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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폴리티션 스토리] (하) 이준석 "타인보다 나와의 경쟁이 더 유효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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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정치인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뉴스핌 '폴리티션 스토리'에 출연해 "어느 위치에서도 그런 (타인과의) 경쟁보다는 나 스스로와의 경쟁이 더 유효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뉴스핌 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청년들을 위한 충고를 해달라'는 요청에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올라가서 학벌로 뭔가를 하는게 무의미한 사회가 돼가고 있다"며 "어느 순간 (스스로) 약해져서 빨라 보이는 길로 가면 삶이 꼬이는 상황이 오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최대한 어려운 길로 가는 게 스스로의 도전이고 나와의 경쟁"이라고 강조했다.

1985년 서울 성동구에서 태어난 이 의원은 이듬해 노원구 상계동으로 이사해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서울과학고를 조기 졸업한 뒤 카이스트를 다니다 중퇴하고 미국 하버드대에 진학했다. 하버드대에서는 컴퓨터과학과 경제학을 복수 전공했고, 한인학생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교육 봉사 단체인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을 만들어 대표 교사로 활동했다. 이후 2011년 12월 26세의 나이로 정계에 입문,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박근혜 키즈'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이 의원은 새누리당 비대위원, 혁신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발생한 뒤에는 바른정당, 바른미래당,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등에서 활동했다. 2016년 20대 총선 때 새누리당, 2018년 재보궐 선거 때 바른미래당, 2020년 21대 총선 때 미래통합당에서 서울 노원병에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이후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만 35세, 최연소 제1야당 당대표로 선출됐으며, 당시 20대 대선 후보인 윤석열 대통령의 중앙선대위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개혁신당을 창당했다. 당시 당 대표를 맡았던 이 의원은 지난 4월 22대 총선에서 경기 화성을에 당선되면서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사진=뉴스핌 DB]

다음은 이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이재창 정치전문기자, 이하 이 기자) 중고등학교 학생, 학창 시절 때 어떻게 좀 지냈는지

▲(이준석 의원, 이하 이 의원) 제가 중학교 때야 사실 제가 서울의 목동에서 이제 다녔으니까요.
경쟁이 극한으로 이제 발현되는 곳이 목동입니다.
제가 있었던 곳이 서울의 목동 월촌중학교라는 곳인데 한 학년이 720명이었어요.
720명이 2학년 17반까지 제가 기억나는데 그 경쟁을 했던 겁니다.
또 특목고 저희는 특목고 세대다 보니까 상위에 한 한두 명은 저같이 과학고 가고 그 밑에 40등 50등까지는 외고를 가고. 경쟁 체제 하에서 이제 올라갔던 기억이 나는 거고 그런데 제가 고등학교 가면서부터 약간 달라졌던 게 서울에서 140명을 뽑은 게 서울과학고등학교거든요.
그 안에서는 제가 잘한다는 것, 등수 경쟁이라는 게 의미가 없구나라는 생각을 좀 했습니다.
뭐 제가 만약에 서울과고에서 1,2등 했으면 그 당시에 서울의대라든지 이런 학교를 갈 수 있었겠죠.
그런데 그것과 관계없이 제가 이제 놓였던 상황은 유의미한 일이 뭘까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서울과학고등학교는 2학년까지 조기 졸업하고 떠나는 학교라 가지고 3학년이 일부 남습니다.
그 래서 2학년 학생회 부회장이 실질적으로 학생회장 역할을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제가 2학년 때 학생회 부회장이 됐는데 생각해 보면 웃긴 게 제가 그때 굉장히 저랑 붙었던 친구가 잘생기고 인기 좋은 친구였어요.
그 친구를 어떻게 이겨야 될까 고민하다가 전교생한테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요.
모든 사람 하나하나 다른 내용으로 종이에다가 아 선배님 한 번도 뵌 적 없지만은 이러이러한 거 꼭 해서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해서 다 주고 오거든요.

-(이 기자) 상당히 좀 특별했네요.

▲(이 의원) 그때 이제 제가 사실 리더십의 위치를 처음 경험해 본 거거든요.
근데 그때 그런 게 있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공립학교였으니까 저희가요 시설이나 이런 게 굉장히 좀 부족한 게 있었는데 제가 그때 뭘 했었냐 하면은 그때 2002년이거든요.
제가 이제 고등학교 2학년 때. 2002년에 한국에서 2개의 스포츠 벤처가 큰 게 있습니다.

