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도시 파리, 기후까지 생각한 먹거리 소비
Naturalia 매장서 확인한 저탄소 농축산물 인기
농식품 온실가스 배출량 전 세계의 3분의1 차지
국민 10% 저탄소 농축산물 구매…7146톤 감축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농업과 축산업도 온실가스 감축이란 과제 앞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저탄소 농축산물'은 생산·유통·소비 전 과정에서 지속 가능성을 구현하는 수단으로,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뉴스핌>은 국내외 현장을 통해 저탄소 농축산물의 현주소와 과제를 짚고, 한국 농업·축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글싣는 순서] 녹색 밥상
① 글로벌 탄소중립 확산…'저탄소 농축산물' 화두
② "미꾸라지와 연근이 만나다"…저탄소 농법 실천하는 농가의 도전
③ '저탄소 모범' 당진 대주농장…학교 급식까지 이어지는 선순환
④ 이제는 '저탄소 인증'이 경쟁력…유럽이 그리는 저탄소 식탁
⑤ 농업이 탄소자산으로…파리 현지 기업이 말하는 '녹색 수익모델'
⑥ 김태영 교수 "저탄소 농업 지원하는 탄소직불제 확대해야"
[파리=뉴스핌] 이정아 기자 = 지난달 5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1구 몽토르괴유 거리. 파리지앵이 즐겨 찾는 레스토랑과 카페가 즐비한 골목 한복판에 붉은색 간판의 유기농 식료품 전문 매장 'Naturalia'가 자리 잡고 있다.
Naturalia는 지난 1973년 설립된 프랑스 대표 유기농 마트 체인이다. 프랑스 전역에 수십 개 매장을 두고 있으며 일부 매장은 100% 비건 콘셉트로 운영된다. 미식의 도시인 파리에서 친환경 소비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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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뉴스핌] 이정아 기자 = 지난달 5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1구 몽토르괴유 거리에 위치한 유기농 식료품 전문 매장 'Naturalia'. 2025.10.01 plum@newspim.com |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나무로 만든 진열대 위로 각종 신선 채소와 과일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감자와 양파 그리고 당근에는 'France(프랑스)'라는 원산지 표기가, 포도와 배 그리고 아보카도 같은 과일은 'Bio(유기농)' 문구가 손 글씨로 적혀 있었다. 벽면에는 '토양의 건강', '농약 없는 재배' 같은 문구가 알록달록한 그림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Naturalia 매장의 가장 큰 특징은 '친환경'이다. Label Bio(유기농 인증), Label Bas-Carbone(저탄소 인증)이란 라벨이 대다수 제품에 붙어 있었다. 저탄소 농축산물이란 저탄소 농업기술 또는 저탄소 축산기술을 적용해 생산 모든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 농축산물을 의미한다. 프랑스에서는 저탄소 농축산물로 인증된 식료품에는 저탄소 인증 라벨을 부착하고, 소비자들은 가치소비를 할 수 있다.
매장 한쪽에는 곡물과 견과류를 원하는 만큼 덜어 담을 수 있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존'이 마련돼 있었다. 오트밀, 뮤즐리, 아몬드, 호두 같은 건식품이 대형 통에 담겨 있으면 고객은 필요한 만큼만 덜어 담아 무게를 재는 방식으로 구매했다. 불필요한 포장을 줄이고 생산·유통 단계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최소화하려는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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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뉴스핌] 이정아 기자 = 지난달 5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1구 몽토르괴유 거리에 위치한 유기농 식료품 전문 매장 'Naturalia'. 2025.10.01 plum@newspim.com |
또 다른 구역에는 시식대가 마련돼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통밀빵과 유기농 잼, 유기농 주스 등이 펼쳐져 있었고, 고객들은 종이컵과 접시에 담긴 샘플을 자유롭게 맛봤다. Naturalia 관계자는 "시식대는 유기농 제품의 장점을 체감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Naturalia의 유기농 식료품이 언제나 환영받는 건 아니다. 유기농, 친환경, 저탄소 인증 농축산물은 다른 농축산물보다 가격이 10~20%가량 더 비싸다. 저렴하게 장바구니를 채우려 매장을 찾은 소비자들이 가격을 보고 발길을 돌리는 일도 있다.
