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산단 경쟁력제고" 對 "근본처방책 아냐"
[뉴스핌=홍승훈 기자] 수십년간 한국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는 한물간 애물단지로 전락한 '노후화된 산업단지'에 대해 정부가 대대적인 개선책을 쏟아냈다.
25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는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3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산업단지 경쟁력 강화방안을 보고했다.
산업부는 테크노파크와 전문연구원, 디자인센터 등을 산업단지로 이전하고 보육시설, 도서관, 문화공간 등을 대폭 확충하는 산단 리모델링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국토부는 도시첨단산업단지를 도시외곽이 아닌 도시지역에 집중 공급하는 동시에 기존 산단의 용도 규제를 풀어 입주 문턱을 낮추는 방안을 내놨다.
이를 통해 산업단지를 창의와 융합 공간으로 재탄생시켜 산업단지에 대한 청년층의 기피현상도 없애고 입주기업들의 인력난도 해소하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여전히 산단 안팎에선 기존 정부정책이 효과없이 재탕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갈수록 쪼그라드는 정부 예산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릴 수 있는 산업부와 국토부 간 협업이 제대로 이뤄질 지에 대한 의구심이 앞선다.
◆ 추락하는 노후 산단, 경제 견인차서 애물단지 전락
지난 1964년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현 서울디지털단지)의 최초 지정후 양적 질적으로 팽창을 거듭하며 우리 경제 성장을 견인해온 산업단지는 최근 1000여 개까지 불어났다. 전국 제조업 생산의 65%, 수출의 76%, 고용의 44%를 담당하며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해오는 산업단지의 전국 지정면적(1359㎢)만도 서울시 두배에 달한다.
![]() |
| <자료 : 산업통상자원부> |
하지만 최근에는 산업단지의 노후화가 극심해지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확대되며 청년층 기피현상과 함께 산단내 입주기업들의 인력난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산업단지공단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중 2/3 이상이 산업단지 취업을 기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이유가 저임금보다는 부정적 이미지, 편의시설 부족, 환경오염, 교통불편 등의 비경제적 요인이 80%에 달했다.
현재 산단에서 원하는 청년층 수요는 30% 수준이지만 막상 공급인력은 6%대에 머물고 있다. 산업단지에 들어와야 할 첨단업체 10개 중 6개가 개별입지를 택하고 산단내 기업들의 해외이전과 휴폐업 공장부지도 급증하는 추세다.
결국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이 같은 부분을 개선하지 않고선 퇴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절감한 후속책 성격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말 조사한 결과, 산단내 입주기업 4곳 중 1곳은 이주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산단내 휴폐업 부지도 지난해 3월말 54.9만㎡에서 올해 3월 86.7만㎡로 급증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정만기 산업기반실장은 "2008년 이후 산업부와 국토부가 각기 노후산단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했으나 정부지원 부족과 부처별 개별추진 등으로 한계에 직면했다"며 지난 최중경 산업부 장관 시절 추진했던 QWL(Quality of Working Life) 밸리 조성사업의 실패를 사실상 인정했다.
QWL사업이란 2년전 추진된 산업단지 강화책으로 노후한 산업단지를 개선해 지속성장 거점이나 청년일자리 창출원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기반시설이나 복지·편의시설을 확충하고 각종 문화요소 도입 등을 골자로 했다.
◆ 산업 국토부 등 부처간 협업 중심 개선책 면면은
결국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다시한번 해결책 모색에 나선 것인데 이번 방안의 특징을 보면 지금까지 개별부처에서 추진하던 산업단지 전략을 각 부처 간 협업을 통해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점이 눈에 띈다. 주무부처도 과거 국토부 중심에서 산업부쪽으로 중심추가 다소 이동하는 모양새다.
우선 양 부처는 기존 4개단지(반월시화, 구미, 남동, 익산)에 대해 올해 상반기까지 추진해왔던 시범사업을 오는 2017년까지 최대 25개 단지로 늘리기로 했다. 산업부가 17개, 국토부가 8개를 맡는다.
이에 앞서 일단 내년 산업부가 2개 산단을 대상으로 구조고도화 작업을, 국토부가 4개 산단을 대상으로 재생작업에 착수키로 했다. 이는 일종의 시범사업으로 모범사례를 만들어 전 산업단지로 분위기를 전환하겠다는 의도다.
산업부의 구조고도화 전략은 산업단지공단이 휴폐업 부지나 미활용 부지를 매수하거나 기보유 부지를 활용한 '블록단위' 순차개발 방식을 말하는데 업종재편이 중심이 된다.
산업부는 리모델링 단지에 조성되는 융복합집적지에는 테크노파크, 전문연구원, 시험인증기관 등의 분원, 전문 도서관, 디자인 119센터 등을 우선 설치할 계획이다.
쾌적한 정주여건 조성의 일환으로 이들 지역에 보육시설 의무화, 오피스텔과 공동기숙사 확충, 통근버스 운행 확대, 노후화된 건물에 대한 문화공간 활용 등의 방안도 포함돼 있다.
