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방에서 아내가 가끔 전화를 해올 때, 전화기를 통해 어렴풋이 전해지는 그 방의 분위기. 술에 취한 듯 주위에서 깔깔거리거나 흐느적거리는 목소리, 동강동강 기타 두드리는 소리, 담배를 피우는 숙으로 인해 자욱했을 공기...그 안에서 나누었을, 나로선 알 수 없는 이야기들.
닿을 수 없는 섬. 자살 기도 한 이혼녀, 독신녀, 그리고 마음 둘 데 없는 아내가 함께 자아내는 밀도 짙은 공간. 더욱이 숙은 최영호와 초등학교 동창 사이이니 무슨 비밀을 움켜쥐고 있는지 나로선 알 길이 없었다.
이미 이혼을 했고 새 애인도 있다고 하는 숙은 새로운 삶과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을 몸으로 살고 있는 여자이다. 내 아내와 아내에 딸린 가족들을 두루 알면서도 아내의 실존적 가치에 더 무게를 줄 수 있는 여자이기도 하다.
아내 역시 현실적인 길을 택했지만 마음 깊은 속의 동요가 멈춘 것은 아닌 상태였다. 더욱이 최영호는 내가 본 바 있는 불 같은 성격과 포기하지 않는 집념으로 인해 내 아내에게 연락을 계속 취해왔었을 듯하다.
내 아내로부터 절망적인 반응을 받더라도 목소리의 떨림이나 톤으로도 진짜 마음을 구별해 낼 후각을 지닌 사람이기도 해서 마음 속의 불길을 어떻게든 펼쳐보려 했을지도 모른다. 숙에게 연락을 취해 내 아내의 동정을 살펴볼지도 모를 일이다. 숙에게 자기 마음을 전달해 달라고 했을 수도 있고 잘 되도록 술책을 썼는지도 모른다. 나로선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막의 저쪽에서 어른거리는 향기이며 생각 자체가 불쾌했다.
내겐 불안과 의혹의 도가니일 수밖에 없는 그 도시로 일주일이 멀다 하고 서울에서 이웃집 가듯 달려가는 아내. 의미를 알 수 없는 꺼질듯한 희미한 미소. 나로선 불길한 공기가 감겨올 수밖에 없는 그 방에서 나와 통화하는 아내의 목소리는, 나와 둘이 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밝고, 생기에 차 있고, 들떠 있기도 하고, 때론 “자기, 나 사랑해?” 하며, 술에 취해 울먹이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아내가, 자기에게 편안한 방을 발견한 것은 결혼 십년 만에 겨우 최근 몇 달간이다. 그리고 그 몇 달은, 아내가 내 안의 이질적인 방들을 견뎌온 십 년에 비하면 무척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그 외출이 정도 이상, 아니 한계치를 넘어 잦아질수록, 심해질수록, 내 안의 수면 아래 잠겨 있던 불안과 소외감, 질투가 솟아오르더니 점점 커져갔다. 나도 결국 이기심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놈인가 하는 자괴감과 함께. 물론 아내 안의 이질적인 방을 아프면서도 포용하고 있었고, 관용을 갖고 바라보려고 가슴이 뻘건 진흙으로 뭉개지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아내가 저렇게 되도록 만든 게 나라는 자성이 내 안에 아프게 박혀 있기에, 아내의 방황에 대해 끝까지 애정을 가지려고 몸부림쳤다. 하지만 아내도 나처럼, 지나치게 나가고 있었다. 나로부터 배워, 나를 반복하는 것만 같았다. 지나치게 나가는 아내에게서 나는 업에 의한 저주, 악마성, 그와 동시에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이중 삼중 혼돈을 심하게 겪고 있었지만 아내는 아랑곳없이 새로 발견한 휴식의 공간, 그 먼 곳, 내게는 배타성의 집으로 끝없는 질주 여행을 되풀이했다.
나 자신도 무너지고 있었다. 최영호의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그날 저녁 이후 아내와 최영호가 인터콘티넨탈 호텔의 커피숍에서 만나기까지 사십여 일에 걸친 불면의 밤들. 하루에도 수십 장씩 펜만 댔다 하면 줄줄 흘러나오는 영혼의 물감을 감당하느라 소진되어버린 심신. 그 이후 아내의 또 다른 방황을 감내하느라 뼈가 녹는 시간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