부산 아시안게임하고 월드컵, 부산 아시안게임 때 삼성전자가 공식 후원 기업이었는데 거기에 삼성전자가 이제 홍보부스에 전시했던 컴퓨터들 같은 걸 좀 받아오려고 노력했는데 삼성전자 홍보팀에 전화해가지고 제가 이것 좀 어떻게 가져올 수 있느냐고 했더니만은 홍보팀도 깜짝 놀라가지고 저희 학교에 전화 오고 했는데. 저희 학생회 담당 선생님은 저한테 뭐라 그러고 왜 그런 걸 달라고 하냐 그러는데 진짜 왔어요.
그때 컴퓨터가 한 2500만 원어치 왔거든요. 그때 그런 걸 보면서 정체된 모습보다는 뭔가 하려고 발버둥치면서 하나라도 뭔가 해보려고 하는 모습 속에서 제가 행복함을 느끼는구나 그걸 느꼈던 거죠.

-(이 기자) 하버드 대학교 때 생활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도 좀 관심이 많을 것 같은데 한번 설명을 좀 해주시죠.

▲(이 의원) 그때 그냥 저는 신기한 걸 많이 봤죠. 하버드에 또 가는 순간 이제 서울에서 140명이 안에 들어있던 서울과고의 경쟁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1600명이 모여 있는 하버드의 경쟁이거든요.
그럼 또다시 경쟁은 의미가 없어지더라고요.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 의미 없어지는 지점이 온다.
그때 제가 많이 깨달았던 게 그러니까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보다 나을 수 있는 게 그게 경쟁이구나라는 걸 느꼈던 거죠.
하버드대학교에서 A받던지 B받던지 C받던지가 사실 큰 의미가 없는 지점이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그러면 뭐 새로운 걸 해볼 수 있을까 그런 고민 많이 하게 되고. 그래서 제가 대학교 졸업 논문도 그때 제가 기억나는 게 뭐냐면 되게 재미있게 특이한 걸 썼던 게 그 당시에 이제 제가 대중교통 이런 걸 좀 좋아해가지고 연구 많이 하는데 그때 또 마침 교통카드라는 게 처음 '티머니'라는 게 이제 쓰이기 시작해가지고 전 세계에 이런 연구 대상이 없는 거예요.
서울시민의 거의 이동 데이터나 이런 것들이 축적되는 곳이 없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제가 무슨 연구를 했냐면은 서울 지하철 5호선이랑 뭐 이렇게 2호선인가 해가지고 건설 비용을 추산하는 연구조가 해놓은 게 있어요.
그걸 바탕으로 뭐 했냐면 제가 서울에 만약에 지하철 노선을 하나 새로 깐다 그러면은 어디다가 지하철 노선을 깔면은 그 지하철 노선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지고 종부세로 건설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느냐 그런 연구하고 막 그랬어요.

그런데 그게 해보니까 프로그래머들이 우리가 이제 요즘 AI 빅데이터 이런 얘기하는데 그때도 이미 그런 걸 바탕으로 연구하면 거의 100% 노선 설계 같은 걸 할 수 있었어요.
제가 그때 논문 결과로 나왔던 노선이 신림선이랑 서부선 경전철이랑 거의 일치합니다.
그런 거 연구하면서 재미를 느꼈거든요. 제가 이공계적 관점에서 정책이나 이런 거 하는 게 되게 재미있었어요.
그래가지고 슬근슬근 이제 정치나 이런 쪽으로 관심을 많이 갖게 됐죠.
그리고 미국에 있을 때 제가 봤던 인물 중에 제일 놀라운 건 오바마였고요.
제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보스턴에 있었는데 보스턴에서 2004년도에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를 합니다.
존 케리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였는데요. 그때 바람잡이하려고 오바마가 나와가지고 이제 연설을 하는데 제가 들어본 것 중에 영어이니까 저한테 약간 전달될 때 감이 좀 덜했을 때도 불구하고 제가 들어본 연설 중에 가장 훌륭했어요. 살면서 들어본 것 중에

-(최연혁 교수, 이하 최 교수) 현장에서 들어보셨어요?

▲(이 의원) 현장에서 못 듣죠. 그런데 어느 정도의 파급 효과가 있냐면 그때 그 연설하고 나서 한 일주일 내내 학교에서 친구들이 그 얘기밖에 안 하는 거예요. 저도 그래서 지금 그 연설 거의 문장 단위로 외워요.

