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레바논 정부가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도움을 받아 리타니강(江) 남쪽 지역에서 친(親)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무장을 대부분 해제시켰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레바논 중앙정부는 그동안 정치적·군사적 기반이 취약해 막강한 전투력을 보유한 헤즈볼라에 손을 대지 못했는데, 작년 이스라엘의 집중 공격을 받은 헤즈볼라가 역대 가장 취약한 상황에 빠지자 군사적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작년 11월 휴전 협정을 체결하면서 리타니강 이남의 무장 해제에 합의했지만 실제로 헤즈볼라가 이 합의를 지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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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 한 마을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 "리타니江 이남 헤즈볼라 무장 80% 해제"
나와프 살람 레바논 총리는 이날 공개된 WSJ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정부는 남부 지역에서 민병대(헤즈볼라)의 무장 해제라는 목표의 약 80%를 달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남부 지역 뿐 아니라) 레바논 전역에서 중앙정부가 무기를 독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아랍의 고위 관계자들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미국에서 나온 정보를 레바논에 넘겨준 덕분에 헤즈볼라의 무기 저장고와 군사 기지를 찾아 파괴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 같은 레바논의 활동에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WSJ은 "레바논군은 헤즈볼라에서 압수한 무기 중 일부는 파괴하고, 사용 가능한 무기는 부족한 자체 무기고를 강화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지난해 11월 말 휴전 협상을 타결했다.
미국이 마련한 휴전안은 이행기간 60일 안에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에서 완전 철수하고, 헤즈볼라는 국경에서 약 30㎞ 떨어진 리타니강 이북으로 모든 중화기를 옮긴다는 내용이다.
이스라엘이 철수한 자리에는 레바논군과 유엔평화유지군(UNIFIL)이 투입돼 무력 충돌 방지와 치안·순찰 업무를 맡게 되고, 협정이 잘 준수되는지 감시하기 위해 미국과 프랑스가 참여하는 5개국 감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 미국 등 선호하는 대통령 선출도 더욱 탄력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휴전은 올해 1월 레바논이 미국·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선호하는 조제프 아운(61) 군 참모총장을 새 대통령으로 선출하면서 더욱 탄력을 받았다. 레바논이 새 대통령을 선출한 것은 전임 대통령이 퇴임한 2022년 10월 이후 약 2년 3개월 만이었다.
그는 대통령 선출 직후 "레바논의 무기는 오직 레바논 정부군이 독점적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아운 대통령은 지난 2월 유엔 주재 레바논 대사와 국제사법재판소(ICJ) 재판관 등을 역임한 살람을 총리를 임명했다. AP 통신은 "살람은 베이루트 출신의 저명한 수니파 무슬림 가문의 일원"이라고 했다.
1975~1990년 내전을 겪은 레바논은 정파간 세력 균형을 위해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가 맡기로 합의했다.
아운 대통령과 살람 총리가 호흡을 맞추면서 헤즈볼라의 무장 해제와 휴전의 안정화는 더욱 속도를 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 헤즈볼라가 완전히 무기를 내려놓을 지는 미지수
헤즈볼라는 리타니강 이북의 나머지 지역에서도 무장 해제에 대한 압력을 받고 있다.
WSJ은 "레바논 고위 안보 관계자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베이루트 공항 등 리타니강 이북 지역의 보안 통제권을 넘겨줘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십년간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해 온 헤즈볼라가 순순히 무기를 내려놓을 지는 미지수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강제 무장 해제는 레바논 중앙정부에도 큰 위험이자 부담 요소가 될 수 있다.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계기로 결성된 헤즈볼라는 정치·외교적으로 이란과 시아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으며, 중앙정부보다 더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군사조직이면서 동시에 정당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으며 국회의원도 보유하고 있다.
미 존스홉킨스 대학교 외교정책연구소의 란다 슬림 연구원은 "헤즈볼라가 스스로 무장 해제할 의지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레바논 정부가 무력으로 무장 해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헤즈볼라는 자신들이 무장 상태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레바논 정부군이 취약하고, 막강한 이스라엘과 상대해야 하며, 이웃 나라인 시리아에서 수니파 극단주의자들의 폭력으로부터 소수자인 시아파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WSJ은 "헤즈볼라의 의도와는 달리 그들이 재무장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작년 12월 시리아에서 바샤르 알 아사드가 축출되고 이란과 헤즈볼라에 적대적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헤즈볼라는 이란에서 시리아를 거쳐 이어지는 주요 무기 밀수 경로를 잃었다는 것이다. 또 중앙정부의 단속으로 베이루트 공항을 통한 자금 조달도 어려워졌다고 한다.
ihjang6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