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원·권리당원 투표 가치 1대 1 추진
대표 경선 때 당원 이기고 대의원서 져
권리당원 지지세로 의원 열세 극복 의도
[서울=뉴스핌] 이재창 정치전문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임 준비에 일찌감치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당원 주권 시대를 앞세워 권리당원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는 당헌·당규 개정에 착수했다. 이를 통해 자신을 대표로 밀었던 권리당원을 확고한 지지 기반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핵심 내용은 대의원과 권리당원 1인 1표제다. 현재 당 대표,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이 20대 1 미만으로 돼 있는 규정을 없애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권한을 1대 1로 만든다는 것이다. 사실상 대의원제 폐지다.
![]() |
|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5.11.13 pangbin@newspim.com |
대의원은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의 장악력이 높다. 지지 의원 수가 많은 후보가 절대 유리하다. 정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의원은 한 자릿수로 전해진다. 대의원제는 의원 수가 적은 정 대표에게는 연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대의원제가 없어지면 의원들의 당원 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상대적으로 권리당원의 지지세가 강한 정 대표가 절대 유리해질 수 있다.
지난 8월 2일 전당대회 투표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정 대표는 경쟁자였던 박찬대 후보와의 대결에서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66.48% 대 33.52%로 앞섰지만, 대의원 투표에서는 46.91% 대 53.09%로 뒤졌다.
정 대표는 전대에서 대표로 선출된 뒤 "저의 당대표 당선은 당원 주권시대를 열망하는 민주당 주인이신 당원들의 승리"라고 했다. 당원들이 자신을 대표로 만들어 줬다는 얘기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대의원제 폐지는 정 대표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권리당원의 압도적 지지로 현역 의원 열세를 극복했다.
이를 밀어붙일 명분은 당원 주권주의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표 시절 주창했던 화두인 만큼 당내에서 반대할 명분이 약하다. 정 대표가 이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배경이다. 이를 통해 정 대표가 자신에게 유리한 경선 환경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민주당은 19일부터 20일까지 당헌·당규 개정과 관련해 권리당원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당원 투표를 실시한다. 현행 당 대표,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이 20:1 미만으로 규정돼 있는데 이를 삭제하는 내용이 골자다.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투표 가치를 1대 1로 동등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지방선거 공천 룰도 당원 중심으로 바뀐다. 예비 후보자 검증위를 통과한 예비 후보가 4인 이상일 때는 권리당원 100% 참여로 1차 조별 예비 경선을 치르게 된다. 2차 본선에서는 권리당원 50%와 일반 국민 50% 선호 투표제를 통해 50% 이상 득표자를 후보로 결정하는 '결선 투표제'를 도입한다.
또 기초·광역 비례대표 선출 방식도 개정한다. 기초·광역 비례대표 순위를 각급 상무위원이 선정해 온 현행 제도를 바꿔 권리당원 100% 투표로 정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모두 권리당원이 쌍수를 들어 반길 내용이다.
물론 대의원제 폐지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친명(친이재명)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당원 숫자가 호남에 과도하게 쏠려 나타날 수 있는 지역 대표성의 왜곡 현상을 보정하기 위해 도입된 대의원제를 폐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다.
정 대표는 이를 의식한 듯 지난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강력한 개혁 당 대표로서 당원 주권시대, 1인 1표 시대를 열겠다는 전대 때 약속을 실천하겠다"며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 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 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쐐기를 박았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19일 김어준 씨 유튜브 채널에서 "당에서 대의원·권리당원 투표 비율을 동등하게 해 당권 주권 중심 정당을 만들겠다는 오랜 약속이 있었고, 그런 방향이 시대 정신"이라고 말했다. 다분히 당내 이견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정 대표가 이런 일각의 우려에도 이 같은 내용의 당헌·당규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내년 8월 대표 경선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된다. 권리당원의 영향력 확대로 이들의 마음을 사 지지 기반화하는 동시에 대의원제 폐지로 의원들의 입김을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이를 위해 지난 8월 대표 취임 이후 사전 정지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이 대통령과 갈등을 빚으면서까지 검찰 개혁과 사법 개혁 등의 속도전을 밀어붙인 것도 다분히 이들을 의식한 행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강경한 목소리를 사실상 대변한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정 대표가 연말까지 검찰·사법·언론 3대 개혁을 완수하겠다고 공언해온 만큼, 당심을 겨냥한 강경 노선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정 대표를 미는 강성 당원들이 이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서다.
정 대표가 권리당원 권한 확대를 강력히 추진하는 것이 최근 김민석 국무총리의 당권 도전설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 총리는 서울시장 차출설 등이 돌았으나 본인은 당권 도전에 무게를 싣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권을 잡은 뒤 대권에 도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김 총리가 당권 도전에 나서면 만만치 않은 싸움을 할 수도 있다. 김 총리는 이 대통령과 계속 호흡을 맞춰 왔다는 점에서 친명계 대다수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감안해 정 대표가 선수를 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관건은 정 대표 의지대로 사실상 대의원제 폐지와 권리당원 권한 강화가 이뤄질지 여부다. 명분은 일단 정 대표 쪽에 있다. 당원 주권주의는 이 대통령이 주창해 온 화두라는 점에서다. 그렇다고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지는 않다. 일각에서 대의원제 폐지가 아닌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친명 중심의 반청파는 권리당원 권한 강화라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일방적으로 정 대표에게 유리해지는 상황을 방치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당헌 개정은 당무위원회를 거쳐 중앙위원회라는 최종 관문을 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논란이 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leejc@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