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상용 기자 = 뉴욕이 새 시장을 맞았다. 34세 정치 초년생 조란 맘다니다.
유대계 금융자본의 견고한 성채이자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인 뉴욕에서, 무슬림계 친(親) 팔레스타인 성향의 맘다니는 등장부터 초현실주의 화풍처럼 생소했다.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 경선과 본선 유세를 지나며 생소함은 '확신의 돌풍'으로 변했고 이제는 도널드 트럼프의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 맞설 대항마의 반열에 올랐다.
뉴욕은 이민자들의 눈물과 열정으로 빚어낸 도시다. 미국 대부분의 도시가 저마다의 사연을 품었지만 미국 이민사(史)에서 뉴욕이 갖는 상징성은 각별하다. 자유와 기회의 땅으로 향하는 첫 관문이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인종의 용광로'다.
우간다 태생의 인도계 무슬림 이민자이자 평범한 대학 출신이라는 맘다니의 배경은, 쉼없이 선긋기를 하는 '배타적 마가'에 묻혔던 아메리칸 드림의 향수를 자극하기 좋았다.
맘다니가 미국으로 온 것은 7살되던 해지만 26살 생일을 맞은 2018년에야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 힙합을 즐겼고 앨범도 냈던 청년은 대학 졸업 후 저소득층의 주택 압류 방지 상담사로 일하며 부동산 불평등과 취약 계층 문제에 몰두했다 - 몸소 부대끼며 뉴욕 서민과 이민자의 애환을 함께 했던 시절이었다 한다.
많은 뉴요커들은 이 '듣보잡'의 신화가 끝나지 않기를, 가볼 수 있는 곳까지 가보기를 바랐다. 그 염원은 트럼프와 공화당의 색깔론 공세를 무력화할 만큼 강했다.
맘다니의 정치입문은 2020년 뉴욕주 하원의원 선거다. 4선의 '고인물' 정치인을 꺾고 퀸스 36구에서 당선됐다. 이후 연거푸 재선에 성공하며 뉴욕 서민의 주거권과 교통·사회복지 등 민생 문제를 풀기 위한 입법에 힘썼다.
그를 이슈 메이커로 만든 사건은 단연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를 뽑기 위한 당내 경선이었다. 민주당 텃밭인 뉴욕에선 당내 경선이 사실상의 본선과 다를 바 없다.
초반 1%에 불과했던 그의 지지율은 최종 경선에서 56%까지 치솟았다. 뉴욕의 터줏대감 앤드루 쿠오모를 제물로 삼았기에 스토리의 극적 효과는 배가됐다. 그만큼 새 인물에 대한 뉴욕의 갈증이 컸다.미국 현지 언론들은 당시의 맘다니 돌풍을 두고 '21세기 풍요 속 빈곤'에 지친 세대의 고단함을 반영한다고 평했다.
선거 과정에서 지지층을 넓혀나가는 방식도 기발했다.
뉴욕은 시민들의 정치기부금 1달러당 8달러, 최대 250달러까지 매칭 펀드를 제공한다. 맘다니의 캠프는 이를 적극 활용했다. 자원봉사단을 모으고 소액 기부자를 늘려갔다. 여기에 젊은층과 유색인종 유권자들이 적극 결합하며 맘다니의 선거자금은 불어났다. 내가 키운 후보라는 뿌듯함은 지지층의 투표 행렬로 이어졌다.
맘다니가 내건 공약은 맘다니스러웠다(파격이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도시"라는 캠페인 하에 30달러로 최저임금 인상(2030년까지), 임대료 동결, 시내버스 무상, 0세~5세 무료 보육, 시립 식료품점 설립 등의 급진적 정책을 외쳤다. 젊은층과 서민들의 폭발적 지지를 낳았던 그의 공약은 내년 1월1일 (시장 취임과 함께)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공약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이 길어질지, 정책 우선순위가 어떻게 매겨질지 역시 많은 뉴스들이 맘다니 주변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그의 도전과 성취에 따라서는 내년 가을 미국 중간선거 판세가 들썩일 수 있다. 그러하니 트럼프의 몽니에 맘다니와 뉴욕이 무탈할지도 관심이다. 물론 지금의 맘다니를 키운 것은 (다소 과장을 보태) 팔할이 트럼프다. 그의 몽니가 내년 정국 흐름의 새로운 자양분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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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뉴욕 시장으로 당선된 조란 맘다니 민주당 후보. [사진=로이터 뉴스핌] |
osy75@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