가 만든 '역대급' 속도
올림픽선수촌아파트는 올림픽훼밀리타운, 아시아선수촌과 함께 '올림픽 3대장'으로 불리는 대단지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선수와 기자 숙소로 조성된 이후 서울 강동권을 대표하는 주거지로 자리매김해왔다. 기존 최고 24층, 122개 동, 5540가구 규모에서 재건축을 거치면 지하 4층~지상 45층, 총 9200가구의 '미니 신도시급' 메가 단지로 재탄생할 전망이다.
특히 압도적인 추진 속도가 눈에 띈다. 지난 9월 말 재건축 추진위원회 구성 동의서 접수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동의서 4300장을 확보하며 동의율 70%를 넘어섰다. 올해 초 일반 재건축에서 서울시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자문 방식으로 전환한 이후 정비사업 일정에도 속도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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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상근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장 [사진=정영희 기자] |
서울시 최초로 자율 방식 추진위 구성을 추진한 단지이기도 하다. 시는 올 10월부터 소유주간 갈등이 없고 사업 의지가 큰 단지에 한해 주민 자율에 맡긴 추진위 구성을 허용하고 있다. 관할 부서에 여러 사업이 몰려 사업이 늦어질 수 있는 공공지원 방식 대비 속도가 빠르다. 향후 정비구역 지정, 조합 설립까지 이어지는 전체 일정을 7~8개월 단축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추진위는 내년 여름쯤 조합 설립을 목표로 잡았다.
이 단지 용적률은 158%로 낮아 사업성이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유주 대상 설문을 통해 재건축 후 용적률을 약 270% 수준으로 맞춰나가고 있다. 재건축 초기 소유주들이 민감하게 보는 또 하나의 지표는 추정 비례율이다. 높을수록 조합원들의 권리가액이 늘어나고 분담금이 줄어들어 조합원에게 유리하다.
유 위원장은 "과거와 달리 요즘 추정 비례율은 고급화 수준을 정하는 지표"라며 "압구정도 비례율이 60%대인데 누구도 이 단지를 사업성이 나쁘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올림픽선수기자촌도 주민들의 고급화 요구에 따라 비례율이 80%가 될 수도, 100%가 넘을 수도 있다"며 "향후 방향성은 설문조사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설계사 선정 방식에서도 혁신을 선택했다. 일반적으로 대규모 정비사업은 여러 설계사가 컨소시엄 형태로 입찰에 참여하지만, 추진위는 이를 아예 금지했다. 창의적인 설계를 받기 위해선 단독 입찰이 최선이라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다. 유 위원장은 "4~5개의 설계사가 독립적으로 참여해 과거 88올림픽이라는 헤리티지를 살리면서도 미래지향적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한 구조를 만들고 있다"며 설계비 규모만 460억~500억원으로 국내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재건축 시장에서 가장 큰 이슈는 조합원 분담금과 공사비 상승이다. 유 조합장은 "고급화 정도나 커뮤니티 규모 등 재건축 후 모습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아 분담금을 벌써 말하긴 어렵다"며 "규모의 경제가 압도적으로 큰 단지이기 때문에 대량 발주를 통한 단가 절감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 '비례율=사업성' 시대 끝…"고급화 수준이 좌우"
유 위원장은 재건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속도 경쟁'이 아닌 '리스크 관리'를 첫손에 꼽았다. 그는 사례로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을 언급하며 "단지 규모나 완성도만 보면 긍정적 평가가 가능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기와 맞물려 의사결정이 지연되면서 사업 기간이 늘어났고 간접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고 짚었다. 이어 "속도만을 앞세우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조합장 역할의 무게도 한층 커질 전망이다. 유 위원장은 "조합장은 단순한 대표직이 아니라 기업 CEO에 가까운 자리"라며 "개인의 명예보다 예측 불가능한 시장 환경 속에서 수천억 원대 조합원 자산을 책임지는 만큼, 무엇보다 위기 대응 역량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소유주 간 갈등 관리에도 자신감을 보였다. 그가 택한 방식은 '유튜브 소통'이다. 코로나19 시기 대면 설명회가 어려워지며 시작한 채널을 통해 2분 내외의 핵심 영상으로 조합원과 소통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 위원장은 "짧고 명확한 정보일수록 소유주들의 이해도가 높다"며 "영상 의견을 반영해 업무를 조정하는 상호 피드백 구조가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재건축의 꽃은 시공사 선정이다. 올림픽선수기자촌의 조건은 건축의 질과 기술 활용, 고급화의 세 가지다. 그는 "건축의 본질은 인간과 건축물의 조화인데 한국 아파트는 오랫동안 이를 잊고 살았다"며 "기능적 관점에서 로봇이나 AI가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들어올 수 있는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는 같은 평수라도 고급화 수준에 따라 가치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며 "국민소득이 올라갈수록 고급화는 필연적"이라고 부연했다.
설계사와 마찬가지로 시공사 선정에서도 '단독 경쟁'을 도입할 계획이다. 컨소시엄이 관행이던 대규모 정비사업 구조를 완전히 뒤집는 전략으로, 공정 경쟁과 차별적 제안을 받기 위한 의도다. 추진위는 2027년경 국내 최대 규모의 시공사 경쟁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벤치마킹하는 단지가 있냐는 질문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유 위원장이 참고하는 건 공동주택이 아닌 호텔이다. 그는 "세계 어디든 좋은 호텔을 보면 건축물 자체가 가진 예술성이나 디테일이 압도적"이라며 "금전적인 부분에 연연하지 않고 품질을 높이겠다는 생각으로 속도와 고급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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