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실험에서 유방암 감소
예방 효과에서 치료 가능성
GLP-1 시장 급팽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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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당뇨병 환자들의 혈당 조절을 위한 약물의 핵심인 GLP-1(Glucagon-Like Peptide-1)이 비만 치료 효과를 앞세워 블록버스터로 부상한 가운데 암 치료 가능성까지 확인되면서 월가의 조명이 집중됐다.
일라이 릴리(LLY)를 포함해 비만 치료를 위한 GLP-1 유사체(Agonist) 약물을 공급하는 제약사들이 또 한 차례 성장 모멘텀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가 관련 업계와 투자자들 사이에 번지는 모양새다.
본래 GLP-1은 췌장에 작용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혈당을 높이는 글루카곤 분비를 억제하는 호르몬이다. 혈당이 올라갈 때 수치를 낮추는 기전을 가진 GLP-1은 위장 운동을 늦춰 음식물이 장내에 오래 머물도록 하는 한편 뇌의 포만 중추를 자극해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진 것으로 입증됐다. GLP-1 유사체를 이용한 비만 치료제가 제조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GLP-1과 암의 연관 관계는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호르몬이 체중 감량에 효과를 내는 만큼 비만과 관련성이 높은 암의 발병 위험을 낮추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 것. 대장암과 간암, 신장암, 췌장암, 유방암, 난소암 등 의학계는 10~13가지 암을 비만 관련 암으로 분류한다.
실제로 여러 관찰 연구 및 임상 데이터에 따르면 GLP-1 수용체 작용제(GLP-1 1RA)를 투여한 환자들에게서 인슐린을 사용한 환자나 DPP-4 억제제를 사용하는 환자에 비해 이들 암의 발생 위험이 유의미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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젭바운드 [사진=블룸버그] |
종양학 전문 저널 온콜로지 센트럴에 따르면 한 연구에서는 GLP-1 약물 사용자의 담낭암 위험이 65% 낮았고, 전체 비만 관련 암의 위험도 역시 41% 낮다는 통계가 보고됐다.
최근까지 연구에서 사람들이 체중을 감량할 때 암을 포함한 여러 질병의 발병 위험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 데 이어 내분비학회 연례회의에서 발표된 연구에서 GLP-1 작용제가 보다 직접적으로 암세포에 작용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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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이 릴리의 보스톤 소재 연구개발 센터 [사진=업체 제공] |
동물을 이용한 실험에서 GLP-1이 유방암 종양 크기를 축소시키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학회는 발표했다. 임상시험은 16마리의 쥐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쥐에게 16주 동안 GLP-1 비만 치료제인 젭바운드와 마운자로에 포함된 활성 성분인 티르제파타이드를 주사로 투여한 것.
주사를 맞은 쥐들은 약 20%의 체중 감량을 보였는데, 이는 인간이 약물을 복용했을 때 달성하는 체중 감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흥미로운 점은 쥐들이 체중 감량과 흡사한 비율만큼 유방암 종양의 크기도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의학 전문 매체 사이언스 데일리는 "이번 연구에서 종양 크기가 체중과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이번 임상시험이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최근까지 전임상 및 임상 연구에서 췌장암과 전립선암 등 특정 암에서 GLP-1 작용 기전이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한편 암세포 사멸을 유도하고, 대사를 개선시키는 등의 항암 효과를 낼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와 별도로 2025년 6월 미국임상종양학회(ASCO)는 17만명 이상의 당뇨병 및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관찰 연구에서 GLP-1 수용체 작용제가 14가지 비만 관련 암의 발병 위험을 일정 부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특히 대장암 위험을 떨어뜨린다는 의견이다.
GLP-1이 미국 식품의약청(FDA)으로부터 항암제로 승인 받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최근까지 연구 결과가 암 발생 예방 그리고 더 나아가 암 치료까지 가능성을 열었다는 데 월가는 의미를 둔다.
실제 항암 치료에 GLP-1이 적용되려면 동물에 이어 환자를 대상으로 수 차례의 대규모 임상 시험을 실시해 효능과 안전성을 입증해야 하고, 최근까지 나온 연구 결과를 최종 목적지까지 가기 위한 초기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장거리 마라톤의 출발 선에서 첫 발을 뗀 상황이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낙관적이다. GLP-1이 단순히 당뇨병 치료 효과를 가져오는 데 그치지 않고 체중 감량과 암 치료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작지 않다는 얘기다.
티르제파타이드의 적용 범위가 확대된 사례도 GLP-1의 암 치료 최종 승인까지 기대감을 높이는 대목이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2024년 미 식약처를 포함한 감독 기관은 티르제파타이드를 폐쇄성 수면무호흡증(OSA, Obstructive Sleep Apnea) 치료에 사용하도록 승인했다.
티르제파타이드는 GLP-1과 GIP(Glucose-dependent Insulinotropic Polypeptide, 포도당 의존성 인슐린 분비 촉진 폴리펩타이드) 등 두 가지 호르몬 수용체 모두를 동시에 활성화시키는 이중 작용제다. GIP는 십이지장 점막의 K 세포에서 분비되는 인크레틴 호르몬이다.
즉, 티르제파타이드는 GLP-1 뿐 아니라 GIP의 작용을 동시에 모방하는 복합 약물로, 기존의 GLP-1 유사체보다 혈당 및 체중 감소 효과가 더욱 강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GLP-1의 단점을 보완한다고 의료계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GLP-1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되 글루카곤 분비를 억제하는 반면 GIP는 두 가지 호르몬 분비를 모두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차이를 가진다. 최근 연구에서 GIP는 뇌 신경계에 작용해 음식 섭취와 체중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밝혀졌다.
월가와 외신들은 GLP-1 계열 약물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하게 진행될수록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의 범위, 즉 적응증도 크게 확대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GLP-1과 티르제파타이드의 항암 효과가 입증된다면 이미 블록버스터로 급부상한 약물의 시장 규모가 더욱 크게 확대, 일라이 릴리를 포함한 제약사들에게 강력한 성장 모멘텀이 될 전망이다.
주요 외신과 시장 조사 기관들은 2025년 전세계 항암제 시장 규모가 2520억달러에 이르고, 2029년까지 4410억달러로 팽창하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인구 고령화와 생활 습관 및 식습관으로 인한 비만 관련 암 발생률이 특히 가파르게 상승하는 추세다. 이는 항암제 수요를 늘리는 한편 제약사들의 신약 연구를 재촉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의학계에서 티르제파타이드 이외에 엑세나타이드와 리라글루타이드, 세마글루타이드 등 GLP-1 수용체 작용제가 암 생물학에 미치는 잠재적 효과를 둘러싼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꼬리를 물고 있다.
급팽창하는 항암제 시장에 GLP-1이 공식적으로 진입할 가능성에 베팅하기에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 없지 않지만 의료계의 연구가 암 예방 효과에서 치료 가능성으로 확대됐고, 소규모 동물 실험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 만큼 지속적인 관심을 둘 만 하다는 의견이다.
shhw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