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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동차시장 지각변동, 유럽차쌩쌩 일본주춤, 현대 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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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독일이어 프랑스에도 순위 밀려, 영토분쟁도 한 원인

[뉴스핌=홍우리 기자] 경제 위축과는 달리 중국 자동차 시장은 올해도 안정적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세계 최대규모인 중국 자동차 시장의 올해 주요 특징은 전통적으로 약진세를 보여온 일본계 자동차가 고전하고 프랑스계 자동차 업체가 점유율을 확장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자동차의 중국 영업은 대체로 호조를 보이고 있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가 최근 발표한 최신 통계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10월 중국 전국 승용차 생산량과 판매량은 전월 대비 각각 1.9%, 0.8% 증가한 175만7800대와 170만8900대로 나타났다. 지난해 동기대비 증가율은 각각 10.4%와 6.4%로,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1-10월의 승용차 생산량은 동기대비 11.2% 늘어난 1614만3900대, 판매량은 8.9% 늘어난 1586만4400대로 집계 됐다.

전국승용차시장정보연석회 라오다(饒達) 의장은 "10월 중국 내 자동차 시장 성장률은 10%에 달했다"며 "판매량 또한 예상치 보다 3만대 더 많았다"고 설명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프랑스 자동차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며 근년 들어 판매량이 타국 브랜드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는 점이다.

올 1-10월 프랑스 자동차 판매량 증가율은 동기대비 33%를 넘어섰으며 중국 시장 점유율도 3.7%까지 확대했다. 2013년의 동기대비 판매량 증가율은 26%, 시장 점유율은 3.1%였다.

프랑스 자동차 판매량 급증은 무엇보다 푸조 시트로엥(PSA)이 중국에 세운 합자회사 선룽(神龍)자동차의 판매량 급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업계는 설명한다.

실제로 올 1-10월 선룽자동차의 판매량은 57만9000대를 기록했으며 전년 동기대비 증가율은 29.6%로 시장 평균 성장률의 3배에 육박했다.

이와 함께 중국과 프랑스 수교 50주년 맞이로 프랑스계 브랜드 인지도가 올라간 점, 시트로엥 제품 및 기술의 제고 등도 프랑스 자동차 판매량 증가를 이끌었다고 증권일보(證券日報)가 둥펑 시트로엥의 천시(陳曦) 총경리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현대자동차도 올한해 중국 시장에서 비교적 만족할만한 성장세를 기록했다.   

올 10월 현대자동차는 총 8187대의 판매량으로 GM자동차를 앞지르며 외자 브랜드 판매량 순위에서 독일 브랜드 폭스바겐(아우디 포함)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동기대비 증가율은 19.1%로, 시장 평균치를 크게 웃돌았다. 

중국 로컬브랜드들도 지난해 9월 이후 줄곧 시장 점유율 하락 압력에 직면했으나 올 하반기 들어서 다시 힘을 내고 있는 모습이다. 중국 로컬 브랜드는 12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이며 급기야 올 7월 점유율이 20%까지 위축되며 200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8월부터 전세를 역전시키며 3개월 연속 승용차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다. 10월의 판매량은 67만5600대로 전월 대비 3.37%, 동기대비 3.42% 늘어났으며 승용차시장 점유율은 39.54%로 집계됐다.

특히 창안(長安)과 창청(長城)•지리(吉利) 등의 실적향상이 두드러졌는데, 이 중 창청자동차 H6 모델의 10월 판매량은 동기대비 43.1% 늘었다.

이에 관해 중국자동차공업협회 둥양(董揚) 의장은 "10년래 로컬 브랜드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완성차 기업들이 비교적 완비된 기술 R&D체계를 구축해 자주 기술 수준을 제고하고, 차량안전•친환경•연비 절감 등 핵심 기술을 장악한 것이 그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 일본차 고전, 모델과  기술 대응 실패, 영토분쟁도 한 원인 

중국 로컬 브랜드와 프랑스·한국 자동차들이 중국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빠르게 늘려가고 있는 반면, 일본 차는 최근 몇 년간 점유율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업계 관계자들은 프랑스 자동차가 잠식하고 있는 점유율 부분이 기존에 일본 브랜드가 확보하고 있던 부분이라고 지적하며 일본 자동차의 점유율 실추 원인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본 자동차의 시장 점유율은 2010년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4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특히 2012년 9월 ‘댜오위다오(釣魚島)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이후 2013년 각종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신차를 잇따라 출시하면서 2014년 판매량 회복을 기대했으나 상황이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이 전반적인 관측이다.

중국 자동차 시장 전문 연구기관인 웨이얼썬(威爾森, 영문명 WAYS) 자료에 따르면, 2014년 1-3분기 도요타와 닛산, 혼다의 판매 목표량 달성률은 각각 66%, 63.6%, 53.7%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올 4월부터는 일본 자동차들의 판매량이 피로한 모습을 보이면서 동기대비 성장률도 시장 전체 성장률을 하회했고, 심지어 8월에는 마이너스 성장률(-5%)을 기록했다. 자동차 구매의 ‘성수기’로 꼽히는 9월에도 호전되는 기미 없어 시장 전체 성장률 6%를 밑돌았다.

일본 자동차의 실적 하락은 2012년 댜오위다오 사건으로부터 시작됐다. 2012년 이전까지 중국 A급 자동차(소형차) 시장의 일본 차 점유율은 40% 이상이었으나 댜오위다오 사건 이후 거세진 반일 감정에 점유율이 급속도로 하락했다.

독일에 이어 프랑스에까지 점유율을 내주며 A급 시장에서의 일본 차 판매량은 올 5월 이후 계속해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이와 함께 판매 실적이 양호했던 닛산의 써니(sunny, 중국명 陽光)와 티이다(Tiida, 중국명 骐達)•토요타 코롤라(Corolla, 중국명 卡羅拉) 등의 신형 모델 출시가 지연되면서 일부 소비자들의 구매욕구를 떨어뜨렸다는 지적도 있다.

올 7월 코롤라를 시작으로 브랜드마다 신형 모델을 속속 출시하면서 9월부터 판매량이 다시 반등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올 한해 실적 부족분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일부 일본계 브랜드들은 올해 목표 판매량을 하향 조정했다. 둥펑닛산은 목표 판매량을 당초 110만대에서 100만대로, 토요타의 중국 내 합자기업인 이치 토요타(一汽豊田)과 광치토요타(廣汽豊田)도 각각 66만대에서 62만대로, 40만대에서 38만대로 목표를 수정했다. 혼다는 당초 예상했던 90만대에서 10만 대나 적은 80만대로 목표치를 조정했다.

또 기술면에서 신형 모델이 기존모델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 홍보부족, 신형 모델에 대한 할인폭이 적다는 점, 수준 낮은 서비스도 점유율 감소의 원인으로 풀이된다.

이에 관해 자동차 시장 전문 매체인 망역자동차(網易汽車)는 “신형 모델 출시만으로는 고객을 유치할 수 없다”며 “다양한 마케팅 수단 활용, 타켓 맞춤형 홍보, 서비스 강화 등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홍우리 기자 (hongwoori@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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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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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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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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