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인 어머니들이 겪은 산불화재 투라우마와 힘든 시집살이 고통 구술
[대구=뉴스핌] 김용락·남효선 기자=오는 20일 경상북도 의성청소년문화의집에서 매우 이색적인 행사가 펼쳐진다.
14일 의성군에 따르면 올 3월 경상북도 의성에서 발생해 북부지역인 안동, 청송, 영양, 영덕 지역 등에서 사상 최대의 피해를 낳은 산불화재가 발생했었다. 이로 인해 집과 가축, 농작물을 잃고 고통받고 있는 주민들을 '시(詩)치료'를 통해 치유받은 증언을 모은 치유시집 '소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출판기념회를 겸한 주민들의 '인생시 낭독회'와 '친필 시화 전시회'가 바로 그것이다.
'2025년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과 산불피해 치유문학 인생시집'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는 의성군 단촌면 구계2리와 신평면 용봉리 주민 17명의 구술시가 실려 있다. 이 시집은 2023년 의성문학상주작가이자 고향이 의성인 대구경북작가회의 김수상 시인의 제안을 손건옥 의성군립도서관 관장이 받아들여 시작된 프로젝트로, 2025년 의성군립도서관 상주작가 사윤수 시인과 함께 두 시인이 지난 7월부터 10월까지 여러차례 주민들을 직접 찾아뵙고 면담해서 만들어진 기록물이다.

고령인 어머니들이 겪은 산불화재에 대한 투라우마와 인생사 힘든 시집살이의 고통이 여과없이 진술돼 있는데, 이번 화재로 집과 창고뿐만 아니라 족보, 농사일기장, 자녀들에게 줄 깨와 참기름, 딸과 며느리가 사준 값비싼 새옷, 자녀들이 장한 부모님이라고 직접 만들어 준 표창장 등 모든 게 하루 아침에 불타서 허공 속으로 사라져버린데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이 곧곧에 선명하게 형상화돼 있다. 구술시 제목만 봐도 시집 내용이 짐작 갈 정도로 아름답고 구체적이다.
▲단촌면 구계2리 '먹을 것도 많고 풍족하다고 해서 시집을 오긴 왔는데'(강영자, 86세) '시집살이 하도 힘들어서, 가도 되는 줄 알았으면 걸어서 안 가고 뛰어갔을 거다'(권순화, 81세) '내가 고생한 거는 사흘 밤낮을 얘기해도 다 못 해요'(권화순, 88세) '아들들 결혼하는 거 보는 게 소원인데,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세상살이인 것 같다'(김시박, 79세) '엄청난 산불에 기억도 다 탔습니다'(김정자, 77세) '다 타버린 산도 집도 검고, 전기도 수도도 다 끊기고요'(박복희, 73세) '열여섯에 시집와서 철이 없어 수건을 휙휙돌리며 고운사에서 놀았어요(배수놈, 91세) '내 별명은 처녀농군이었습니다'(신순희, 69세) '수십 년 적어 온 기록장이 다 타서 마을 역사가 사라졌습니다'(장문자, 77세) '골짝 외딴곳에 가서 혼자 많이 울었어요'(한윤순, 79세)
▲신평면 용봉리 '산불이 꺼지고 나니 피신 갔던 왜가리들도 다시 날아왔어요'(권화자, 84세) '장갑도 없이 꽝꽝 언 얼음을 깨고 빨래를 하면 손이 얼어 터지곤 했어요(김귀순, 85세) '내 마음도 새까맣게 타는 거 같았어요(김일선, 84세) '의성읍에서 세 갈래 길을 허위허위 걸어서 오니 골짝도 그런 골짝이 없어 하늘만 빠금하더라고요(신금호, 94세) '보리가 파랗게 핀 들판을 비를 맞으며 걸어 시집갔습니다'(신후남, 89세) '내가 지금 꽃밭을 매듯이 자식들한테 좋은 일들만 있었으면 좋겠어요'(옥신식, 85세) '아침에 일어나면 공기도 물도 모든 것이 감사하니더'(정분순, 85세)

이 책에 대해 김주수 의성군수는 "산불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인생시집이 우리 의성에서 최초로 탄생하게 돼 의미가 깊다"는 소감을 전했다. 김주형 단촌면장은 "책을 읽어보니 주민들의 산불피해와 구체적인 삶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다. 앞으로 더 정성을 기울여 어르신들을 보살피겠다"고 말했다.
김수상 시인은 "어르신들의 인생을 받아 쓰면서 제가 오히려 많이 배운 시간이었고 이 분들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가 있구나, 이 분들의 땀과 눈물 덕분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사윤수 시인은 " 마음의 상처가 아직 덜 아물었는데도 마을 어르신들께서 다행히 문을 활짝 열어 주셔서 석 달이 넘도록 구술작업을 보람있게 할 수 있었다"며 "용봉리와 구계2리 어르신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yrk525@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