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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정치분석] ①미국 하원 속기록에서 찾은 민주주의 언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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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핵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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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73년 12월 16일 식민지 주민들이 보스턴 항에서 차 342상자를 바다에 버리는 보스턴 차 사건이 발생했다.
  • 이 사건은 단순 조세 저항이 아니라 영국 제국의 과세 권한과 통치 정당성에 대한 도전이었고, 이후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는 구호가 북미 저항 운동의 핵심 언어가 됐다.
  • 독립선언과 전쟁 과정에서 대륙회의는 직접 과세권을 두려워해 심각한 재정난을 겪었고, 워싱턴의 군대는 열악한 보급 속에서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차관에 의존해 전쟁을 이어갔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독립혁명, 새 공화국, 그리고 의회언어의 탄생(1789-1827)

*초기 미국 의회 기록은 오늘날처럼 완전한 속기록은 아니었다. 1789년부터 1824년까지의 토론은 후대에 '의회 연대기'인『Annals of Congress』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었다. 이는 당시 신문 기사, 의원 메모, 비공식 기록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자료였다.

이후 민간 언론인이 의사발언 기록들을 모아 완성한 『Register of Debates』(1824-1837), 속기록 발달로 실질적으로 의회의 발언을 상세하게 기록한 『Congressional Globe』(1833-1873)를 거쳐 1873년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Congressional Record』(1873-현재) 체계가 자리 잡았다. 이 모든 자료는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디지털 자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 글의 주 자료인 초기 미국 의회 기록은 당시 자료를 다시 정리한 민간 기록물이었기 때문에 본 회장의 분위기, 발언과 반응 등이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초기 미국 기록에는 독일 바이마르 의회 속기록처럼 박수, 웃음, 야유가 체계적으로 기록되지는 않고 장내 소란, 의장의 개입, 의원 간 충돌 등 간단한 서술이 반복적으로 회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 W.D. Cooper의 역사화(1789). [사진=위키피디아]

세금, 그리고 독립의 여명

1773년 12월 16일 밤.

미국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매사추세츠의 지도자 새뮤얼 애덤스(Samuel Adams)는 보스턴에 모여 있던 식민지 주민들에게 영국 총독이 차를 실은 영국 동인도회사의 선박을 돌려보내라는 시위대의 요구를 거부했다고 외쳤다.

이에 분노한 수십 명의 식민지 주민들이 배가 정박하고 있는 항구로 집결했다. 그들은 바로 다트머스(Dartmouth), 엘리너(Eleanor), 비버(Beaver)호 등 세 척의 선박에 올라 영국 동인도회사의 차가 담긴 342개의 상자를 바다에 버렸다.

오늘날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단순한 조세 저항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가 세금을 부과할 권한을 가지는가, 시민은 어떤 정부에 복종해야 하는가를 둘러싼 통치 정당성을 놓고 벌인 충돌이었다.

보스턴 사건에서 보듯 미국 건국의 역사는 세금과 직결되어 있다. 과중한 세금은 곧 압제의 동의어였다.

역사학자 벤저민 카프(Benjamin L. Carp)가 쓴 '애국자들의 도전'(Defiance of the Patriots, 2010)이라는 저서에서 보스턴 차 사건을 단순한 폭동이 아니라 영국 제국의 통치 정당성 자체에 대한 공개적 도전으로 설명한다.

미국 독립운동 지도자 새뮤얼 애덤스(Samuel Adams) 초상화(John Singleton Copley). [사진=위키피디아]

실제로 당시 바다에 버려진 차의 가치는 약 9600파운드에 달했다. 단순 물가 기준으로 환산하면 현재 화폐가치로 20~30억 원 규모밖에 되지 않지만, 당시 영국 재정 구조 속에서 그 의미는 훨씬 더 컸다.

