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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셀럽에 길을 묻다] ③104세 철학자 김형석 "희망은 만들어 가는 것"

기사입력 : 2024년06월21일 14:36

최종수정 : 2024년06월21일 14:59

김형석 교수 대담 전문

[세종 = 뉴스핌] 김범주 기자 = 2편에 이은 대담 전문

-(박순영 교수·이하 박) 한참 어려울 시기 중 마우리 선교사(1880~1971년) 같은 분들은 선생님에게 어떤 존재이십니까? 그 마우리 선생님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으셨고 격려를 받으셨습니까?

▲(김형석 교수·이하 김)내가 그렇게 국제적인 삶을 살게 되리라 하는 생각은 못했거든요. 우리 아버님이 젊었을 때 직업을 어떻게 가졌냐 하면 평안북도 운산 금광에 거기 갔었어요. 거기서 일하다가 이제 날 이제 우리 어머님 거기서 나셨거든요. 태어났을 때부터 건강이 좋지 못해서 병원에 다녔어요.

당시 파워라는 의사가 미국 가족들을 위해서 이제 의사가 와 있었거든요. 그래서 의사가 이제 나를 극진히 그렇게 걱정해 줘서 봐주고 돌봐주고 하다가 내가 이제 4살이 넘고 5살 되면서 떠나서 고향을 올려고 했더니, 그 의사 '얘는 아버지가 의사가 돼야 살 텐데'

이제 나 떠나가게 되면 이거 어떡하나 그렇게 아주 섭섭하게 보내주시더래요. 우리 어머니는 항상 나보고 얘기가 뭔고 하니 '파워 의사 때문에 살았다'고 그래요. 5년 동안 이 처방한 약을 먹으라고 그래서 평양시병원에서 갔다가 먹었다고 그 의사 때문에 살았죠.

나도 이제 정말 잊지 못하고 있죠. 근데 나는 미국 달라스에 가서 한인교회에서 강연을 끝내고서 커피 타임이 돼서 모이는데 웬 할머니하고 노인하고 두 미국 사람이 한국말을 못 알아들었을 텐데 강의를 쭉 듣더니 따라 내려왔어요.

따라 내려와서 티타임이 되니까 그 부인이 나한테 와서 뭐라는고 하니, 내가 오늘 여기 보니까 1920년에 평안도 운산에서 태어났다는데 맞느냐 그래요. 그게 맞다 그 말이죠. 내 아들인데 1920년에 봄에 운산에서 태어났다고 그래요.

그럼 나하고 같은 때 태어났다고 말이지 그랬거든. 나는 좀 늙어 보여서 남편인 줄 알았거든요. 내가 파워 의사를 하면서 그 의사가 날 살려줬는데 그 의사에 대한 거 아니니까 안다고 부부가 다 거기에 있다가 정년이 돼서 미국으로 돌아왔다고

어디 계시냐 그랬더니 파워 의사는 세상을 떠나고 그 부인은 고향이 오하이오주(미국)에서 사는데, 이제 치매가 돼서 누구 잘 알아보지 못한다고 그래요.

당신도 이제 고향은 오하이오였다고 말이죠. 날 극진히 이렇게 사랑해준 마우리 선교사도 오하이오이구요. 오하이오 인연이 그렇게 될 줄 몰랐는데, 내 막내딸이 오하이오 살아요. 교수가 됐거든요. 그 남편은 의사가 됐거든요. 그 아들이 또 의사가 됐거든요. 며느리가 간호원이고 말이죠.

파워 의사한테 내가 정말 고맙게 생각했는데, 오하이오 가서 다 갚았다. 사람은 그게 참 인연이 그렇구나. 우리 피천득 선생의 수필 가운데 인연이 있잖아요. 그래서 이게 참 인연이 그렇게 살 수 있다 하는 건데

마우리 선교사 얘기는 그게 어떻게 나왔냐 하면.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평양 할머니 집에서 머물다가 주말이 되면 집에 와서 토요일에 와서 자고 교회 가고 일요일 저녁에 가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 마우리 선교사가 숭실중학교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선교사가 맡은 그 교회가 있어요.

우리 교회가 그분이 맡은 교회야. 그래서 한번 이제 우리 교회 왔다가 이제 가게 되는데, 난 그걸 모르고 다 끝내고서 이제 걸어서 평양으로 이제 걸어서 가는데 웬 고급차가 옛날이니까 고급차 자가용 차가 쓰고 안 보였는데, 숭신학교 이렇게 중학교 1학년 때인데 그 모자가 흰 줄 서 알아요.

그게 와서 내 옆에 와서 쓱 멈추더니 숭실학교에 다니냐 그래요. 그래서 그렇다고 그랬더니. 평양 가는 것이 가냐고 그래서 그럼 내 차를 타라고 말이야. 그 아주 그 좋은 차를 타고서 갔다겨 그래서 그때 이제 만났거든요.

그 다음에 마우리 선교사가 그게 기억이 나니까 이제 학교에서든지 어디 교회에서 나만 만나게 되면 가깝게 만났어요.