-(이 기자) 어떤 내용이었는데 그렇게 감명을 받으셨어요?

▲(이 의원) 내용을 풀어나가는 게 다른 거죠. 그러니까 아까 제가 말했듯이 한국의 여느 정치인 예를 들어서 이런 사람들 보면 대구경북 주민 여러분 제가 박정희 공항으로 공항 이름 바꾸겠습니다.
이런 게 정치라고 생각하고 하는 사람 아직도 많거든요.
오바마 그때 했던 것 중에 인상적인 표현들 저는 첫 번째 듣다가 가장 놀랐던 게 내 부모님은 나에게 버락이라는 아프리카식 이름을 줬습니다.
왜냐. 자유롭고 관대한 미국에서는 내 이름이 성공의 장애물이 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도 있고 그 당시에 이라크 전쟁이 굉장히 찬반의 영역에서 굉장히 활발하게 다뤄질 때 이라크 전쟁에 찬성하는 애국자도 있고 반대하는 애국자도 있습니다.
이것도 굉장히 개념을 치환한 거거든요.

선악의 대결에서 벗어나 가지고 너도 애국자요 나도 애국자요 다 미국 생각해서 그러는 거다라는 표현을 그렇게 하는 게 쉬운 게 아니거든요.
한국에서 누가 그런 표현을 합니까?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는 국민도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도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이다라는 표현을 누가 합니까?
이찍 이런 소리 나고 2번 찍으면 또라이인 것 같이 이렇게 얘기하고 이재명 쫓아다니면 개딸이라 그러고 그 용어를 쓴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이런 걸 시도할 만한 기반이 없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게 그 당시에 조지 부시 정권 인종 간의 종교 간의 반목이 심했던 거기서 그거를 내세운다는 게 얼마나 대단했던 건지를 저는 상상도 못하는 거거든요.

미국은 흑인의 미국 백인의 미국 라틴아메리카는 미국 아시아계 미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미 합중국 유나이티드 아메리카가 있는 것입니다라는 표현도 그거 듣고 그 영상 보면은 즉석에서 사람들이 일어나서 눈물 흘리면서 박수 칩니다.
이런 것들을 맥락을 맞춰가지고 풀어내고 생각해내고 하는 게 되게 중요한 거거든요.

-(최 교수) 아까 이제 레토릭을 말씀하셨는데 그럼 하버드에서도 그런 레토릭 프로그램들이 있고 그걸 참여하셨는지 아니면

▲(이 의원) 오레이션이라고 하죠. 그런 연설하는 걸 많이 봤거든요.
근데 그게 미국 정치와 미국 문화 속에서는 일상화되어 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미국 대학교별 졸업 축사 같은 오프라 윈프리 같은 사람이 가가지고 연설하기도 하고 저 졸업할 때는 빌게이츠 왔던 것 같거든요.
그런 것들을 봤을 때 보면 그런 거 하나하나가 사실 그들의 도전적인 성격 하에서 오히려 영국은 저는 그렇다고 생각 안 해요.
영국은 오히려 굉장히 각이 잡혀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 생각의 다양성이라는 것이 그렇게까지 저는 영국 연설이나 이런 것들에서 미국의 다양한 경험을 따라갈 수 있는 그런 스피치들은 잘 안 나온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저는 그런 어떤 미국식의 어떤 스피치나 이런 것들은 배우지 않아도 그 사회에 그냥 깃들어 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거에 영향을 좀 많이 받았다 라고 볼 수 있는 거고요.
절대 한국의 정치인이 따라할 수 없는 뭔가가 있어요.
한국의 정치인이라면요. 어디 가도요 우리 빨갱이 때려잡아야지 않겠습니까 하면은 그거 좋아하는 분들 있으면 그 1초 만에 와 이런 반응이 와요.
그런데 오바마 스피치 같은 경우에는 딱 얘기가 끝나고 하나 둘 셋 한 다음에 기립박수가 나와요.
왜냐면 머릿속에 의식 구조 속에서 따라가봐야지만 이게 무슨 말인지 그러니까 머릿속을 이해하는 거죠.
저는 한국에도 그런 게 많아져야 되고 그거는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그만큼 사회에서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야 된다 저는 이렇게 보는 거거든요.
저게 멋있는 거 멋있는 거에 대한 정의를 바꿔야 되는 거거든요.
우리나라는 시원하게 얘기해라라는 이상한 소리를 많이 해요.
시원하게 말해봐라 사실 남 욕하라는 얘기거든요.

