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호·이기·홍필주, 비밀결사 조직해 을사오적 처단 계획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국가보훈부는 30일, 일제의 을사늑약에 맞서 '을사오적(乙巳五賊)' 처단을 계획했던 오기호(1865∼1916), 이기(1848∼1909), 홍필주(1857∼1917) 선생을 '2026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세 인물은 외교적 저항에서 의열투쟁, 나아가 계몽운동으로 이어지는 독립운동사의 흐름을 잇는 상징적 인물이다.
1905년 11월, 일본은 강제 외교조약인 을사늑약을 체결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이로써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 일본 통감부 세력이 내정을 장악했고, 이에 대응해 전국적으로 의병 봉기가 확산됐다. 초창기 독립 지식인들은 일본 정부와 주요 인사에게 항의 장서(長書)를 보내 국권 회복을 촉구했으나 별다른 결실을 얻지 못했다. 이후 투쟁은 무장 의열 노선으로 급격히 옮겨갔다.

오기호 선생은 이러한 전환기를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외교적 시도의 한계를 자각하고 비밀결사 '자신회(自新會)'를 조직, 폭탄과 저격을 통한 을사오적 처단을 계획했다. 자금 조달과 무기 구입을 직접 담당하며 행동 계획을 이끌었고, 이후에는 계몽운동과 실업교육, 대종교 포교활동 등으로 독립 사상을 확산시켰다. 정부는 그 공훈을 인정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기 선생도 자신회 창립의 핵심 인사로 활동했다. 그는 조직의 취지를 분명히 하는 '자신회 취지서'를 작성하며, 을사오적 처단을 "민족 해방을 위한 정치적 행위"라고 했다. 체포 후 법정에서는 '현장(自現狀)'을 제출해 직접 투쟁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1909년 순국할 때까지 교육·계몽운동과 대종교 확산운동에도 참여했으며,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됐다.

홍필주 선생은 황무지개척권 반대운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이기와 함께 도쿄 외교 사절단으로 활동하며 을사늑약 저지를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자신회에 가담했다. 귀국 후에는 대한자강회, 대한협회 등 계몽단체를 조직해 국민 교육운동에 헌신했으며,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보훈부는 "을사오적 처단 계획은 비록 실행되지 못했지만, 외교 독립운동에서 의열투쟁, 그리고 정신·교육운동으로 이어지는 전환의 계기였다"며 "세 분 선생의 공훈은 오늘날 민주·자주 정신의 초석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gomsi@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