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함양군은 2일 척지토성 학술발굴 현장을 공개했다
- 조사결과 척지토성이 가야 지배세력 치소성일 가능성이 확인됐다
- 5∼6세기 축조·수축된 산성으로 가야사·신라 지방지배 연구 핵심 유적이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체계적인 성곽 축조 방식 드러나
[함양=뉴스핌] 정철윤 기자 = 가야 말기 함양 지역 지배세력의 정치·행정 거점으로 추정되는 함양 척지토성 발굴 현장이 일반에 공개됐다.
함양군은 전날국가유산청 지원으로 추진 중인 '매장유산 학술발굴조사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함양 척지토성 학술발굴조사 현장을 공개했다고 2일 밝혔다. 발굴 조사는 (재)두류문화연구원이 맡았다.

두류문화연구원은 이번 조사에서 척지토성이 단순한 방어용 산성이 아니라 당시 함양 지역의 정치·행정 중심 기능을 담당한 치소성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서를 확인했다. 학계 일각에서 제기해온 함양 지역 가야 지배세력의 핵심 거점설을 뒷받침할 근거라는 평가가 나온다.
척지토성은 함양읍 백천리 일원에 위치한 둘레 약 730m 규모의 가야시대 산성이다. 2011년 '서부경남의 성곽'에 처음 학계에 소개된 뒤 2019년 정밀지표조사, 2020년 1차 시굴조사, 2021년 1차 발굴 및 2차 시굴조사에 이어 올해 2차 발굴과 3차 시굴조사가 진행됐다.
3차 발굴은 동쪽 체성부와 추정 동문지 일원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동쪽 체성부에서는 흙을 여러 겹으로 쌓아 올리며 다지는 층첩성토 축조기법이 뚜렷이 드러났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약 1500년 전 가야인의 토목기술 수준과 체계적인 성곽 축조 방식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추정 동문지 구역에서는 시기가 다른 석축시설 3기가 확인됐다. 이 가운데 일부는 물 흐름을 조절하는 보 기능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연구진은 동문지 일대 시설이 증·개축을 거듭한 점에 주목해 척지토성이 장기간 지역 지배의 핵심 거점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성곽 인근에는 함양 지역 지배세력의 대표 고분군으로 알려진 백천리고분군이 자리한다. 일대 고분군과 산성의 관계를 고려할 때 척지토성이 당시 함양 지역 정치·군사 활동의 중심지였을 가능성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출토 유물과 축조기법 분석 결과에 따르면 척지토성은 5세기 중엽 처음 축조된 이후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걸쳐 수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학계는 척지토성을 가야 말기 함양 지역 지배세력의 정치·행정 거점이자 이후 신라의 지방 지배체계가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핵심 유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번 조사 성과는 상대적으로 연구가 부족했던 함양 지역 가야사의 실체를 구체화하는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함양군은 발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역 고대사 연구를 확대하고 가야사 속 함양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데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현장 공개는 함양읍 백천리 산 2번지 일원에서 진행됐다. 발굴 과정과 주요 성과는 향후 영상 콘텐츠로 제작돼 한국문화유산협회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yun0114@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