자기가 생각하기 귀찮으니까 내가 싫어하는 대상이 있으면 가서 이재명 개XX 하는 사람이 나와야지만 자기가 이거 시원하다 하면서 하는데 그게 얼마나 사회적으로 의미 없는 막말입니까?
근데 옛날에 보세요. 옛날에 전원책 변호사 이런 사람이 무슨 보수의 대단한 인물이냐. 저는 그분이 철학가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분을 처음에 무슨 보수 진영에서 대단한 철학가인 것처럼 띄웠던 게 뭐냐 하면은 시원하게 말한다.
막말의 정확한 정의죠. 정치인을 단두대로 보내라 그러는데 그리고 정작 그분이 현실 정치에 진입하니까 한 달 만에 쫓겨나잖아요.
그거 갖고 대한민국 정치가 어디로 가겠냐라는 건데 멋있는 말 기억나는 거 하나도 없잖아요.
그분이 하신 말 중에 보면은 다 무슨 다 죽여라, 정치인은 쓰레기다 전부 다 무슨 뭐 단두대로 보내라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정치자는 거죠.

이건 정치 혐오증에 기반한 그냥 장사죠. 저는 그걸 넘어서는 정치권 내에서 사람들한테 정치의 멋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그런 새로운 시도들이 있어야 된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최 교수) 내 가치를 주장할 때 아까 참 잘 지적해 주셨는데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고 공정한 경쟁을 얘기하고 할 때 그 기반에는 역시 철학이어야 된다. 철학적 기반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하십니까?

▲(이 의원)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철학이라는 거를 형성하는 데 있어가지고 이미 인류 보편적인 철학과 가치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전 같으면 지금 아직 중국이나 이런 전체주의적 성향이 있는 국가에서는 당이 먼저다 뭐 이런 소리 하는 사람도 있겠죠.
국가가 먼저 당이 먼저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어느 누가가 이제 국가를 위해서 당을 위해 가지고 개인이 희생하겠다는 생각을 하겠으며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겠습니까?
그게 저는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던 것이 문재인 정부 시절에 남북 단일팀 하려고 하니까 하키 선수들이었나요?
왜 북한 단일팀 한다는 그런 정치적인 목표 하나 때문에 자신의 스포츠 영역에서 고생해온 우리 선수들이 대표팀에 선발 안 되는 그런 불행을 겪어야 되느냐 그리고 그거 한다고 그랬을 때 왜 아니 나라가 하는 일인데 좀 협조해 달라는 식으로 폭력적으로 얘기하느냐에 젊은 세대가 적극적으로 얘기한 거거든요.
저는 그게 이미 세대별로 다르게 이제 철학가치관이 형성됐다.

그래서 저는 거꾸로 제가 정치하면서 젊은 세대를 상대할 때는 제 철학과 가치를 그렇게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온 거죠.
왜냐 그런 개인주의적인 어떤 성향 인권에 대한 이해 이런 것들이 기본적으로 다 잡혀 있는 거예요.
그런데 나이 든 세대와 얘기할 때는 거꾸로 니가 희생해야지 같은 이제 약간 과거의 가치들이 이제 들어오는 그런 개념이 있는 거죠.
그런 어떤 가치 정립에 있어가지고 흘러가는 방향은 명확하거든요.
그러면 그런 부분에 있어가지고 젊은 세대가 바라는 방향으로 정리되는 게 맞다.
저는 그런 생각이 이제 드는 거죠. 저만 해도 이런 거예요.

저한테 예를 들어서 제가 보통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많이들 얘기하지만은 예를 들어 저는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지금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가지고 정의당이나 아니면 소위 제가 표현하는 꼴통 페미니스트보다 훨씬 열려 있어요.

