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루었다'가 파놓은 함정을 디테일하게 묘사
조용필, 김창완 등 레트로 한 배경 음악 인상적
외국 소설을 원작으로 쓴 각본은 다소 어색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우리가 박찬욱의 영화를 기다리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압도적인 스토리의 힘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또 한 장면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 미장센에 대한 기대다. 또하나는 인상적인 음악도 있다. 여기에 배우들을 적재적소에 써서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낸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베를린영화제와 부산영화제를 거쳐오면서 올가을 한국영화 중 가장 주목받는 작품이었다. 뒤집어 말한다면 주목할만한 별다른 작품이 없었다는 얘기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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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한 장면. [사진 = CJ ENM] 2025.09.25 oks34@newspim.com |
'어쩔수가없다'의 주인공 만수(이병헌)는 자신의 집 정원에서 회사에서 보내온 장어를 구우면서 '다 이루었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아내 미리(손예진)과 두 아이, 두 마리의 개, 어린시절 눈물을 삼키면서 이사를 나갔다가 다시 찾은 옛집. 더이상 완벽할 수 없는 삶이다.
그러나 영화의 시작에서 다 이룬다면 영화는 그대로 끝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회사가 만수에게 보낸 장어 선물은 해고통보였다. 만수는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 만의 전쟁을 준비한다. 그 전쟁 이야기가 기둥줄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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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영화 '어쩔수가없다' 포스터. [사진 = CJ ENM] 2025.09.25 oks34@newspim.com |
외양으로는 지지리 궁상스런 이야기 같지만 박찬욱 감독은 블랙코미디로 극을 이끌어간다. 웃프면서도 씁쓸한 현실을 유머로 풀어낸다. 영화는 긴장과 아이러니, 유머를 오가면서 쉼없이 내달린다. 만수는 정치인이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듯 재취업에 걸림돌이 되는 경쟁자들을 제거해 나간다.
재취업이 절실한 업계 베테랑 구범모(이성민)와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실력자 고시조(차승원), 잘나가는 제지 회사 반장인 최선출(박희순)이 그들이다. 만수는 치밀하지도 냉정하지도 못한 솜씨로 이들을 차례로 제거한다. 그와중에 만수의 아내 미리 역의 손예진은 코믹하면서도 때로는 섹시한 연기로 우중충한 이야기를 원색으로 채색한다. 여기에 구범모의 아내이자 연극배우 아라 역을 맡은 염혜란 등의 열연은 그 자체로도 충분한 볼거리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여기저기에 풍부한 상징을 배치했다. 예를 들어 경쟁자를 처치하여 시신을 파묻는 곳이 사과나무 밑이다. 또 살인을 위해 잠복해 있던 만수가 뱀에게 물리기도 한다. 마치 구약성서의 한 장면을 닮았다. 만수가 자동차로 경쟁자를 치지하는 장소는 마치 '헤어질 결심'에 나오는 바닷가와 비슷한 느낌의 장소다. 종이를 만드는 제지회사를 배경으로 종이의 종말과 디지털의 시작을 배치한 것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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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한 장면. [사진 = CJ ENM] 2025.09.25 oks34@newspim.com |
'헤어질 결심'의 송창식과 정훈희의 목소리가 인상 깊게 남아있듯이 '어쩔수없다'도 조용필(고추잠자리)과 김창완(그래 걷자), 배따라기(불 좀 켜주세요)와 같은 한국 대중가요의 명곡이 원곡으로 등장한다. 특히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영화관을 찢을 듯이 울려퍼지는 조용필의 목소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이 영화는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액스(AX)'를 원작을 한다. 봉준호가 '미키 17'을 내놨을 때도 그런 아쉬움이 있었지만 박찬욱도 그랬다. 굳이 외국 원작을 가져다가 각색하여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박찬욱이라면 얼마든지 매력적인 시나리오를 쓰거나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튼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사운드가 '빵빵한' 스포츠카를 타고 오프로드를 질주한 느낌이 든다. 박찬욱 영화의 장점과 단점이 한꺼번에 녹아있는 영화다.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