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연합(EU)과의 무역 협상에서 매년 2500억 달러씩 3년간 총 7500억 달러(약 1000조원) 어치의 에너지를 수출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실현이 거의 불가능한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 |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과 EU산 상품에 15%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무역협정을 타결하고 악수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미국의 생산·수출 역량이 이를 당장 감당하기 어렵고, 에너지를 구매하는 것은 개별 기업이기 때문에 EU나 국가가 기업에게 미국산 에너지를 사서 쓰라고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작년 한해 미국이 전 세계에 수출한 에너지는 3180억 달러였다. 이중 EU 회원국이 구매한 액수는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등을 모두 합쳐 760억 달러였다.
미국 에너지는 유럽 이외에도 한국과 일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과 튀르키예 등 중동, 인도, 아프리카, 중남미 등으로 공급되고 있다.
에너지 수출입은 원유처럼 현물 거래가 중심인 경우도 있지만 LNG는 10년 안팎의 장기 거래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 물량의 대부분을 EU 쪽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또한 일본과 한국 등도 미국과 무역 협상을 하면서 미국 에너지를 추가로 대량 구입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EU 몰아주기'는 더더욱 실현가능성이 떨어진다.
일본은 최근 미국과 무역 협상을 타결하면서 "미국 에너지 수입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케이플러의 수석 LNG 분석가인 아르투로 레갈라도는 "미-EU 간 합의에서 나온 에너지 거래 규모는 시장의 현실을 뛰어 넘는다"면서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미국산 원유 공급량을 통째로 EU로 돌리거나 유럽의 미국산 LNG 수입량이 6배로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EU 공식 통계기관인 유로스타트(Eurostat)에 따르면 미국은 이미 EU의 최대 LNG 및 원유 공급원이다. 작년 미국은 EU의 전체 LNG 수요의 44%를고, 원유는 15.4%를 제공했다.
미국 에너지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도 없다.
EU 집행위원회 관계자는 "이 수치들은 허황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유럽에 에너지를 수출하고 있는 미국의 LNG 업체 벤처글로벌은 트럼프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무역 협상 타결을 발표한 지 몇 시간 만에 연간 2800만t의 LNG를 생산하는 150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독일의 LNG 수요의 절반에 가까운 물량이다.
하지만 오로라 에너지리서치 연구 책임자인 제이콥 맨델은 "미국이 생산량을 늘릴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 규모가 EU에 2500억 달러 어치의 에너지를 수출해야 할 만큼 늘려야 한다는 것이라면 그것은 실현 가능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는 "생산량이 늘어나면 유럽이 매년 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LNG를 추가로 구매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너지를 구매하는 주체가 기업이라는 점도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 있다. 영국 옥스포드 에너지 연구소의 가스 연구 책임자인 빌 패런 프라이스는 "에너지 수입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민간 기업"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자문업체 케플러의 맷 스미스는 "EU가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기업에게 미국산 에너지를 사라고 지시할 수는 없다"며 "기업은 주주에게 책임을 져야 하고 가장 싼 원료를 구매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EU가 합의한 에너지 거래 규모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