예를 들어서 이런 겁니다. 최근에 최근 한 몇 년 전에 숙명여대에 트랜스젠더가 입학하려고 했을 때 학내 구성원들이 반대해가지고 그분이 입학을 포기한 적이 있었어요.
저는 제 기준에 봤을 때는 저는 아니 그분은 본인이 그 성으로 평생 살기로 결정한 건데 저는 숙명여대에 입학하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저는 해요.
그런데 오히려 숙명여대 구성원들이나 페미니스트 운동하시는 분들은 배타적이었던 거죠.
지금도 저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저는 예를 들어서 어떤 분이 저한테 와가지고 동성애 동성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저는 동성애는 자기가 그런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해서 하고 다니는 건데 저한테 피해 끼치는 것도 없고 저는 거기에 대해서 딱히 뭐 반대하거나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데 동성혼은 제도에 대한 부분이기 때문에 거기에 제가 합의할 수 있는지는 또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또 이 진보적인 성향을 가졌다고 본인이 주장하시는 분들이 보면 또 반동성애 기조로 가시는 분도 굉장히 많아요.
보면은 또 이런 거예요. 우리 사회에서 보면 나 어릴 때 민주화 운동했어 지금은 어디 진보당 노동당 언저리에서 이렇게 다니고 있어 그러면 내가 이제 사회 개혁 세력이 하는데 제가 봤을 때는 세상에 제일 꼴통 같은 분들이에요.

제가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요. 그냥 젊은 세대 이번에 탄핵 집회도 안 나가고 이런 이유가 뭐냐면요.
딱 그 문화가 싫어요. 젊은 사람들이 봤을 때. 저도 이제 범야권이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집회 같은 경우에는 그런 부분 다 같이 가기도 하거든요.
딱 고리타분해요. 가면 어느 단체인지도 모르는 단체들 깃발 만장 들고 와가지고 다 들고 있고 무슨 구호는 '다 같이 구호 한번 외쳐보겠습니다'그러고 있고. 뭐 정말 그냥 가기가 싫어요. 그냥 그런데 그거를 자기들은 멋있다 생각해가지고 그냥 30~40년째 하고 있는 거거든요.

거기에 20~30대 안 붙어요. 절대 본인들만 모르고 있는 거예요.
거기에 앞에 내세운 게 맨날 용혜인 장혜영 이런 사람 내세워가지고 어이 젊은 사람이 참 잘하네 진짜 젊은 사람들은 거기 박수 안 치고 있어요.
그 악 쓰는 거 누가 못해요?

-(최 교수) 지금까지는 제가 다시 한번 질문해 드리고 싶은데 대한민국이 어떻게 하면 이 공론의 장의 중심이 정치로 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해보셨습니까?

▲(이 의원) 저는 경험의 다양성이 사실 대안과 어쨌든 변설의 다양성으로 나온다고 보거든요.
근데 우리나라는 이제 대학 입시 때도 보면은 자기소개서 쓰라고 그러면은 특출날 게 없잖아요.
다들 비슷한 평수의 아파트에서 어릴 때 자라나 가지고 동네에서 중고등학교 때 학원 다니는 애들이 갑자기 대학교 때 입시원서에다가 새로운 걸 쓰려고 하면 그게 이제 입시 비리가 되는 거거든요.

저는 그래서 경험의 다양성이 떨어지는 것이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요. 그런데 경험의 다양성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물리적 경험의 다양성을 보완해 줄 수 있는 건 뭐냐 하면 생각의 다양성이거든요 그래서 더더욱 중고등학교 교육에서 그 스펙트럼을 넓혀야 된다고 생각해요.

고교 학점제 이런 것들도 사실 굉장히 말이 많고 하지만 다양한 과목을 듣고 다양하게 다른 지점을 고민해 본 사람들이 사회에 몰려 나와야 되는 건데 학교가 지금 초등학교들은 이제 한 학년에 40명 이렇게 되고 이런 상황인데 50명 되는 상황인데 대부분의 수도권 학교들도 이 상황에서 무슨 다양성이 나중에 중고등학교에서 생길까요?

학생들에게 좀 더 어린 시점에 대학 가기 전부터 가설 그러니까 하이퍼시스라고 하는 그걸 세워가지고 그걸 검증하는 그런 과학적 사고를 더 많이 시켜봐야 된다는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가설이라는 건요. 그거야말로 무궁무진한 겁니다.
우리가 살면서 하는 웬만한 행동들 중에서 수동적으로 내가 지식을 받아들여가지고 권위자의 지식을 받아들여 하는 거 외에는 거의 다 가설의 검증이에요.

어디에 부동산 사면 오를까 내가 어디에 주식을 사면 이거 오르지 않을까 그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한 무수한 근거를 내가 만들어내고. 아니면 내가 다이어트를 하는데 이렇게 하면 살이 빠지지 않을까 가설을 만들고 검증해내고 이걸 해내는 게 인간이어야지 거기에 지식의 축적이 일어나는 거거든요.

