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시골 고향장터에 사람은 없지만 건강과 안전이 제일"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하늘은 높고 바람은 따사롭다.
지난 해 태풍 '미탁'에 이어 지난 9월 초 경북 울진과 영덕을 비롯 동해연안을 강타한 '마이삭'과 '하이선'의 매서운 발톱에도 용케 견딘 들녘은 손으로 움켜잡고 싶을 만큼 탐스런 황금빛이다.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추석명절을 하루 앞둔 30일, 사람들로 북적거려야할 울진의 전통시장이 코로나19 여파로 한산하다 2020.09.30 nulcheon@newspim.com |
추석연휴 첫날인 30일, 경북 북부 동해안의 이름난 전통 장시(場市)인 울진읍 '바지게 장터'가 흡사 태풍이 할킨 자리처럼 썰렁하다.
명절 때가 아니더라도 닷새마다 장이 설때면 발디딜틈 없을만큼 사람들로 가득차던 장터거리가 추석 명절을 하루 앞둔 날임에도 한산하다.
추석 연휴 첫날이자 추석명절 하루를 앞둔 이날 오후 2시, 장터거리 골목에 좌판을 벌린 할머니들 앞에는 추석 제수거리로 쓰일 도라지, 고사리, 햇밤, 버섯 등 장거리가 수북하게 그대로 담겨있다.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추석명절을 하루 앞둔 30일, 경북 울진의 전통장시인 바지게장터 풍경 2020.09.30 nulcheon@newspim.com |
좌판을 펼치고 햇밤을 깎고 있는 팔순의 할머니는 "내 팔십 평생 장날마다 드나들었는데 이번 추석만큼 사람이 안댕기는거는 처음이시더. 장사는 안돼도 코로나가 워낙 무서운거니께 나도 자식들보고 집에 내려오지 말라고 했니더"
팔순의 할머니는 추석 대목장을 보기 위해 아침에 장만해 온 장거리가 겨우 만원어치 팔고 그대로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팔리는 장거리보다는 코로나 걱정과 대처에 나간 자식과 손주들의 안전을 더 걱정했다.
어물전도 마찬가지다. 명절 제사에 반드시 오르는 열기, 가오리, 문어, 가자미 등 건어물이 점포에 걸린 채 오후가 지나도록 손님을 만나지 못한 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당췌 장사가 안되니더. 사람이 댕겨야 물건이 팔릴텐데...사람이 없니더"
일흔은 족히 넘었을 어물전 주인이 점포에 걸려 있는 건어물을 만지며 푸념을 늘어 놓는다.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코로나19 여파로 한산한 경북 울진의 추석 대목장 2020.09.30 nulcheon@newspim.com |
이웃한 과일전도 손님을 만나지 못한 과일만 가득 쌓여있다.
"올해 추석 대목장사는 완전히 접었니더. 태풍에 코로나에 도무지 사람 발길이 있어야 장사가 될낀데. 그렇다고 코로나땜에 나라나 방송에서 이동을 자제해달라고 하니. 장사도 장사지만 그래도 건강과 안전이 제일이니더"
예전같으면 추석차례용 송편과 인절미, 두텁떡 등을 사기위해 줄을 섰던 시장 안 떡집도 손님이 없긴 매 한가지다.
"코로나로 자식들이 고향집을 덜 찾으니 사람들이 예전처럼 떡을 많이 사질 않니더. 먹을 사람이 없으니께. 겨우 차례상에 올린 송편만 조금씩 사가니더."
그래서 떡집 주인은 차례상에 올릴만큼의 송편을 담은 '송편 팩'을 이번에 새로 선보였다고 말했다.
[울진=뉴스핌] 추석명절을 하루 앞둔 30일, 경북 울진 전통장시인 바지게장터 2020.09.30 nulcheon@newspim.com |
추석을 하루 앞 둔 대목장이 썰렁한 데는 코로나19로 정부와 자자체가 이번 추석 연휴 이동 자제를 권유하는 등 코로나19 조기종식을 위한 방역을 강화하면서 농어촌의 고향을 찾는 귀성객들의 발길이 뚝 끊어진 점도 있지만, 지난 9월 초 연이어 동해안을 강타한 태풍 영향도 크게 작용했다.
과일과 채소 가격은 지난 주말을 시점으로 크게 올랐다. 특히 연거퍼 두 번이나 태풍에 할킨 동해안 지역의 시장물가 사정은 더욱 가파르게 폭등했다.
지난 주까지만 해도 작은 무 1개에 2000원 정도였으나 지금은 3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시금치는 가격은 소폭 올랐으나 양은 종전에 비해 절반 이상으로 줄었다.
어물 가격도 크게 올랐다. 말린 자연산 가자미 1마리에 8000~1만원선에 거래되던 것이 1만5000~1만8000원대로 올랐다.
이날 오전 죽변항의 문어 입찰가는 1Kg당 6만~6만5000원 선에 거래됐다.
태풍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과일류이다. 그 중에서도 햇사과 가격이 크게 폭등했다.
"과일이나 채소류 가격은 태풍 영향이 크지요. 특히 사과가 익을 무렵에 태풍이 닥쳐 낙과피해를 입으면서 사과 가격이 종전에 비해 30% 이상 올랐습니다"
과일전 주인은 "객지에 나가있는 자식들이 코로나로 고향에 오지않자 제사에 쓸 양만큼만 구매하는 분위기이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귀성 이동이 감소하면서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수가 줄어든데다가 채소와 과일 가격이 크게 오르자 사람들은 제사에 사용할 만큼만 구입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는 이야기이다.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추석명절을 하루 앞둔 30일, 경북 울진의 전통장시인 바지게시장의 한산한 어물전 2020.09.30 nulcheon@newspim.com |
정육점 분위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난 해 친구들과 함께 전통시장에 정육점을 창업했다는 청년 주인은 "이번 코로나19로 추석 명절 소비 패턴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예전같으면 명절에 많은 식구들이 모여 주로 구이용 부위를 많이 구매했으나, 이번 경우네는 제사용인 국거리와 산적구이용만 주로 찾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1년에 한 번 추석명절에 고향집을 찾아 부모님과 고향 친구들을 만나는 간절한 마음도 잠시 뒤로 미루며 참고 있는데, '추캉스'니 국내선 항공기 매진이니 하는 방송을 보니까 씁쓸하다고 말했다.
가을 해가 서편으로 뉘엿거리며 넘어가는 오후 5시쯤, 추석 대목장을 보러 아침부터 장터거리에 좌판을 벌인 할머니들이 팔지못한 장거리를 주섬주섬 보자기에 싸고 있다. 할머니들의 손등 위로 '계란 노른자만한 햇살'이 잠시 머문다.
nulche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