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부 새로운 시작, 행복한 남은 삶을 위하여
-꿈꾸지 말고 이제는 누리자 1
지금의 중년들은 누리고 사는데 익숙하지 않다. 늘 먹고 사는데 바빠 그럴 기회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는 매사에 가족과 자식이 우선이었고 자신은 뒷전이었다. 그러다 보니 누린다는 것은 먼 나라 사람들의 일로만 생각되었고, 자신들에게는 호사이자 사치였다.
그러나 그들도 이제 인생의 반환점 이후에 와있다. 시간이 그리 많지가 않다. 그래서 그들이 이제 남은 생을 즐기면서 행복을 추구한다 해서 마뜩찮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만,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더하여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또 어른으로서 국가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다면 더더욱 보람 있는 날들이 될 것이다. 그래서 젊은 시절 힘써 추진했지만 못 다 이룬 그래서 후배세대들에게 숙제로 남겨놓은 여러 가지 사회적 과제들, 예를 들면 제도와 의식의 선진화, 통일 문제 등등을 해결해 나가는 데도 열심히 동참하고 또 기여해야 할 것이다.
‘행복’은 무엇일까? 사전에는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로 되어있다.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풍요, 정신적 안정감, 가족들과의 사랑, 원만한 대인관계 등의 요소들이 만족할 만큼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정답은 없다. 만족의 크기는 너무나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이란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 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러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사실 행복의 요소들은 우리생활 주변 지천에 널려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잘 인식하지를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 하나하나는 매우 작아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도 우리의 욕심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은 행복 대신 커다란 행운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칫하면 찰나의 행운을 잡기위해 수많은 행복을 짓밟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행복이 넘쳐나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한 채, 늘 지금보다 나은 삶을 위해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행운만을 뒤쫓으며 살아가고 있다.
풀밭이나 들판에 나가보면 사람들은 네잎클로버를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지천에 널려있는 세잎클로버는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지천에 널려있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세잎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이라고 한다. 반면, 우리가 수많은 세잎클로버를 짓밟으면서 찾아 헤매는 네잎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행운 하나를 찾겠다고 주변의 수많은 행복들을 마구 짓밟고 있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철학이 꽃피울 시절, 스토아(Stoa)학파와 에피쿠로스(Epicurus)학파간의 불꽃 튀는 논쟁이 있었다. 스토아학파는 금욕주의 학파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을 중시하는 전통을 계승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의 법칙, 신의 법칙을 따르는 삶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상적인 삶의 상태로 ‘아파테이아(apatheia)’를 주장했는데, 아파테이아란 모든 감정을 억제하여 어떤 것에 의해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의 상태를 뜻한다.
반면, 에피쿠로스학파는 감각적 경험과 쾌락을 중시하였다. 그리고 이상적인 삶의 상태로 '아타락시아(ataraxia)', 즉 평정심(平靜心)을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인간이란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중시하는 쾌락이란 육체적・환락적인 쾌락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으로부터의 자유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꿈꾸지 말고 이제는 누리자 2에 계속)
*저자 이철환 프로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초빙위원
-현 단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재직)
*저서- 과천청사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한국경제의 선택, 14일간의 경제여행, 14일간의 (글로벌)금융여행 등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