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무죄 확정…10년 사법 리스크 마침표
AI·반도체·바이오 '뉴삼성' 성장축 재편
'눈에 띄지 않는' 컨트롤타워 재편 가능성도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서 완전히 벗어나며 본격적인 '이재용 시대'가 열린다. 대법원이 17일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하면서, 지난 10년간 삼성그룹의 발목을 잡아온 사법적 족쇄가 해소된 것이다. 2015년 7월 17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이 통과된 날로부터 꼭 10년 만이다.
이 회장은 2020년 9월 기소된 이후 4년 10개월 동안 재판에 매달려야 했다. 특히 1심과 2심 법정에만 110여 차례 출석하며 사실상 '절반의 경영'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에서 무죄가 최종 확정되며, 글로벌 경영과 미래 신사업 발굴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삼성 안팎에선 "이제 진짜 이재용식 리더십이 시작된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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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3월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삼성 청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SAFY)에서 열린 '청년 취업 지원 현장 간담회'를 마친 뒤 아카데미를 둘러보며 청년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핌DB] |
◆10년 리스크 마침표…삼성, 반격 준비
이 회장은 그간 재판 일정으로 인해 통상적인 경영 활동조차 제약을 받아왔다. 글로벌 현장 점검도 실무진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연말 대규모 인사나 조직 개편이 미뤄진 배경에도 이 회장의 재판 부담이 있었다는 분석이 많다.
반면 지금 삼성은 과감한 리더십이 절실한 시점이다. 삼성전자의 주력인 반도체 사업은 경쟁사 SK하이닉스에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을 선점당하며 위기감이 커졌다. 지난 2분기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6000억원대 영업이익을 예상하지만, 같은 기간 SK하이닉스는 9조원에 육박하는 실적을 예고하고 있다. 여기에 파운드리 사업의 수조원대 적자, 전례 없는 노사 갈등, 미국발 관세 변수까지 겹치며 이 회장의 리더십이 절실해진 상황이다.
이 회장은 올해 초 전 계열사 임원을 대상으로 "모든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이 훼손됐다"며 "사즉생의 각오로 과감하게 행동하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 바 있다. 삼성의 기술력 복원과 미래 전략을 이끌 실질적 '총사령관'으로서의 행보가 이제야 가능해진 셈이다.
◆M&A 시동 걸린 삼성…글로벌 경영 본격화
사법 리스크 해소 이후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투자와 M&A 확대다. 최근 삼성은 로봇(레인보우로보틱스), AI(옥스퍼드 시멘틱), 전장(마시모 오디오), 헬스케어(젤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쇄적인 인수에 나서며 미래 포트폴리오를 확대 중이다. 이 회장은 지난달 13일 대통령 주재 경제인 간담회에서 "20~30년 후 다음 세대 먹거리를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AI·반도체·바이오에 집중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특히 지난 9일부터 미국 선밸리에서 열린 '앨런&코 콘퍼런스'에 참석한 것도 눈길을 끈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 국내 재계 인사 중 유일하게 초청돼 글로벌 투자자·기업인들과 교류를 이어갔다. 앞서 3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면담하고, 전기차·스마트폰 기업을 두루 만나며 중국 내 네트워크 강화에도 나섰다. 이어 일본 출장에서도 주요 부품 협력사를 만나는 등 적극적인 현장 경영에 나섰다.
이제 법적 제약이 완전히 해소된 만큼 보다 과감하고 전방위적인 전략 구사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 회장은 이 회장은 지난 14일 오전 서울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귀국하며 "여러 일정을 하느라 피곤하다"며 밝히며, 하반기 실적 전망에 대한 질문에는 "열심히 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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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3월 20일 서울 강남구 멀티캠퍼스 역삼 SSAFY 서울캠퍼스에서 열린 청년 취업 지원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 향하며 로비에 마중 나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스핌DB] |
◆컨트롤타워 복원 신호? 뉴삼성 재편 기대
이 회장의 무죄 확정은 단순한 법적 리스크 해소를 넘어, 그룹 전반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삼성은 지난해 말 삼성글로벌리서치 내에 경영진단실을 신설하며, 과거 미래전략실 기능의 일부를 복원한 바 있다. 이번 판결로 보다 체계적이고 공식적인 그룹 의사결정 구조를 재정비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그룹 내 의사결정 구조를 재정비할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은 삼성 내외부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돼 온 만큼 부활할 가능성이 높다"며 "시기는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완전히 끝난 이후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과거 미전실에서 나타난 문제를 의식해 외부에 드러나는 공식 조직보다는 눈에 띄지 않게 운영되는 실무 중심의 조직 형태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뉴삼성'의 미래 비전도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지난해부터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이라고 강조하며, 삼성의 차세대 경쟁력을 기술 기반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누차 밝혀왔다. 이 회장은 지난달 13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 경제인 간담회에서 "당장의 경제 위기도 중요하지만, 20~30년 후 다음 세대 먹거리를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에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재판 준비로 인해 급변하는 산업 트렌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라며 "무죄 확정 이후에는 이재용 회장이 대규모 투자, 조직 개편, 글로벌 파트너십까지 전방위로 진두지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sy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