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연이어 공급량 감축을 공식 전달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러 나섰지만, 시장의 '신뢰 부족'과 관련된 고질적인 문제들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지난 주 긴급회의에서 OEPC은 일일 120만배럴 감산을 결정했지만, 작심한 듯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미국과 일본 정부도 OPEC의 유가에 대한 영향력 제고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지난 주말에 이어 이번 주 초까지 국제유가는 연일 급락했다. OPEC이 공식적으로 뭘 결정하든 받아주지 않겠다는 듯 보였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부 분석가들은 아예 "OPEC이 자기 무덤을 팠다"는 소리까지 내놓았다.
특히 사우디 아라비아가 이번 사태에 강제적으로 개입한 것이 전문가들의 흥미를 자아냈다.
사실상 OPEC의 실질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알리 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당초 이번 감산결정에 대해 매우 실용주의적 자세로 접근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미국 중간선거도 있고 해서 사우디는 감산결정을 통한 유가 부양하기 시도에서는 될 수 있으면 뒤로 빠져있고 싶어한 모양이다.
그러나 시장은 사우디가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OPEC의 결정에 대해서는 전혀 신뢰할 수 없다는 태도를 분명히 보여줬다. 최근 수년간 OPEC 생산량 통제의 강제력이 나름의 힘을 발휘한 것은 바로 세계 석유공급의 30%를 담당하는 사우디 석유장관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 시장수급은 OPEC의 강점이자 또한 맹점
시장 참가자들은 12월 총회에서 다시 50만배럴 정도 추가감산 결정이 뒤따를 것인지 궁금해하는 것 같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은 OPEC의 맹점이기도 하다.
이번 감산결정으로 인해 OPEC은 그 동안 시장을 부담스럽게 해왔던, 여유 생산용량이 상당히 증가하게 됐다. 감산 기준이 회원국들의 총 생산쿼터인 2,800만배럴이 아니라 실제 생산량인 2,750만배럴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여유생산용량의 증가는 실질적이다.
추가적인 감산결정이 뒤따르게 된다면, 여유용량은 100~150만배럴에서 300만 배럴 정도까지 늘어나면서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에 따른 일부 공급중단으로 국제유가 급등할 가능성을 억제해주는 완충장치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난 주 OPEC이 100만배럴 정도 감산을 예상한 시장을 '놀래주기 위해' 기대보다 20만배럴 더 감산하기로 결정한 것이 '자기무덤파기'였다는 주장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를 감안한 듯 OPEC의 에드먼드 다우코르(Edmund Daukoru) 의장은 12월 회의에서 다시 감산결정에 나설 것인지 결정하지는 너무 이르다는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끈다.
다우코르 의장은 23일 기자회견에서 계속 공급과잉 상태가 지속된다면 이를 줄여야 하겠지만, 반대로 잉여부분이 제거된 이후에는 다시 시장의 증산요청에 직면할 수도 있다면서 이 같이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일단 국제 석유시장은 사우디와 UAE가 적극적으로 나서자 OPEC의 감산약속을 믿어보기로 한 듯 하다.
올해 미국 겨울이 추울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해서 24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12월 인도분 가격은 전날보다 배럴당 54센트(0.9%) 오른 59.35달러에 마감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