1770년대 영국군 일반 병사의 연봉이 약 7~8파운드 수준(18세기 후반 대영제국 보병(Infantry Private)의 공식 일당은 8펜스(Pence)였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식민지 주민들이 바다에 던져버린 차는 1200명 이상의 영국군 병사 1년 급여에 해당하는 규모였다(Unger, 2011; Labaree, 1964).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 상징성이었다. 당시 영국 정부는 프랑스와 벌인 7년 전쟁(1756–1763) 이후 급증한 국가 부채와 북미 주둔군 유지 비용 때문에 심각한 재정 압박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었다.

런던 정부는 북미 식민지 방어 비용의 일부를 식민지 주민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바로 그 재정 논리 속에서 인지세법(Stamp Act), 타운젠드 관세(Townshend Duties), 차세(Tea Act) 등이 차례로 등장했다(Bailyn, 1967; Middlekauff, 2005).

당시 버지니아주의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는 1765년 '버지니아 결의안'(Virginia Resolves)에서 식민지 주민들도 영국 시민과 동일한 과세 원칙을 적용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매사추세츠의 제임스 오티스(James Otis)는 "대표 없는 과세는 폭정이다(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 is tyranny)"라고 말했다.

이후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는 표현은 북미 식민지 저항 운동의 핵심 정치 언어로 자리 잡았다. 그만큼 세금은 미국 독립전쟁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장 민감한 단어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초상화(Gilbert Stuart).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1776년 여름, 필라델피아의 펜실베이니아 주의사당(State House)에 13개 식민지 대표들이 모였다. 이들은 영국과의 완전한 결별 여부를 놓고 찬반으로 대립하며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마침내 1776년 7월 4일 독립 선언서가 채택되었지만, 미국의 독립은 선언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미국은 약 5년에 걸친 독립전쟁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재정 사정이 미국 독립전쟁을 힘들게 만들었다.

당시 13개 식민지 주 대표들이 모인 대륙회의(Continental Congress)는 영국의 과도한 세금 폭정에 저항하며 탄생한 임시 연합체였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새로 만든 대륙회의에 직접 세금을 제정하고 강제로 징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당시 대륙군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은 반복적으로 병력 부족과 재정난을 대륙회의에 호소했다.

1777년 12월 23일, 혹독한 겨울 속 밸리 포지(Valley Forge)에 주둔 중이던 워싱턴은 대륙회의에 보내는 편지에서 당시 미군의 절박한 현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오늘 현재 최소 2873명의 병사가 맨발이거나 제대로 된 군복조차 없어 전투에 나설 수 없는 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We have this day no less than 2,873 men in camp unfit for duty because they are barefoot and otherwise naked (George Washington to Continental Congress, December 23, 1777)."