이에 대해 매장 직원인 네이사 시세(Neyssa Cissé)는 "소비자들의 가격 부담을 덜기 위해 자체 할인 행사 등을 펼치고 있다"면서도 "기후위기를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유기농, 저탄소 식료품들이 더 많은 선택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농업·식품 시스템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큰 축이다. 세계은행(WB)은 농업·식품 전 과정에서 매년 16GT(기가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돼, 전체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WB는 2030년까지 농업 배출을 절반으로 줄이지 못하면 파리협정 목표(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제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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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뉴스핌] 이정아 기자 = 지난달 5일(현지 시각) 프랑스 유기농 식료품 전문 매장 'Naturalia' 직원인 네이사 시세(Neyssa Cissé)가 Naturalia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5.10.01 plum@newspim.com |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도 경고음을 울렸다. OECD 회원국 농업의 직접 배출량은 2009~2011년 연평균 14억5300만톤 CO₂-eq(이산화탄소 환산 톤)에서 2019~2021년 15억1500만톤으로 4.3% 늘었다. 겉보기에 작은 수치지만, 매년 0.1%씩 꾸준히 증가한 셈이다. 같은 기간 농업 생산량은 40% 증가했기 때문에 효율성은 높아졌지만, 총배출은 줄지 않았다는 게 OECD의 평가다.
배출 구조 쪽을 들여다보면 늘어난 배출량의 약 3분의 2는 작물 재배와 토양 관리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3분의 1은 가축 부문에서 발생했다. 메탄(CH₄)의 경우 반추동물 장내 발효와 분뇨 처리 과정이 핵심 요인인데, 최근 메탄 배출이 정체 내지 약간 감소세를 보이지만 돼지·가금류 사육이 확대되면서 분뇨 관리에서 나오는 배출이 메탄 감소분을 상쇄하고 있다.
EU는 상대적으로 성과가 뚜렷하다. 유럽환경청(EEA)에 따르면 EU 농업 배출은 1990년 대비 24% 감소했고, 2005~2022년에도 5% 줄었다. 2022~2023년에도 추가로 2%가 줄었다. 하지만 현 정책만 유지할 경우 2030년에는 2005년 대비 4% 감소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농업은 EU 전체 배출의 12%를 차지하며 이 중 61%가 메탄, 36%가 아산화질소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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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뉴스핌] 이정아 기자 = 지난달 5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1구 몽토르괴유 거리에 위치한 유기농 식료품 전문 매장 'Naturalia'. 2025.10.01 plum@newspim.com |
프랑스의 '저탄소 인증 제도(Label Bas-Carbone)'는 이런 상황에서 등장했다. 이 제도는 정부가 농가·임업·토양 프로젝트의 감축·흡수를 인증하기 위해 마련됐다. 한국도 변화 기미가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발표한 계획을 통해 저탄소 농축산물 인증제를 본격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 제도가 제대로 안착하면 농업 부문 온실가스 감축에서 국가 목표인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3% 수준을 담당할 수 있다는 전망도 함께 나온다.
저탄소 농법을 연구·개발하는 농촌진흥청은 '농업 지속 가능성을 위한 탄소중립 노력' 보고서에서 "논 농업 부문과 축산 부문에서 저탄소 농법, 사양 모델, 순환형 농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농진청은 물관리 기술과 비료 사용 최적화 등을 통해 올해 약 24만톤, 2030년 이후에는 54만톤까지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기대한다.
농진청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저탄소 인증 농축산물을 구입하면 1인당 연간 1.38kg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고, 국민 10%가 동참하면 연간 온실가스 7146톤 감축과 나무 78만5275그루를 심는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우리 식탁에 오르는 먹거리를 준비할 때 저탄소 인증 농축산물을 선택하자. 나의 작은 실천이 우리 지구를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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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뉴스핌] 이정아 기자 = 지난달 5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1구 몽토르괴유 거리에 위치한 유기농 식료품 전문 매장 'Naturalia'. 2025.10.01 plum@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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