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핌=이보람 기자] # 2010년, A씨는 대학을 갓 졸업한 후 한 증권사에 입사했다. 첫 근무지는 서울에 위치한 영업지점. 하지만 취업의 기쁨도 잠시, 그리스발(發) 유럽금융위기가 터졌다. 입사 6개월 만이다. 이렇다 할 자기 고객이 없던 A씨는 시장 상황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영업 실적을 맞추기 위해 2000만원을 빌려 '자기매매'를 시작했다. 쉴 새 없이 사고 팔기를 반복하다 보니 회전율은 4~5000%에 이르렀다. 회사에 벌어다주는 하루 수수료 수익은 150만원~160만원 가량으로 당시 온라인 주식거래 수수료는 1억원 당 30만원 수준이었다. 신입사원이 차장 혹은 부장급이 기록하던 수익 그 이상을 벌어들인 셈이다.
"고객들 돈이요? 돌릴 돈도 없었거니와 하루 동안 쉴 새 없이 주식을 샀다 팔았다 하는데 사실 관리할 시간이나 있었겠어요?"
지난 3일 기자를 만난 A씨는 과거 증권사 신입사원 시절을 회상하며 "수수료 수입을 얼마나 올렸는지에 따라 직원 평가와 성과급이 달라지니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고객의 수익은 뒷전이었다.
금융당국과 투자업계가 이 같은 관행을 뿌리뽑겠다고 나섰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9월 내놓은 불건전 자기매매 근절방안에 따르면 증권사 임직원들은 기본적으로 자기매매를 통해 매수한 주식을 5영업일 동안 의무 보유해야 한다. 단 의무보유기간 적용을 받지 않으려면 매매회전율 월 500% 이내, 매수 주문횟수 일 3회 또는 월 30회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 당장 내년 1월 1일부터다. 당국은 현장 검사시 불건전 자기매매 행위를 집중 점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엄중한 제재를 가할 방침이다. 또 올해 안에 '금융기관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 시행 세칙'을 개정해 제재를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일부 직원들이 이같은 결정에 반발했지만 세부 규정을 마련한 금융투자협회, 금감원 등은 해외 사례에 비춰볼 때 여전히 규제가 미미한 수준이며 금투업계의 목소리도 이미 반영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해외에선 국내보다 자기매매 관련 제재 강도가 세다. 특히 사후규제 위주인 국내 증권사들과는 달리 자기매매시 회사 준법감시인의 사전승인이 필수고 의무보유기간도 국내보다 길다. 자기매매가 아예 불가능한 곳도 있다. 골드만삭스 한 관계자는 "골드만삭스는 전 임직원들의 개별종목 자기매매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고객 보호를 위해서다.
금투협에 따르면 이밖에 씨티 JP모간 노무라 도이치 맥쿼리 BNP파리바 등 주요 외국계 증권사들은 모두 자기매매 이전에 준법감시인의 사전승인을 받아야하며 최소 14일에서 최대 30일까지 의무 보유기간 등을 내부규정을 통해 명시하고 있다.
다만 해외 증권사들의 제재는 국내와는 다른 점이 있다. 외국에선 금융 당국이 직접 직원들의 자기매매를 제한하는 게 아니라 최소 법으로 지정할 부분만 정한 뒤 각 사의 '내부규정'을 통해 직원들을 통제하고 있다.

실제 미국은 법적으로 사전승인, 의무보유기간부여, 배우자계좌 등 제재적용 계좌 확대 적용 등에 대해선 아무런 제재가 없고 재량권 보유 계좌 확대적용에 한해서만 제재한다. 영국은 이보다는 촘촘한 규제를 통해 재량권 보유 계좌 뿐 아니라 애널리스트 등 기업의 내부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높은 직군에 대해서는 모니터링 계좌를 동거가족 전체로 확대 적용, 법의 제재를 받고 있다.
일본의 경우 현재 우리가 도입하고자 하는 제재와 비슷한 수준에서 자기매매 제한이 이뤄지고 있다. 임직원 자기매매를 원칙적으로는 허용하되 주식신용거래나 선물옵션 거래, 외국환보증금 거래(FX) 등 투기적 거래라고 판단되는 거래에 대해서는 자기매매가 금지된다. 자기매매 실적도 성과급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단 이 역시 내부 규정을 통해 이뤄지고 있을 뿐 법적인 제재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내 자기매매 제한은 내부통제가 아니라 당국이 직접 나서서 이를 통제한다는 점에서 '규제'다. 금감원 역시 지난 9월 3일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불건전 자기매매 근절 방안이 '내부통제시스템의 획기적 개선 및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선진국 수준의 자기매매 절제 관행 확립'을 위한 것이라며 직접 나서 강력한 제재를 가할 것을 시사했다.
해외의 경우 내부 규정만으로 충분히 직원들의 통제가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브로커리지 수입이 주된 수익원이 아니라는 데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해외 증권사들은 단순히 주식 중개매매 영업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며 "이는 IB나 WM 등 다방면에서 선진화된 수익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증권사 일부 직원들이 무조건적인 자기매매 규제를 반대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국내 증권사들, 특히 중소형 증권사들의 경우 별다른 수익원이 없는 상황에서 수수료 수익마저 없다면 그나마도 더 먹고 살기 힘들어진다는 것. 성과급 제도를 적용받고 있는 직원들 역시 평가 기준에 수수료 수익이 포함돼 있는한 무조건적인 제재가 이뤄지면 당장 월급이 쪼그라 든다.
그렇다고해서 무분별한 자기매매를 허용할 수도 없다. 자기매매 제한이 고객보호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데 상당부분 컨센서스가 이뤄지고 있다. 이에 증권사들은 최근 스스로 자정 노력에 나서는 모습이다. NH투자증권은 올해 8월부터 직원들의 성과 평가에 자기매매를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고, 한국투자증권 역시 11월 이 같은 방침을 내놨다. 한화투자증권은 여기에 더해 외국계 증권사들과 비슷하게 매매시 사전승인 절차를 마련하고 15일의 의무보유기간도 설정했다.
당국이 강력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나선 것을 두고 수수료 수익 위주의 평가 체계와 증권사의 빈약한 수익구조 등을 고려하지 않은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란 불만도 그래서 나오는 것. 또 이같은 흐름은 각종 규제개혁을 외치는 정부의 기조와도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금투업계와 당국이 나서 고객보호에 저해되는 자기매매 관행을 뿌리뽑겠다고 나선 일은 적절한 행보지만 선진국 수준의 관행을 확립하려면, 단순히 해외보다 약한 수준의 제재라고 외칠 것이 아니라 증권사 스스로가 주체가 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그래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무조건 일괄적인 제재를 가할 게 아니라 증권사별로 상황에 맞는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게 우선이라는 의미다.
또 수수료 수익에만 의존하지 말고 새로운 수익구조 확보에 힘써 수수료 수익이 직원 평가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적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중론이다.
황세운 자본연 실장은 "미국 등 해외는 증권사의 책임으로 고객의 손실이 발생했을 때 손해배상 제도나 강력한 처벌을 통해 회사의 책임을 묻고 있기 때문에 증권사가 직접 내부통제 관리를 철저하게 할 수밖에 없다"며 "아울러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개발을 통해 수수료 수익 위주의 단순한 수익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법적인 자기매매를 없애는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설명했다.
[뉴스핌 Newspim] 이보람 기자 (brlee19@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