지금은 가설과 검증이 없이 그냥 주입식이잖아요.
그냥 교과서라는 권위자가 실어주는 대로 이렇게 하는 거잖아요.
이게 꼭 아주 지성인인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느 단계에서나 본인이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그 과학적 사고 자체를 교육에 중간에 넣어야 되는 거거든요.

예를 들어 동탄에 지금. 전 그래서 요즘 동탄에 젊은 학생들 뭐 이런 얘기예요. 동탄에 돌아다니면 맨날 아저씨들이 술 먹고 킥보드 넘어진 거에 걸려 넘어지고 지고 코 깨지고 이러는데 이 문제 어떻게 해결했으면 좋겠냐 어려워 보이지만 이거 해결하는 고민이 사실 교육인 거고 성장의 과정인 거거든요.

이게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고 이걸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리더가 되는 거지 앞으로 무슨 뭐 교과서 조금 더 안다고 해서 뭐가 될까요?
근데 이게 대한민국의 과학적 사고.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내가 과학적 사고 하면 거기에 대한 논증이 있고 또 반대 논리도 있을 수 있는 거거든요.
이게 우리가 치열하게 사회가 다양해지는 그런 세상이 되는 거죠.

그리스 옛날에 그 사람들은 뭐 그렇게 다양한 삶이 있어가지고 변설이 유용하고 이렇게 했겠습니까?
그게 중심에 있는 사회니까 거기서 궤변론자도 나오고 다양하게 이제 그런 민주주의가 태동하는 그런 시기가 있었던 거죠. 결국에는 생각의 다양성이 제일 중요한 거죠.

-(이 기자) 젊은이들에게 청년들 뭐 많이 볼 텐데 충고나 아니면 뭐 말씀을 해 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 의원) 저는 꼭 그걸 해봤으면 좋겠어요. 저는 우연한 기회인데 제가 어느 날 대학교에 가가지고 한 학기 다니다 보니까 야 여기서 내가 1등 하는 게 무슨 의미며 가격 대비 효율이 안 나온다 그런 생각이 들어가지고 그 삶을 포기했거든요.

참 이게 하버드 나온 사람 얘기하면 참 '배부른 소리하고 앉아 있네'라고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애초에 어느 위치에서도 그런 약간 경쟁보다는 나 스스로와의 경쟁이 더 유효할 수 있다라는 생각해야 될 것 같아요.

옛날에야 우리가 학벌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한 경쟁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의미가 있었겠죠. 왜냐하면 옛날에는 학벌이 나의 직업 선택부터 모든 걸 좌우했으니까요.

내가 방송을 만들고 싶은데 그때는 방송 채널이 예를 들어 지상파밖에 없었다 그러면은 KBS SBS MBC PD가 되기 위해 가지고는 거기 공채가 돼야 되고 공채가 돼야 그 조직 안에서 실제 좋은 높이 올라갈 거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울대 연고대 나온 사람들이 우대됐고 역설적으로 훌륭한 PD가 되기 위해서 국영수과를 열심히 이런 말도 안 되는 이런 미스 매치가 나왔던 거거든요.

지금은 그게 아니잖아요. 내가 방송을 잘 만드는 PD가 되고 싶으면 어릴 때부터 그런 경험을 쌓아가는 게 오히려 중요한 것이고 정말 잘 나가는 요즘 방송 만드는 사람들은 오히려 웹캠 하나 놓고 내가 방송을 만들어가지고 뜬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방송 그 재능 하나만으로 방송계에 오히려 이제 나가가지고 메인이 되는 방송계를 이제 섭렵하기도 하고 저는 그 세상이 바뀐 건데 나와의 경쟁이 되게 중요한 거다.

이제는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올라가가지고 그거를 통해가지고 뭔가 학벌로 뭘 어떻게 이게 무의미한 사회가 돼가고 있다. 뭐 너는 학원 나왔으니까 그런 소리 하지만 저는 거꾸로 제가 정치권 나오면 들어가면요.

저는 학연 지연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대한민국 정치권의 주류인 무슨 뭐 서울대 출신도 아니고 변호사 출신도 아니고 영남이나 호남 출신이라서 그 당들에서 이제 잘 되고 이런 것도 아니고 진짜 저야말로 이제 그 안에서 이제 저와의 경쟁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게 되는 거죠.