이제 내가 생각하니까요. 제 애는 잘 키우게 되면 제 몫을 할 사람이다. 아마 그걸 느꼈는가 봐요. 그래서 참 뜻밖인 건 민구안이 중학교 3학년쯤 됐을 때는 어느 교회에 갈 때는 나 데리고 가요. 데리고 가서 이제 소개해주고 그리고 그랬는데 어떤 때는 중학교 4학년쯤 되니까 나보고 설교를 해보라고 그래요.

못한다고 그랬거든요. 그러면 '내가 안다고 할게 괜찮다' 그거죠. 그래서 그분 때문에 중학교 3학년 4학년 때부터 설교를 했어요 하고 중학교 5학년 때죠.

졸업반 되었을 때는 나보고 뭐라 했는가 하니 숭실전문학교 농장이 있는데 농과가 있어 농장이 있는데 거기에 이제 그 농장을 관리하는 이 마을이 있어요. 거기 여름방학에 가서 부응을 좀 해주라고 말이죠. 그래 내가 제가 가서 괜찮겠냐 그러니까 할 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말이야 가라고 그래서 거기 가서 부흥회까지 해줬거든요. 그리고 이게 평생 날 기억해줘요. 그리고 그다음에 이제 전쟁 나고 이가 끝났거든요.

그런데 한 번 연세대학교로 마우리 선교사한데서 편지가 왔어요. 나는 잘 봤는데 그 편지에 뭐라고 썼는가 하니 너에 대한 생각을 다 오는 사람 보고 물어보고 물어봐도 모르겠는데 요전에 누가 와서 김형석이 어떻게 되냐 그랬더니 연인이 젊은학교 연세대학교 교수가 됐다 들었다고 그래서 편지 보낸다고 말이죠. 반갑다고 말씀.

-(박) 네

▲(김) 나는 그 참 정말 고마워 파워 의상 고마운 생각이다. 그래서 미안합니다. 그래서 이제 내가 어려울 때 도와주고요. 학비도 좀 도와주고 그랬어요. 근데 내가 나한테 도와주면서 하는 말이 뭔가 하니 내가 이거 너 주는 게 아니고 나는 너를 주고 싶어 주니까 너 나한테 갚을 생각은 하지 말아라 이다음에 또 내가 누구한테 주고 싶은 일 있으면 그땐 나 대신 줘라 말이지.

그러니까 미안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그래요. 그래서 이제 좀 그렇게 살았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한 10년 됐나 모르겠다. 제주도에 내가 강연을 갔는데요.

누가 나보고 선생님이 주신 장학금 때문에 제가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나 장학금 줄 게 없는데 그랬더니 대구에 배학봉 의사한테 선생님이 장학금 주셨는데, 그 의사가 나한테 장학금을 주면서 이건 내가 주는 게 아니고 김형석 교수님이 나한테 준 걸 내가 너한테 주니까 고맙게 생각하면 나한테 고맙게 생각해라.

그래서 만나지 못했다가 만났다고 말이죠. 그래서 내 마음으로 말이죠. 그 사랑의 씨는 대대로 흘러가면서 열매 맺게 돼 있구나 말이죠.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사랑의 씨가 날 키워줬고 또 어른되게 살게 해주고 또 나 위해서 목사님이 기도해 주시고, 그 안에 깔려 있는 건 또 우리 기독교 신앙이 깔려 있긴 있죠. 그렇게 아름다운 세상이다. 저는 그런 생각해 보죠.

-(박) 그 선생님 가끔 이제 미국 다녀오시면 저한테 이건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좀 전해달라 교회에서 내가 받아온 거야. 그러니까 좀 전해주라고 그래서 제가 서너 번 학생들에게 이거는 내가 아니고 김형석 선생님께서 위탁한 거다 하고서 그 장학금 형식으로 전달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언제든지 이렇게 전달하는 사랑을 전달하는 배달부 역할을 많이 해 주셨는데, 일단은 선생님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도움을 주는 분들 그리고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좀 쉽게 선생님 경우는 건강과 관련한 이 많은 과정에서 그런 도움을 통해서 오늘의 참 큰 역할을 하실 수 있는 데까지 오셨는데

▲(김) 우리 지금 그 얘기는 좀 이렇게 특별한 얘기같이 들리는데 살고 보니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게 돼 있어요. 사랑을 받고 주고 사랑을 받고 주고. 그런데 그걸 거부하면 사는 인생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 젊은 세대들이 공동체 의식이 좀 그런 데서 느껴줬으면

-(박) 선생님 이제 조금 이야기가 조금 다른 문제로 좀 돌아와야 되겠습니다. 1950~60년대 참 정말 우리 사회가 너무 궁핍했는데, 그때 선생님이 쓰신 책들이 '고독이라는 병' '영혼과 사랑의 대화' 수시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부분이 이제 우리 한국이 빈곤으로부터 넘어설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늘 도덕성에다가 많이 이제 두셨는데

실제로 그거는 당장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건 아닌데도 선생님은 이 도덕적 도덕성의 회복이 우리 사회의 궁핍을 넘어서는 어떤 길이다 이렇게 늘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런데 지금도 그 생각을 계속 가지고 계시는지요.

