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원 환율이 이레째 하락하며 910원 초반까지 하락, 9년 2개월 최저치를 경신했다.
전날(7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913.80으로 전날보다 2.60원 하락하며 마감, 종가 기준으로 지난 1997년 10월 2일 913.5원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달러/원 선물 12월물도 현물환율과 동반 급락하며 913.90으로 2.50원 떨어졌다.
달러/원 환율은 글로벌 달러 반등으로 전날보다 1.60원 오른 918.00원에 출발한 뒤 장중 920.60까지 고점을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업체 네고와 롱처분 등으로 장후반 913.00까지 급락, 지난 1997년 10월 10일 912.50원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가 막판 소폭의 개입 등으로 반등하며 마감했다.
달러/원 환율은 지난 11월 28일부터 하락하기 시작해서, 전날 7.90원이 급락하는 등 7일 동안 17.00원이나 빠졌다.
도처에서 "왜 당국의 개입이 없냐"고 난리다. 그만큼 시장은 흥분한 상태다.
이런 때일수록 냉정을 되찾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흥분할수록 핵심에서 멀어진다.
이날 오전 920원 근처에서 한 하우스에서만 3억달러를 사 갔다. 시장은 이를 당국의 개입으로 인식했다. 곳곳에서 매수(long) 주문이 이어졌다. 그러나 매수자가 역외로 최종 밝혀지면서 시장은 망연자실했다.
지난 11월에는 개입으로 940원 위까지 올렸던 당국이다. 그런데 910원대에서도 개입다운 개입은 없다.
◆ 외환당국, 환율하락에 대한 인식 바뀌었나
지난 20일 동안 한국은행과 재정경제부는 도대체 어떤 인식의 변화 및 전환 과정을 거친 것일까.
우선 이번 환율 하락이 역외나 투기세력에 의해 주도됐다면 어땠을까. 당국은 역외면 결전의 각오를 다졌을 테고 투기세력이면 당연히 응징에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환율하락은 수출업체들의 네고 물량이 주도하고 있다. 때문에 기업들도 예전처럼 "다 죽일 셈이냐"고 정부에 강하게 반발하지 못한다. 그냥 애처로운 눈빛만 당국에 보낼 뿐이다.
결론적으로 당국은 수출기업들의 배만 불리는 개입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올해 수출이 3,000억달러를 넘었다. 내년에는 더 한다고 한다. 수출업체들은 내년 수출 전망에 입각해 네고를 내놓는다. 그런데 내년도 환율 전망은 900~920원 정도로 비관적이다.
◆ 당국, 명분없는 개입은 회피하는 듯
당국이 이 물량을 모두 소화해 줄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불행히도 '실탄'은 한정돼 있다. 930~940원으로 올려놨는데 다시 내리면 당국으로서는 자존심만 상처를 입는다. 게다가 국회에서의 외평채 논란 이후 '명분없는 개입'은 그야말로 '공직생활 끝'을 의미하게 됐다.
개입이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만약 실탄은 고갈되고 환율이 다시 떨어지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그야말로 당국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 된다. '피같은 세금으로 업체 배만 불린 바보'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게다가 정권 말기다. 개입이 실패하면 바뀐 정권에서 철퇴를 맞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시중은행 한 딜러는 "수출업체들의 네고 물량은 당국이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업체와 싸우기보다 달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정부 구두개입의 톤도 완화된 듯
말이 달래는 것이지 당국자들 말 속에는 '너희들이 초래한 일이니 혼 좀 나봐라'는 심리도 분명 읽힌다. 업체들에 대한 자칭 ‘응징’(?)인 셈이다.
지난 6일 재경부 고위 관계자의 구두 개입을 잘 뜯어봐도 이런 해석에 힘이 실린다.
이 관계자는 "수출업체들은 원화가 계속 절상될 것이라는 일방적인 기대만으로 달러화를 팔고 있으나 내년에는 원화약세로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래와 위쪽 모두를 감안하지 않은 채 한 쪽 방향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환위험 헤지의 균형을 잃는 것"이라고 말해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업체들을 투기세력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이렇게 보면 개입다운 개입은 "중소기업 다 죽는다"며 공무원들에 대한 책임론과 비난이 빗발칠 때가 돼서야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아침 권오규 부총리도 금융경영인 조찬 강연에서 “외환시장 상황에 대해 우려한다”며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재경부 정례브리핑에서는 외환시장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 “정부로서는 환율 급락 등을 우려하고 시장상황을 예의주시하고 필요시 스무딩 오퍼레이션을 하는 세 가지”라며 강력한 개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톤을 낮췄다.
◆ 통화당국은 글로벌 달러 추이도 고려하는 듯
그렇다면 속도조절용 개입으로 절제하며 실탄을 최대한 아끼되 그 누구도 개입에 반기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칼을 빼드려는 건 아닐까. 달러/엔 환율의 바닥 확인도 변수일 것이다.
한국은행 김재천 조사국장의 이날 발언에서 좀더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김재천 국장은 오후 KBS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최근 원화환율이 일시적으로 조금 밑으로 내려가는 것으로 본다"며 "아직까지 외환시장에 개입할 필요성은 없다"고까지 했다.
김 국장은 "한은이 외환시장에 어떤 가격의 선을 정해두고 개입을 하지는 않는다"며 "투기세력 등으로 시장이 일시 교란된다든가 시장의 수급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고 거기에 괴리되어 움직일 경우 그것을 조금 교정하고 있는 차원에서 개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미국 달러화가 중장기적인 약세기조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 원화환율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도 "미 달러화가 급격하게 절하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굉장히 완만하게 중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내년도 달러/원 환율 전망과 관련해서도 그는 "환율수준을 가름하는 데는 수급전망 등 여러가지 요인이 있다"고 전제한 뒤 "내년도에 외화수급을 보면 경상수지가 거의 균형으로 가고 자본유출도 중립적일 것으로 관측돼 수급측면에서 보면 환율이 절상 또는 절하될 요인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 외환시장의 개입은 언제 실행될까
그렇다면 당국자들의 ‘목이 달아날 지도 모를’ 최악의 수준은 어느 지점일까.
우선은 910원 근처에서는 속도조절용으로라도 개입이 나올 것으로 시장은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비난이 빗발치는 시점은 아무래도 900원 붕괴가 아니겠냐는 게 중론이다.
다른 시중은행 딜러는 "과거에도 구두로만 개입에 나서고 액션은 없다가 최악의 상황 하루 또는 이틀 뒤 개입에 나선 적이 있다"며 "지금으로서는 그럴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 딜러는 "당국과 수출업체간 신경전이 향후 외환시장의 최대 관건"이라며 "투기세력들은 절대 분위기를 주도할 만큼 공격적일 수 없고 흐름을 타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국계 은행 딜러는 “당국이 수출이 호조를 보이는 상황에서 환율이 하락하는 것을 일단 수용하는 것 같다”며 “다만 문제는 중공업체들이 정부의 협조요청으로 주저하다가 아차 싶어 뒤늦게 추격 매도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중소수출기업들이 900원 이하로 떨어질 경우 수출을 포기하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며 “당분간 개입 경계감은 있겠지만 매도우위나 반등시 매도 관점에서 대응하면서 900원대 하향테스트를 하면서 상황을 지켜볼 도리밖에 없을 듯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