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한국서 열린 APEC, 성공적 마무리
지지부진하던 미국 관세협상 타결, 핵잠수함 승인
중국과 관계 복원 성공, 통화스와프 및 MOU 체결
실질적 결과물 아직 미공개…후속 과제 처리 관건
[세종=뉴스핌] 나병주 인턴기자 = 경주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지난 1일 막을 내렸다. 2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린 이번 회의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외교'가 빛을 발휘했다.
이 대통령은 당초 합의까지 긴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던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지난 29일 마무리 지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협상 후 브리핑을 열고 "어제 저녁까지도 전망이 밝지 않았지만, 당일에 급진전됐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관세 협상이 양국 간 대치 속에서 얼마나 극적으로 타결됐는지를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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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부 나병주 인턴기자 |
관세 협상 과정에서 핵심 요소였던 3500억 달러(약 50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협상도 한국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타결됐다. 10년간 2000억달러(약 285조원)를 투자하되, 연간 상한을 200억달러로 정해 국내 외환시장에 예상되는 위기를 막았다. 나머지 1500억달러(약 215조원)가 투입되는 양국의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는 한국 기업 중심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여기에 핵추진잠수함 건조 요청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승인받는 '깜짝' 결과도 이끌어냈다. 그동안 한국은 핵잠수함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해 왔지만,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가로막혀 번번이 실패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 3월 북한의 핵잠수함 건조 현장이 공개되면서 군사적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한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에 대응하는 전력을 갖추게 된 것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핵잠수함을 보유할 기회를 얻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을 저격한 선물도 큰 화제가 됐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위해 경주 국립박물관에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과 '무궁화 대훈장'을 선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물에 큰 만족감을 표하며 자신의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에 실으라고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트럼프 대통령이 명예나 황금을 좋아하는 점을 정확히 이용한 재치 있는 선물이었다.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반발해 방한을 거절하다가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11년 만에 한국을 찾은 중국과도 관계 개선에 성공한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립 경주박물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4000억위안(약 70조원) 규모의 통화 스와프 계약을 연장하고 6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하지만 이번 양국과의 정상회담을 두고 긍정적인 평가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지 5일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팩트 시트나 합의문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또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자신의 SNS에서 "한국은 시장을 100% 개방하는 데 동의했다"고 주장했지만, 우리 정부는 "쌀·소고기 등 민감 농산물은 추가 개방을 막아냈다"며 엇갈린 답변을 내놓은 사실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지난 7월 한미 관세 협상 때처럼 정부 발표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불거지고 있다.
중국과의 정상회담도 관계 복원에 성과를 낸 것은 분명하지만, 한한령과 서해 구조물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는 뒤로 미뤄졌다. 공동 성명 등 공식적인 조치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아직까지 찾아볼 수 없다. 이에 대해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소리만 요란했던 빈수레 외교"라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정부가 이제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은 검증 가능한 결과다. 정상 외교의 무대에서는 얼핏 화려해 보이는 '장면'보다 장막 뒤에서 펼쳐지는 실질적인 '절차'가 더 중요하다. 이미 지난 7월에 정부 발표와 이후 확인된 내용이 엇갈리며 혼란을 키웠던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에는 투명한 후속 공개와 단계별 이행 점검이 뒤따라줘야만 한다. 팩트 시트와 공동 성명문 공개, 국회 보고, 이해관계자 설명 등까지 국민들이 납득할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
외교의 성과는 박수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시간이 흐른 뒤 국익에 어떤 실질적 변화를 남겼는지로 평가된다. 이번 '실용 외교'가 일회성 연출로 끝날지, 한국 외교의 새로운 표준이 될지는 결국 정부가 얼마나 치밀하게 후속 과제를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lahbj11@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