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정책 당국자들은 유로존의 신뢰 위기에 대한 진정한 치유책은 그리스 구제에 대한 합의 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럽의 강대국인 독일과 프랑스의 개혁에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고 2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적했다.
◆ 개혁이 유럽의 살 길
EU 정상들이 그리스 구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로 인해 유로화 가치가 10개월 최저치로 추락하는 상황에서, 영국 피치(Fitch Ratings)는 포르투갈에 대한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해 위기 확산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을 더 높였다.
[표] 국가신용 위험 항목별 평가
이번 위기 사태는 1999년 유로화 도입 당시 비전과 비교하면 전혀 딴 세상이다. 당시 당국자들은 유럽이 비효율적인 복지국가의 현대화와 과도한 규제의 완화를 통해 새로운 부흥을 꿈꾸었다.
하지만 지금 16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유로존은 첨예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급여 혜택을 줄이고 고용시장의 유연화를 통해 성장을 도모하지 않으면 장기 경제 불확에 직면할 것이란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티에리 브르통 전 프랑스 재무장관이자 현재 IT업체인 아토스 오리진의 대표는 "진정한 개혁을 수용할 수 있는 각국의 능력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 이번 위기 사태의 진정한 본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EU 정상회담에서는 그리스 사태를 넘어 향후 10년간 유럽 경제의 폭넓은 성장 전략이 주된 의제다.
오랜 기간 국가의 복지 혜택과 강력한 노동자 보호를 통해 자본주의적 폐해를 줄여야 한다고 믿어 온 유럽 내에서 구조 개혁의 의지가 높은 나라가 많지 않다. 그래서 가장 좋은 시기에도 유럽은 항상 미국보다 경제 활력이 낮았다.
◆ 미국와 유로존 경제 활력 비교
-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1990~99년: 유럽 2.0%, 미국 3.3% // 2000~08년: 유럽 1.7%, 미국 2.2%
- 생산성 향상률*
1990~99년: 유럽 1.7%, 미국 1.7% // 2000~08년: 유럽 1.0%, 미국 2.0%
* 1995년 이전 유로존 생산성 향상률은 오스트리아 제외
※ 출처: OECD, WSJ에서 재인용
더구나 상황이 어려울 때 유럽의 유권자들은 '변화'보다는 '경제 안정'을 원했다. 최근 프랑스의 보수파들이 선거에서 진 것은 기업 우호적이면서 복지혜택은 감소시키는 정책 발향을 내놓은 사르코지 대통령에 대한 경고로 평가되고 잇다.
◆ 개별국 경쟁력 격차에 따른 정치적 긴장
게다가 유로존의 경제적 위기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역내 국가들의 경쟁력 등의 차별성에 따라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독일은 최근 수년 동안 고용비용 효율화를 통해 유럽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가계의 소득이 정체하여 유럽 최대 수요시장이 부진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프랑스 재무장관인 크리스탱 라가르드는 지난주 독일이 주변국 제품 수요를 충분히 창출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수 차례 반복했다. 이에 대해 독일 정치인들은 프랑스와 남유럽 국가들에 대항해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더 높이자는 식으로 대응했다.
문제는 독일 수출이 강력해지기는 했어도 전체적인 독일 경제는 취약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고, 이에 따라 독일 역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유럽개혁센터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심슨 틸포드는 "유로존은 경제 통합을 통해 생산성 향상과 성장 강화를 꾀했지만, 경제 통합은 느려지고 있다"면서 "고용시장 및 제품 시장의 유연성 부족으로 인해 유로권의 잠재성장률 달성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별 국가의 통화정책이 먹히지 않는 조건에서 유로존은 구조 개혁에 목을 매야 한다. 개별국가가 자국통화를 평가절하할 수도 없다.
◆ 복지 사회 모델을 바꿔라
이에 따라 남은 처방은 아끼던 "사회 모델" 자체를 바꾸는 쪽이란 의견이 제기된다. 연금 등의 혜택을 정말 필요한 사람으로만 제한하고 신체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하도록 강제하며, 나아가 기업가정신과 일자리 창출을 제약하는 기업과 고용시장의 법적인 한계를 철폐하라는 것이다.
기업의 대학생 채용을 촉진하는 비영리단체를 운용하면서 명성을 날린 프랑스의 여성 줄리에 쿠드리(Julie Coudry, 31세)도 과거와 같은 고용 보호는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녀는 "국가 부채가 막대하고 25%의 젊은이가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내가 속한 세대들은 스스로 문제를 풀어갈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는 국가로부터 모든 것을 바랄 수는 없다고 마음을 먹게 됐다"고 말했다.
유로화 도입 당시에는 이 같은 유럽 경제의 막힌 곳을 푸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단일 통화 도입으로 나라들 사이의 교역과 여행 그리고 노동력의 이동이 자유로워질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장기 성장을 위해 유로화가 기여한 바는 미미한 수준이다. 유로존 국가들은 연간 예산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로 3%를 넘기지 않도록 하고 전체 공공부채는 GDP의 60%를 한계로 한다는 규율에 합의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은 나라가 제재를 당하거나 하지 않고 있다. 이를 법제화 하려는 시도에 회원국들은 반기를 들었다.
각국 정부는 세계화 및 인구노령화에 대비하는 경제 구조 개혁을 축으로 하는 이른바 2000년 리스본 조약을 수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유로화 도입에 누구보다 열렬한 지지를 보냈던 로마노 프로디 전 이탈리아 총리는 이제와서 "그 동안 경제 통합 시도는 섣부른 것"이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미국은 서로 다른 여러 주가 모여있지만 단일한 중앙은행과 경제정책 단위가 있는데, 유럽은 이런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래서 앞으로 진전할 정치적 의지가 형성되질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제 개혁은 개별 국가의 몫으로 남았다. 일부 국가들은 초기에 상당한 진전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물론 개혁의 기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프랑스 정부 당국자는 "노동자들이 더 많이 일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도록 그리고 연기금의 개혁도 속도를 내도록 하고 있다"면서 자신들이 개혁 작업에 늦게 나서기는 했지만, 2007년 이후에는 그 모멘텀이 강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독일이 최근 노인들의 연금이 줄어들지 않도록 보장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을 보면 별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