저와의 경쟁이란 그런 거죠. 내 앞에 있었던 무수히 많은 젊은 사람들처럼 어느 순간 약해져가지고 빨라 보이는 길로 가면 내 스스로의 이 삶이 꼬이는 상황이 올 텐데 그걸 하지 않고 최대한 어려운 길로 가보자. 그런 게 스스로의 도전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이준석은 32살에 국회의원이 안 됐을지 모르겠지만 36살에 당대표가 된 거고 정말 어려운 선거에서 국회의원이 된 거겠죠.

-(최 교수) 좋은 지적해 주셨습니다.
한국 정치에서도 좀 더 근거를 가지고 그리고 논거와 증거를 중심으로 한 토론 그리고 그 주장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다양한 하부 근거들 말이죠.
이런 것들이 좀 더 있어주면서 이야기된다면 우리가 지금 논쟁적 구조로 갈 것 같은데 이러한 것을 조금 더 분위기를 바꿔주는 그런 어떻게 보면 분위기 메이커가 되지 않을까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요.
그런 장점을 잘 살려서 우리 청년. 청년이 이제 넘어 이제 40대 곧 들어가시죠.

▲(이 의원) 한국나이 40입니다, 올해.

-(최 교수) 그렇죠 불혹의 정치 이제 좀 성숙의 정치로 들어가실 것 같은데 아이콘으로서 좀 더 적극적 역할을 좀 해 주시고, 한국 정치의 변화를 위해서 더 많은 긍정적인 시그널을 주는 그런 역할들을 많이 해 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기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의원) 감사합니다.

-(최 교수) 네. 감사합니다.

