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린스펀의 유산과 ‘그린스펀 스탠더드’
(2) 그린스펀의 진정한 유산은 무엇인가?
물론 블라인더와 라이스 교수의 이런 분석은 이른바 그린스펀 스탠더드 혹은 유산에 대한 한 가지 해석일 뿐, 그 자체가 정답은 아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식별 가능한 그린스펀주의 혹은 그린스펀 룰은 없다”는 데 입을 모은다. 또 “대단히 정황적이고 심지어 기회주의적이기도 한”, 또는 “육감과 경험에만 의존한” 그린스펀의 태도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기준은 가능해 보인다. 즉, “그린스펀 시대 통화정책의 차별적인 방법론적 패러다임”, 즉 ‘리스크 관리 패러다임’ 말이다. 메이어는 이를 “유연성과 실용주의”라 했고,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는 “능동주의자(activist) 그린스펀”으로 부르며 이를 적극 옹호했다.
이 문제는 나중에 본격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고, 먼저 한 가지 단서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린스펀의 탁월한 데이터 분석 능력이 바로 그것. 오늘날 연준, 아니 글로벌 중앙은행, 나아가 금융시장 전반의 안목이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저명한 ‘페드 워처’(Fed watcher)인 그렉 이프는 “난해한 데이터를 파악하는 그의 능력과, 전통적인 경제 원리가 더 이상 적용되지 않을 때 관습을 기꺼이 파하려는 의지”를 그린스펀의 성공 비결로 꼽고 있다.
그리고 그린스펀이 이른바 “누락 변수”(missing variable)라고 불릴 수 있는 한 가지 조사 방법을 정련화했다고 진단한다. 즉, “경제가 자신의 기존 모델과 배치되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 이를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미식별 변수를 추구한다”. 그 단적인 예가 1990년대 중후반 미국의 생산성 부활 문제인데, 실업과 인플레이션의 동반 하락에서 그는 이런 “누락 변수”에 주목했다.
그린스펀은 이와 관련해 ‘명왕성’의 비유를 들곤 했다. “명왕성을 발견하기 이전에 이미 과학자들은 천왕성과 토성이 예상 궤도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새로운 행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
그는 1950년대 초부터 기업을 대상으로 경제 컨설팅사를 운영하면서 명성을 쌓았다. 이런 경험에 기반, 과거를 미래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지침으로 가정하는 모델이나 전망 일체를 회의한다. 또 그의 데이터 장악력은 정부나 연준의 자체 통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각종 기업 보고서나 일화성 데이터들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과학이면서도 예술의 영역”이라 할 통계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를 재분류하고 뒤집을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소스를 동원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린스펀은 자신의 이런 여정을 ‘혁명적 과학자’ 갈릴레오나 아인슈타인과 비교한다. 특히 밥 우드워드는 “‘새로운 발견의 모델’로 아인슈타인의 매력은... 뭐가 변하고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면밀하고 꼼꼼히 관찰해 가면서 경제지표의 측정 내용을 분해해 보는 것이다”고 설명한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관찰되고 있을 때는... 측정을 잘못했거나 잘못된 것을 측정했거나 또는 오래된 경제 이론이 경제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얘기.
그린스펀도 “특정한 관계가 변했을 수도 있다는 최초의 징후는 통상 경제 세계의 작동 방식에 대한 기존 가설과 부합되지 않는 사건들의 부상이다”고 역설한다. 리스크 관리 패러다임이 본격화되는 것은 바로 여기다.
한편 이와 같은 ‘오묘한’ 유산 이면에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앞에서 든 취약점들 외에도, 자산 버블 문제는 지금도 부동산 버블/붕괴 논란으로 골치가 아프며, 미국의 막대한 경상적자와 제로 저축률 등 각종 ‘불균형’ 유제도 산적한 실정이다. 게다가 그에 대한 비판의 단골 메뉴로 ‘시장과의 과도한 불장난’도 들 수 있다.
영국의 주간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그린스펀의 퇴장과 관련해 “이런 불균형이 정리될 때까지는 그의 성과를 과찬하기는 이르며, 그 과정은 분명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히려 “그린스펀 휘하 연준이 생산성 기적에 대한 집착으로 과도한 통화정책의 위험에 대해 눈을 감았다”며, “그에 따른 단기적인 이득은 장기적인 비용을 대가로 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린스펀 시대의 유산을 “화폐적 근시안”(Monetary myopia)이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그린스펀의 ‘사후 청소’ 전략은 최후의 보류일 뿐, 특정한 버블 붕괴에 새로운 버블로 대응하는 공조 전략과는 달라야 한다”고 역설한다.
