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관계자 “일본 롯데, 국내 사안은 개입 불가능”
[서울=뉴스핌] 박준호 기자 = “일본 롯데의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이 직접 나서 한국 롯데가 납품업체를 대상으로 자행하고 있는 갑질 행위와 피해 실태를 조사해 달라.”
롯데피해자연합회는 13일 오전 서울 주한대한민국일본대사관 앞에서 롯데그룹을 규탄하는 시위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롯데피해자연합회는 롯데로부터 갑질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협력사들이 결성한 단체다. 특정 대기업을 상대로 별개의 피해업체가 연합회를 구성해 공동 대응하는 것은 무척 이례적이다.
이날 시위에는 가나안RPC·성선청과·신화·아리아·아하엠텍·에이케이인터내셔날 등 피해업체 대표들과 정의당 공정경제민생본부 이혁재 집행위원장이 참석했다.
김영미 롯데피해자연합회 회장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주대한민국일본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롯데 갑질 규탄집회에서 발언문을 낭독하고 있더.[사진=박준호 기자] |
‘갑질 없는 세상으로’라는 흰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일본대사관 앞에 선 10여명의 피해업체 관계자들은 롯데그룹의 갑질에 대한 진상 조사와 책임 있는 보상을 촉구했다.
김영미 롯데피해자연합회 회장은 “한국 롯데 갑질로 인해 많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반면, 일본에서는 롯데의 갑질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대한민국 정부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그리고 일본롯데홀딩스 쓰쿠다 사장이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해결해 주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롯데그룹의 갑질 행위로 피해를 입은 만큼, 일본 롯데홀딩스가 직접 한국 롯데의 불법적 갑질 행위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구체적 방안으로 쓰쿠다 사장 직속 산하 조직으로 ‘한국롯데갑질피해특별조사팀’을 발족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갑질 사례에 해당되는 롯데 계열사가 롯데상사·백화점·슈퍼·마트·건설·자산개발 등 전 영역에 걸쳐있는 만큼 롯데그룹에 고질적인 갑질 문화가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안동권 롯데피해자연합회 사무국장은 “한국 롯데가 일본 롯데보다 20배 규모로 급속 성장한 이면에는 상당수 한국 납품업체의 희생이 있었다”며, “한국 롯데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하도급 갑질 신고 건수 1위 내지 매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롯데갑질신고센터’에 피해 사례가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 국장은 이어 “쓰쿠다 사장은 일본 기업의 경영 철학인 도덕성과 신뢰를 한국에서도 지켜주기를 바란다”며 한국 롯데의 갑질피해특별조사팀을 즉각 발족해 줄 것을 요구했다.
롯데의 갑질로 인한 이들 업체의 피해금액은 대략 490억원으로 추산된다. 대다수 업체가 현재 파산한 상태다. 이로 인해 실직한 직원 수만 500여명에 이른다는 주장이다.
롯데피해자연합회 관계자들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주대한민국일본국대사관 앞에서 롯데 갑질 규탄집회를 열고 있다.[사진=박준호 기자] |
김영미 회장은 “신동빈 회장이 최근 출소하면서 대규모 투자와 고용 계획은 내놓으면서도 피해 협력업체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며 “진정성이 있었다면 신동빈 회장은 피해자와의 완전합의라는 사회적 책임을 먼저 실천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것이 피해자들이 신 회장에 대한 기대를 접고, 한일 롯데를 총괄하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쓰쿠다 사장을 만나려는 이유이며, 결국 피해자들을 한국롯데가 아닌 일본대사관 앞에 서게 만들었다”고 일갈했다.
피해자들의 호소가 정치권을 넘어 일본 롯데홀딩스까지 뻗치면서 롯데그룹은 난감한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신 회장은 지주체제를 강화하고 호텔롯데를 상장해 일본 롯데와의 연결고리를 끊는 ‘뉴 롯데’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롯데그룹에 계속해서 붙는 일본 꼬리표를 떼어내기 위함이다.
현재 일본롯데홀딩스는 신동빈 회장이 지난 2월 대표직에서 자진 사임하면서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의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된 상태다. 그럼에도 신 회장은 여전히 한일 롯데 ‘원톱’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6월 열린 일본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도 일본인 경영진의 지지 속에 이사직을 유지하며 ‘원 리더’ 체제를 굳혔다.
다만 지배구조의 불안함은 여전하다. 한국 롯데의 중간지주사격인 호텔롯데는 일본 롯데홀딩스와 L투자회사 등 일본인 경영진들이 지배하고 있다. 일본롯데홀딩스 역시 일본 경영진의 영향력 아래 놓인 지분이 총 47.65%에 달한다. 의결권이 없는 LSI 지분(10.65%)를 제외하면 이들 지분만으로 의결권 과반을 넘긴다.
쓰쿠다 사장을 중심으로 종업원지주회, 공영회, 임원지주회 등 일본 임직원들은 여전히 신 회장에 대한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한국 롯데에서 발생한 사안을 일본 롯데에게 호소하는 그림은 롯데그룹 입장에서 꺼림칙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해당 사안에 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와 법원에서 다루고 있으며 각 계열사별로도 업체들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국 롯데는 지주 체제로 전환해 일본과는 완전히 분리돼 있는 상황이다. 일본 롯데홀딩스가 국내 사안에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롯데피해자연합회 관계자들이 일본 롯데홀딩스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에게 서면을 전달하기 위해 주한일본대사관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경찰들과 대치하고 있다.[사진=박준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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