allpas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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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범, 이제 판잔러 잡으러 간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한국 수영에 또 하나의 '수영 대박'이 아닐까. 불과 1년 전 세계선수권 탈의실에서 중국 수영의 상징 판잔러에게 키링을 받고 기뻐하던 소년이 이제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단거리 샛별' 김영범(20·강원특별자치도청)의 성장세가 눈부시다. 김영범은 21일 일본 도쿄 아쿠아틱스센터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자유형 50m 결선에서 21초66의 대회 신기록을 작성하며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이로써 전날 자유형 100m에서 판잔러와 접전 끝에 0.04초 차 아쉬운 은메달에 머물렀던 한을 풀고 생애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품에 안았다. 이번 금메달은 이번 대회 대한민국 경영 대표팀이 획득한 첫 금메달이기도 하다. [도쿄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김영범이 21일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경영 남자 자유형 50m 결선을 마친 후 기뻐하고 있다. 2026.9.21 psoq1337@newspim.com 예선부터 기세가 매섭틀렸다. 김영범은 이날 오전 열린 예선에서 21초71을 기록해 3년 전 항저우 대회에서 지유찬(대구광역시청)이 세웠던 종전 대회 기록(21초72)을 0.01초 앞당겼다. 이어 불과 몇 시간 뒤 펼쳐진 결선에서 자신의 기록을 다시 0.05초 줄이며 정점에 올랐다. 2006년생으로 한국 남자 계영 대표팀의 막내인 김영범은 전날 자유형 100m 결선에서 반환점을 1위(22초81)로 돌며 세계 정상급 스타 판잔러를 위협했다. 비록 막판 추격을 허용해 47초65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으나 세계적인 강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하루 만에 아쉬움을 털어낸 그는 50m 결선에서 누구에게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으며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도쿄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김영범이 21일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경영 남자 자유형 50m 결선을 마친 후 기뻐하고 있다. 2026.9.21 psoq1337@newspim.com 김영범의 가파른 성장은 압도적인 신체 조건과 대담한 승부욕에서 비롯된다. 195㎝, 체중 90㎏에 발 크기 300㎜, 윙스팬 216㎝에 달하는 축복받은 피지컬은 폭발적인 스피드가 요구되는 단거리 종목에서 강력한 무기다. 큰 무대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자신감을 장착한 그는 '단거리 박태환'의 탄생을 알리며 한국 수영의 새로운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다. psoq1337@newspim.com 2026-09-2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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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홉킨스 음반 영국차트 1위 [서울=뉴스핌] 김용석 선임기자 = "제 삶 전체가 하나의 꿈입니다."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로 널리 알려진 배우 앤서니 홉킨스(88)가 작곡가로 낸 첫 데카 클래식스 음반 'Life Is A Dream'으로 발매 1주 만에 영국 오피셜 클래식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라이프 이즈 어 드림' 녹음 현장의 앤서니 홉킨스. [사진= 유니버설뮤직] 홉킨스는 "평생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명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비르투오소 솔리스트인 첼리스트 그레고리오 니에토 및 클래식 피아니스트 세르히오 티엠포와 협업할 수 있었던 것은 특권이었다"고 밝혔다. 음반은 지난 4월 13일과 14일 런던 알렉산드라 팰리스에서 녹음됐다. 그래미상 수상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이끌었고, 바흐 합창단과 윈체스터 대성당 소년 합창단도 참여했다. 홉킨스의 자작곡 12곡이 실렸으며 연주 시간은 1시간 7분이다. 앨범 제목에는 삶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담겼다. 홉킨스는 "이 앨범의 제목은 Life Is A Dream으로, 삶에 바치는 러브레터다. 저는 이것을 하나의 긴 작별로 본다.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와 작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록곡은 웨일스와 가족의 기억에서 나왔다. '마르감'은 그가 태어난 포트탈봇의 지명에서 따왔고, '나의 조국'은 제빵사였던 아버지와 웨일스에 대한 헌사다. '스텔라 아리아'는 아내를, '타라'는 조카를 위한 곡이다. 홉킨스는 어린 시절과 부모, 웨일스에 대한 기억이 작품에 영감을 줬다며 "놀라울 만큼 선명하다"고 말했다. 2012년 앨범 '컴포저'에 실렸던 '마르감', '1947 모음곡', '앤드 더 왈츠 고즈 온'도 이번에 새로 녹음돼 다시 수록됐다. 이번 프로젝트는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홉킨스는 "모든 것이 예상치 못했지만 하나로 모였다"고 했다. 바턴은 2006년 영화 '슬립스트림' 음악 작업 이후 홉킨스와 협업해 왔고, 이번 음반에서도 여러 곡의 관현악 편곡을 함께 맡았다. 홉킨스는 두다멜에 대해 "우아하고 정밀한 지휘봉으로 각각의 음에 깊고 지워지지 않는 의미를 부여했다"라며 감사를 전했다. 음반에 대한 평가도 나왔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금관 중심의 팡파르에서 우아한 왈츠까지 폭넓다고 평하며 홉킨스의 화성 감각을 높이 샀다. 로라 몽크스 데카 사장은 차트 1위 소식에 "작곡가로서의 재능과 클래식 음악에 대한 헌신을 인정받은 일"이라며 축하했다. 홉킨스는 베네수엘라 국민 지원을 위해 CD와 바이닐 판매액의 일부를 기부하기로 했다. 창작 과정에 대해 홉킨스는 "제 마음의 구조는 이미지로 생각하도록 되어 있다"라며 "이것이 제 영감의 근원이다"고 말했다. 다음 계획으로는 "요즘 즉흥적으로 새 곡들을 만들고 있고, 그 곡들을 이제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발전시켜 보고 싶다. 영화음악을 작곡해 보고 싶다"고 했다. 앤서니 홉킨스의 앨범 'Life is a dream(라이프 이즈 어 드림)' 커버. [사진=유니버설 뮤직] 홉킨스는 1937년 12월 31일 웨일스 포트탈봇 마르감에서 제빵사 리처드 아서 홉킨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왕립웨일스음악연극대학을 1957년 졸업하고 왕립연극학교에서 연기를 배웠으며, 1965년 로런스 올리비에의 초청으로 영국 국립극단에 합류했다. 1987년 대영제국 지휘관 훈장(CBE)을 받았고 1993년 기사 작위를 받았다. 1992년 제6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양들의 침묵'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2021년 제93회 시상식에서는 '더 파더'로 같은 상을 다시 받아 83세의 나이로 이 부문 역대 최고령 수상자가 됐다. 영국 아카데미(BAFTA) 4회, 에미상 2회 수상 기록도 갖고 있다. 작곡가로서의 이력도 길다. 1964년 쓴 왈츠 '앤드 더 왈츠 고즈 온'은 2011년 네덜란드 바이올리니스트 앙드레 류가 앨범으로 내놨고, 이 앨범은 2012년 클래식 브릿 어워즈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홉킨스는 2008년 바턴과 공동 작곡한 '마스크 오브 타임'과 '스키조이드 살사'가 댈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초연됐다. 2012년 1월에는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 마이클 실 지휘로 클래식FM과 함께 첫 작곡 음반 '컴포저'를 냈다. fineview@newspim.com 2026-09-2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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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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