독립전쟁 기간 재정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프랑스 대사로 파리에 파견되었던 벤자민 프랭클린과 훗날 제2대 대통령이 되는 존 애덤스 등의 끈질긴 외교적 노력 덕분에, 영국을 견제하려던 프랑스 왕정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현금 차관과 군사 장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고, 네덜란드 은행가들로부터 얻어낸 해외 차관 역시 미국의 무너진 재정을 간신히 지탱해 준 인공호흡기였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사진=뉴스핌 DB]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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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골 잔치' 잉글랜드, 프랑스 6-4 제압 [서울=뉴스핌] 한지용 기자 = 잉글랜드 공격수 부카요 사카가 3·4위전에서 해트트릭(한 경기 3골 이상)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프랑스의 주장 킬리안 음바페는 팀 패배 속에서도 멀티 골(한 경기 2골 이상)을 넣으며 이번 대회 및 월드컵 역사상 최다 득점자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잉글랜드는 19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3·4위전에서 프랑스를 5-3으로 눌렀다.  [플로리다 로이터=뉴스핌] 잉글랜드 부카요 사카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3·4위전에서 팀의 6-4 승리를 이끌었다. 2026.07.19 football1229@newspim.com 잉글랜드가 전반 3분 만에 앞서갔다. 해리 케인을 대신해 주장 완장을 찬 데클런 라이스가 상대 공격을 차단한 후 직접 공을 몰고가 중거리 슈팅을 날려 프랑스 골문을 열었다.  이후 라이스는 전반 18분 코너킥 상황에서 애즈리 콘사의 헤더 득점을 도우며 순식간에 공격 포인트 2개를 기록했다. 잉글랜드는 2-0으로 리드했다.  잉글랜드는 전반 37분 3-0을 만들었다. 잉글랜드 공격수 마커스 래시퍼드의 일대일 찬스가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이 루즈 볼을 부카요 사카가 잡자 골키퍼는 골문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사카는 래시퍼드와 공을 주고 받은 후 비어 있는 골문을 향해 슈팅을 날려 세 번째 득점을 기록했다. 잉글랜드 수비가 발을 뻗어 공을 건드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이후 전반 추가시간 사카가 날렵한 움직임을 통해 패스를 받은 후 왼발로 침착하게 마무리하며 멀티 골을 넣었다. 잉글랜드는 전반에만 네 골을 몰아쳤다.  [플로리다 로이터=뉴스핌] 프랑스 킬리안 음바페가 3·4위전서 대회 9·10호골을 기록, 득점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2026.07.19 football1229@newspim.com 후반전 프랑스는 교체 카드 4장을 꺼내들며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성공적이었다. 프랑스는 후반 주도권을 쥔 채 잉글랜드를 압박했다.  후반 3분 만에 음바페가 만회 골을 넣었다. 마이클 올리세가 침투하는 음바페를 향해 스루 패스를 찔러 넣었다. 음바페는 왼발로 볼을 밀어넣으며 대회 9호골을 기록했다.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8골)를 제치고 득점 단독 선두에 등극했다.  음바페는 도움도 기록했다. 후반 9 왼쪽 지역에서 침투하는 브래들리 바르콜라를 향해 좋은 패스를 넣어줬고, 바르콜라가 오른발로 마무리하며 2골 차로 추격했다. 후반 21분 음바페의 결정력이 다시 돋보였다. 페널티 박스 부근에서 올리세와 2대 1 패스를 주고 받은 음바페는 다시 왼발로 골문 구석에 공을 꽂으며 한 골차로 쫓아갔다.  [플로리다 로이터=뉴스핌] 잉글랜드 부카요 사카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3·4위전에서 팀의 6-4 승리를 이끌었다. 2026.07.19 football1229@newspim.com 동점 위기에 몰린 잉글랜드는 미드필더 주드 벨링엄과 엘리엇 앤더슨을 투입하며 에너지 레벨을 높였다. 이후 후반 42분 제드 스펜스가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사카가 키커로 나서 오른쪽 하단에 공을 차 넣으며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잉글랜드는 5-3으로 점수 차를 벌렸다.  이후 후반 추가시간 프랑스 우스만 뎀벨레가 한 골 더 만회하며 끝까지 추격 의지를 불태웠지만, 벨링엄이 추가골을 넣으며 경기를 끝냈다. 난타전이 펼쳐진 3·4위전에서는 양 팀 도합 10골이 터진 끝에 잉글랜드가 6-4로 승리했다.  한편 2012년부터 프랑스 대표팀을 맡았던 디디에 데샹 감독은 마지막 경기에서 패했지만, 웃으며 경기장을 떠났다. 데샹 감독은 2018 러시아 대회 우승, 2022 카타르 대회 준우승, 이번 대회 4위를 기록하며 프랑스 황금세대를 이끌었다.   또 이날 승리한 잉글랜드는 2900만 달러(약 432억 원), 4위 프랑스는 2700만 달러(약 402억 원)의 상금을 받는다. football1229@newspim.com  2026-07-19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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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넘 의원, 英 집권 노동당 새 대표로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북부의 왕'으로 불리는 앤디 버넘 의원이 17일(현지 시각) 영국 집권 여당인 노동당의 새 대표에 올랐다.  버넘 대표는 오는 20일 키어 스타머 총리를 이어 영국의 차기 총리 자리를 확정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은 의회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집권당의 대표가 총리가 된다. 