국토부의 재생전략은 우선 사업추진 지역을 정하고 공장 위주의 토지이용 계획 변경, 인센티브 제공 등을 통한 고밀복합단지 리모델링 방식이다. 기반시설 정비 및 전면 재개발을 의미한다.
국토부 박선호 국토정책관은 "기존 그린벨트는 보금자리주택지구 지정 등을 통해 임대주택 부지로 활용해왔으나 최근 주택공급 과잉 현상을 감안해 부가가치가 높은 산단 조성으로 추진키로 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용도지역 규제를 완화하는 등 제도개선에도 착수한다. 과거 산업, 지원, 공공시설 용지가 분리되던 것을 앞으로는 모든 시설의 복합입주가 가능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필요시 일반공업지역을 준주거 또는 준공업지역으로 용도를 바꿔 용적률을 확대하고 이에 따른 개발이익은 산업기반시설 등에 재투자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산업시설구역내 입주가 허용되는 지식산업의 범위도 과거 연구개발업 등 13개 업종에서 20개 업종으로 확대키로 했다.
산업부 정만기 실장은 "과거 호텔 오피스텔, 물류센터, 체육시설 등의 '점' 단위 개발방식이 앞으로는 '면' 단위 개발로 바뀐다"며 "QWL 펀드 조성을 통한 민간투자 주도 개발 역시 고용부와 문체부, 교육부, 복지부 등 관계부처의 협업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미래 비전 제시가 선행돼야...부처간 힘겨루기 우려"
이 같은 개선책에 대해 노후화된 산업단지의 재탄생에 전환점이 될 것이란 기대도 일부 있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처방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을 내놨다. 정작 이해당사자인 산업단지 입주 기업들이나 입주 가능성이 있는 곳들 역시 시큰둥한 반응이다.
한 산단 관계자는 "전국에 깔려있는 산업단지가 1000여 곳인데 이 중 내년 6개에 대해 리모델링 등의 시범사업을 하겠다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나머지 산단은 사실상 방치하겠다는 얘기 아니냐"고 토로했다.
산업단지에 첨단기업들이 모이고 청년인력의 메카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미래 비전 제시가 전제되고 구체적인 방안이 나왔어야 하는데 이번 대책은 개별적인 제도개선책으로만 구성됐다는 지적이다.
"대부분 산업단지들이 제조공장들로만 가득차 있다보니 밤이면 불이 꺼져 깜깜하고 근로자들이 갈 문화공간은 없는 게 현실입니다. 친구가 찾아와도 기다릴 만한 거피숍 하나 없어요. 점심때 치과치료를 받으려해도 20km 이상 운전해서 도시에 나가야 한다"고 토로하는 산단내 입주기업 직원들의 하소연이 늘고 있다.
산단 입주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항상 성공사례로 꼽는 파주출판단지와 같이 주변 환경을 갖추기 위해선 개발 초기부터 계획을 갖고 해야 하는데 현재 노후화된 산단의 입지지역과 주변 여건을 고려하면 쉽지않은 상황"이라며 "그 정도로 개발하고 주변환경을 고급화하면 입지 분양가가 2배 이상 훌쩍 뛰는데 이를 부담할 기업이 몇이나 되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시간과 현실성이 떨어지는 국토부의 재생작업보다는 업종정비를 통한 구조고도화 전략으로 입주기업들이 업종전환을 해 첨단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산업부의 방안이 우선 추진돼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부처 간 협업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했다.
산업단지공단 정인화 투자연구실장은 "노후단지 중에 어떤 단지는 기반시설 재정비를, 어떤 단지는 업종정비를 하기로 무 자르듯 정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일단 내년에 6개 단지를 산업부와 국토부가 각각 나눠 추진하겠지만 이후 부처간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 속에서 사업추진이 더뎌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즉 양 부처가 어떤 식으로 산단을 나눠 맡을지, 부처간 예산은 어떤 식으로 배정될지 등이 숙제라는 지적인 것이다. 또 나머지 900개 이상의 산단에 대한 대책도 현재로선 전혀 없다는 점이 한계로 꼽혔다.
이에 대해 산업부측은 "일단 2~3개 산단이 모범사례를 보여주면 여타 산단이 따라오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공감하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미분양 등으로 효과가 미미한 신규 산업단지 투자에 수천억원 돈을 기존의 노후화된 산단에 투입하는 것이 한다는 지적이 정책 효과가 높아질 것이란 조언도 나왔다.
산업연구원 김영수 박사는 "과거 QWL사업이 민간에만 맡겨두는 방식이다보니 근로자 편의시설 등 수익성이 따르지 않는 인프라시설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며 "이번 융복합집적지가 제대로 효과를 거두면 산단 경쟁력 강화 추세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김 박사는 다만 "개인적으로 기존 산단 입주기업 외에 근처에 머물고 있는 개별 입주기업들에 대해 이번 정책수혜가 배재된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며 "특히 개발에만 급급해하던 국토부, 관리에만 치우친 산업부가 과거 부처의 모습이었다면 앞으로는 부처간 긴밀한 공조가 어느때 보다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스핌 Newspim] 홍승훈 기자 (deerbear@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