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 저장 시설은 포화 상태
[세종=뉴스핌] 신수용 기자 = 에너지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일관성과 안정성이다. 전력은 버튼 하나로 쉽게 껐다 켤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수십 년에 걸친 대규모 설계와 투자, 건설, 운영이 이어지는 거대한 시스템이다. 원전이나 발전소 건설에는 10년 이상 걸린다. 송전망과 저장시설, 연료 조달 체계까지 유기적으로 맞물려 움직인다.

이재명 정부가 최근 에너지 정책의 무게중심을 원전으로 옮겼다. 인공지능(AI) 산업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 수요와 탄소중립을 동시에 충족하고, 국민적 수용성이 높아진 점을 이유로 들었다.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 과정은 가볍게 넘어갈 수 없다.
이재명 정부는 초기에는 재생에너지를 전면에 내세우며 태양광과 풍력 확대에 집중하며 원전은 축소 혹은 관리 대상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전력 수급 불안이 커지고 산업계의 경고가 이어지자, 여론에 기대 정책 방향을 슬며시 바꾼 듯한 모양새다.
이 같은 혼선은 이번 정부만의 일이 아니다. 역대 정부마다 에너지 정책의 노선이 달라지며 일관성과 안정성이 흔들렸다. 이명박 정부는 원전 확대와 해외 수출을 국가 전략으로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원전 중심의 기조를 유지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핵심 정책으로 내세워 신규 원전 건설 중단과 노후 원전 조기 폐쇄를 추진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은 10년 이상 지속되는 장기 정책보다 정권 교체에 따라 방향이 바뀌는 구조를 반복해왔다. 그 부담은 결국 전력 시스템과 국민에게 돌아갔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 시절 원전 신규 부지로 확정됐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해제된 경북 영덕군에선 찬반을 둘러싼 지역 갈등만 커졌다.
이재명 정부가 실용을 중시해 원전을 선택했다면, 이제라도 역대 정부들이 외면한 진짜 문제를 마주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저장 시설 증설이다. 정책 혼선 속에서 주요 원자력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 저장 시설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원전은 가동과 동시에 방사능을 띤 사용후핵연료를 필연적으로 발생시킨다. 그러나 이를 안전하게 저장하고 처리할 공간과 체계는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가 원전을 선택했다면, 이를 안정적으로 이행할 방사성폐기물 영구 처분 시설 건립도 서둘러야 한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영구 처분 시설 필요성은 수십 년 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 방향이 흔들리며 실현되지 못했다. 그 결과 사용후핵연료는 여전히 임시 저장에 머물고 있고, 이는 전력 안정성의 위험 요소가 되고 있다. 2030년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한울 2031년 ▲고리 2032년 ▲신월성 2042년 등 주요 원전이 저장 한계에 도달할 예정이다.
에너지 정책이 정권이나 여론에 따라 바뀐다면, 이미 투입된 수조 원대의 투자·기술·인력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 고준위 방사선폐기물 영구 처분 시설처럼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필수적인 과제를 더 이상 뒤로 미뤄서는 안 된다. 에너지 정책은 인기투표가 아니라 국가의 생존 전략으로 다뤄져야 한다.
aaa22@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