노동당은 이날 특별 당대회를 열고 버넘 의원을 당 대표로 공식 선출했다. 버넘은 전날 마감된 당 대표 경선 후보 등록에서 단독으로 등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노동당 공보에 따르면 버넘은 노동당 소속 하원의원 379명과 노동조합·사회주의 단체 23곳의 지지를 받아 당 대표로 선출됐다"고 했다. 현재 노동당은 전체 의석 650석 중 403석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중 94%가 버넘을 당 대표로 선택한 것이다.  앤디 버넘 영국 노동당 새 대표가 17일(현지 시각) 특별 당대화에서 대표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샤바나 마무드 내무장관의 새 대표 선출 결과 발표와 함께 무대에 오른 버넘은 일성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되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는 "저를 지지한 노동당 의원들이 모두 영국 곳곳의 잊혀진 지역을 위해 과거의 노동당을 되찾아 달라는 요구를 들었다"면서 "우리는 그 부름에 응답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오늘 하나로 뭉쳤고, 그 힘을 오랫동안 정치로부터 희망을 잃은 사람들과 지역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다섯 가지 변화와 약속을 실천하겠다고 했다. 노당동의 단결을 위해 '파벌 문화'를 종식하겠다고 했고, "이번이 바뀔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면서 비난보다 문제 해결의 정치를 추구하겠다고 했다. 그는 "영국 정치가 덜 독해졌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세번째 변화로는 노동당의 정치적 지향을 거론하며 노동당답게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녹색당보다 더 녹색당처럼 행동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고, 영국개혁당(Reform UK)보다 더 개혁당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과거처럼 보수당 옷을 너무 많이 입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담대하고 자신감 있게, 진정한 노동당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부와 남부, 동부와 서부,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북아일랜드 모두를 위한 지도자가 되겠다"는 것이 네 번째 약속이고, 중앙정부가 독접하고 있는 권한을 웨스트민스터와 화이트홀에서 지역 사회로 되돌려주는 지방분권이 다섯 번째 약속이라고 했다.  버넘 대표는 자신이 친기업 노선을 취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그레이터맨체스터 시장 시절 친기업적인 시장이었듯이 노동당 대표가 된 뒤에도 친기업적인 지도자가 될 것"이라며 "우리는 기업과 함께 지역을 되살렸고 그 방식을 영국 전체로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1970년 1월 리버풀 북쪽 교외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15세 때 노동당에 가입했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영어를 전공한 뒤 의원 보좌관 등을 거쳐 2001년 총선에서 그레이터맨체스트의 리(Leigh) 선거구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16년간 하원의원을 지냈다.  이 기간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 정부에서 내무부·재무부 차관, 문화장관, 보건장관 등을 역임했다.  2010년과 2015년에 당 대표에 도전했지만 에드 밀리밴드와 제러미 코빈에서 패했다.  2017년 중앙정치를 떠나 새로 만들어진 그레이터맨체스터 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2021년과 2024년 선거에서도 내리 승리했다.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버스 공영화를 추진하고 통합 대중교통망 구축과 주택 공급 확대 등으로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중앙 정부에 맞서 북부 지역 지원 확대를 요구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이때부터 '북부의 왕(King of the North)'이라는 별명이 널리 퍼졌다. 버넘 시장 재임 시절 그레이터맨체스터는 전국 평균을 상회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버넘 대표는 당 대회 연설에 앞서 소셜미디어에 "앞으로 며칠은 영국을 누가 통치하느냐만 바꾸는 것이 아니며 영국이 어떻게 통치되는지를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권력을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릴 기회"라고 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현 스타머 총리보다 더욱 왼쪽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택과 교통, 교육 등과 관련된 권한을 지방으로 분산해 각 지역에 맞는 경제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의 '맨체스터리즘'(Manchesterism)을 주장한다.  맨체스터에 제2 총리실을 둬 중앙정부와 효율적으로 업무를 조율하는 '북부 총리실(No. 10 North)' 구상도 밝혔다.  ihjang67@newspim.com   2026-07-1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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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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