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찬우 기자 = 국내 조선업계가 수주 호황 국면에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글로벌 발주가 이어지며 주요 조선소 도크는 가득 찼지만, 업계의 시선은 이미 '그 이후'를 향하고 있다. 단발성 건조 경쟁에 머물 경우 호황 이후 급격한 조정 국면을 피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조선사들이 동시에 주목하는 키워드는 인공지능(AI)과 MRO(유지·보수·정비)다. 성격은 다르지만, 각각 조선업의 구조와 수익 모델을 바꿀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 참석해 인공지능과 에너지 산업의 미래 방향성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이는 글로벌 산업 전환 속에서 조선업 역시 기술과 사업 구조 재편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부상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평가다.
AI는 조선업의 '체력'을 키우는 역할을 맡고 있다. 설계 자동화와 공정 최적화, 품질 관리, 안전 모니터링 등 조선소 전반으로 AI 기술 도입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AI는 새로운 사업이라기보다 불황 국면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산업 전반의 인프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 HD현대는 조선·에너지·건설기계 전반에 데이터와 AI를 접목해 의사결정 속도와 정확도를 높이는 전략을 추진 중이며,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 역시 디지털 트윈과 자동화 설계 등 기술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AI는 조선사 간 기술 격차를 벌리는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업 전반에서 AI 기반 기술 도입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으며, 이는 생산성뿐 아니라 품질과 안전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MRO는 조선업의 외연을 넓히는 실질적인 수익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MRO 사업은 수년에 걸쳐 진행되는 선박 건조와 달리 계약 기간이 짧고 수익화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함대 유지에 필수적인 정비 수요가 꾸준해 선박 발주 사이클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특히 연간 약 20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미국 함정 MRO 시장이 열리면서 국내 조선업계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미국은 자국 내 조선소와 정비 인프라 부족으로 동맹국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중국은 안보 리스크로 사실상 배제된 상태다. 고난도 함정 건조 경험과 대형 도크, 숙련 인력을 갖춘 한국 조선사들이 유력한 파트너로 거론되는 배경이다.
이에 국내 조선업계는 최근 미국 함정 MRO 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HJ중공업은 최근 미국 함정 MRO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인 미 해군 함정정비협약(MSRA)을 취득했으며, 삼성중공업과 SK오션플랜트 등도 관련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수주 성과도 이어지고 있다. 한화오션은 2024년부터 미국 함정 MRO 수주를 이어오고 있으며, HD현대중공업은 최근 미 해군 7함대 소속 4만1000톤급 군수지원함 'USNS 세사르 차베즈(Cesar Chavez)'의 정기 정비(Regular Overhaul) 사업을 수주했다.
특히 HD현대중공업은 앞서 첫 MRO로 수행한 '앨런 셰퍼드'함 정비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품질과 대응 속도 측면에서 미 해군의 신뢰를 확보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함정 MRO 사업이 군수지원함을 넘어 전투함 MRO까지 확대될 경우, 조선사의 수익 구조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캐시카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chanw@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