모건스탠리 출신의 앤디 시에도 “미국의 무역적자에 대한 그린스펀의 수용적 통화정책이 세계화를 주도하였다”면서 “세계화의 산파” 그린스펀이 “세계화의 탄생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투입한 진통제가 바로 금융 세계화에 힘입은 거대한 글로벌 부동산 거품”이라고 초를 친다. 그리고 “금융 세계화의 핵심 기능이 미국의 무역적자를 보전하도록 미국 바깥의 저축 잉여를 재순환시키는 데 놓여진 가운데, 이 과정에서 미국의 금융 제도가 지배적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버냉키는 거품이 붕괴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세계화에 대한 역풍을 막기 위해 신중하게 그 후유증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권고한다.
그린스펀의 근본적인 철학 혹은 세계관에 대해서도 잠시 살펴보자. 그는 “자유시장 자유주의자”(free market libertarian)를 자처한다. “19세기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동경”하며 “시장의 힘과 족쇄 풀린 자본주의에 대한 투철한 신념”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가 그에 대한 근본적인 의혹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가령, 래비 바트라는 독점 대기업을 “박해받는 소수”라 여기고 “무수한 납세자와 투자자들을 희생시킨” “냉정한 정의”를 추구하는 그의 유산을 “사기”라고 비판한다. 특히 그린스펀의 경제학, 즉 “그리노믹스”(Greenomics)를 “그리드노믹스”(Greednomics), 다시 말해 ‘탐욕의 경제학’에 불과하다고 폄하한다.
그린스펀은 이제 그가 풍미했던 한 시대의 뒷전으로 물러났다. 그는 퇴임 후 각종 강연과 회고록 작성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동란의 시대』(The Age of Turbulence)라는 제목으로, 준비 중인 회고록은 오는 9월 출간될 예정이다. 그는 여기서 연준 의장 시절의 경험과 개인사 등에 대해 폭넓은 논의를 가질 계획인데, 특히 “향후 수십 년의 전개 방식을 결정할 힘들을 탐구”하는 데 집중할 생각이다. 그 잠정 결론은 “글로벌 경쟁 압력이 향후 대다수 시장 지향적 경제를 미국식의 모델로 경사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편 그 외에도 여러 차례 강연을 갖고 있는데, 강연료만 달러화로 6자리 수, 즉 10만 달러이상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또 그의 높은 위상 탓에, 지금도 한 번씩 강연 내용이 시장에 직접적인 파문을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퇴임한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지난 2006년 2월 7일 리만 브라더스가 주최한 한 만찬 회의에서 그린스펀이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론을 시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즉시 시장이 격렬한 요동을 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주택 버블 붕괴의 저점통과 가능성과 달러화 대세 하락 불가피론 등을 제기하면서 역시 상당한 반향을 초래하고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그의 이런 행보가 실은 이중 버블 논란과 결부돼 미국 경제의 건전성 향배에 상당한 기득권을 지닌 때문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좌우간 그만큼 아직도 시장이, 아니 세상이 그의 자취에 깊이 빠져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여전히 미국 아니 세계 경제의 ‘구루’로서 그에 대한 관심은 여전한 실정이다.
사실 우리는 아직 새로운 시대, 즉 ‘버냉키 시대’에 들어선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오히려 지금도 그린스펀의 그늘 하에서, 이른바 “포스트 그린스펀 시대”(post-Greenspan era)를 살아가고 있다는 게 보다 적절한 진단일런지 모를 일이다. 그가 남긴 유산과 자취를 넘어서는 것은 후임자 버냉키에게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숙제라 할 것이다.
[뉴스핌 장보형 객원이코노미스트]
※본 특집의 저자인 장보형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한신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0여년간 국내 정보컨설팅 업체인 와이즈 인포넷에서 '국제금융/경제 팀장'을 맡아 국제 금융시장과 세계 경제 동향 점검 및 이슈 분석을 전담한 후, 현재는 '글로벌 마켓 이코노미스트'로서 프리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뉴스핌 객원 이코노미스트로 합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