▲(김) 도덕과 윤리성에 대한 문제죠. 어제 오늘 뭐 인문학에 대한 생각을 조금 해보고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 인문학 철학이 강단에서 사라진다. 인문학이 이제 없어진다. 인문학의 위기다 그런 얘기하는데.

내 생각은 인문학이 먼저 있고 거기서 이제 사회과학이 생기고 거제 르네상스 때에 휴머니즘으로 변해가지고 오늘까지 와 있거든요. 그 인문학이 지금 우리가 보면 다 큰 나무에 뿌리니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인문학은 없는 것 같다 이제 다 잊어버리고 사는데

그래도 그 뿌리가 없으면 바람 불면 나무가 무너지게 돼요. 뿌리에서 영향을 주지 못하면 말라버리거든요. 그러니까 뿌리에서부터 사는 것이기 때문에 인문학이 없는 세상은 없고 인문학은 뿌리다 말이죠.

인문은 뿌리인데 그 인문학에 뿌리면 거기에 그 뿌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무엇인가. 둘인데 하나는 이성적인 사유다.
진리와 진실이다. 하나는 도덕 가치다 의미가 있죠.

이 둘 가운데 하나가 없어져도 인간 사회는 안 되고, 또 하나만 남아도 안 되고 같이 살아야 한다 하는데 지금 이성적인 사고에 의한 진리 진실에 대한 건 아직 남아 있는데 양심적 울림이라고 하는 그게 지금 자꾸 사멸되고 있단 말이 이거 없으면 나무가 자라지 못하듯이 우리 사회가 무너진단 말이죠.

그래서 윤리적 가치와 진리 이건 없으면 안 된다 했는데 그거 없어도 살 수 있는 줄 알고 역행하는 정치가들이 있으니까. 미안하지만 푸틴 같은 일도 나오고 김정은 이 같은 이도 나오고

그런데 이건 위험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럼 그 가치가 뭐냐 그 가치가 사회적으로 나오면 내가 보기에는 첫째가 진실이고 두 번째가 정의와 자유고 마지막 목적은 인간이다. 그게 휴머니즘이다. 그러니까 그거 없는 사회에는 안 된다 말이죠. 근데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 정치하는 사람들을 쭉 보게 되면 국가나 국민보다도 정권을 더 생각하는 사람이 거기 빠지게 돼요.

또 정권이 누구를 위해서 한다고 할 때에는 이건 역사를 역행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누구를 위해서 정치한다고 하는 건 이건 사회학이고, 우리 정권을 위해서 정치한다는 건 없어져야 하고, 국민 모두를 위해서 해야 한다는 이걸 거부할 수는 없죠.

그런데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젠 다 끝났으니까 내놓고 얘기해도 괜찮겠지만, 우리 문재인 대통령 때 제일 크게 실수한 게 경제를 잘 성장하던 경제를 중단시켰고, 또 휴머니즘 외교를 북한 관계를 살리기 위해서 위축시켰는데, 그보다도 더 잘못돼 있는 건 진실하지 못했다 정직하지 못했다.

그리고 북한 동포를 그렇게 법에 하지도 않게 돌려보내고 했다는 이런 반 휴머니즘, 그건 아니다. 그건 뭐 정권이 바뀌어도 그건 아니에요. 그건 아니고요. 아무리 국민을 잘 살게 해줬다 해도 인간을 정치의 수단으로 삼으면 그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게 지금 자꾸 이제 퍼져나오니까 이 가치는 이건 절대 가치이기 때문에 그건 우리가 따라가야 하고 그걸 국민은 그걸 지켜야 하고 그 얘기가 아마 그렇게 설명해 주시는 것 같아요.

-(박) 선생님, 그 고독이라는 병, 60년에 이제 나온 책인데 최근에 와서 누가 김형석 선생님은 뭐 정치에 대해서 뭐 별로 말씀을 안 하는 분이 왜 갑자기 요즘 와서 정치 이야기를 하시나 이러시는데, 사실은 1959년부터 선생님은 사회 문제에서 제일 큰 거 세 가지를 이야기를 하셨어요.

고독이라는 병에서 이 사회의 가장 문제가 되는 세 그룹의 사람들이 있다. 첫 번째 그룹의 사람들을 정치인의 문제, 두 번째가 종교인의 문제, 그다음에 세 번째는 사회 지도자들의 문제 특히 이제 사회 지도자라는 거는 사회 영향력을 제일 첫째는 정치인 정치인 정치인 정치인 정치 정치인 둘째는 종교인 셋째는 이제 사회 지도층이라고 하거나 사회에서 무언가를 이제 끌어갈 사람들이 이 세 사람들이 어디에 이제 문제가 있는가를 그 고독이라는 병 속에 너무 자세하게 나옵니다.

그래서 선생님 아예 애초부터 이 사회에서 생길 수 있는 이 문제들을 이 세 사람들이 솔선해서 달라지게 되면 우리 사회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하는 생각을 하셨거든요. 이 부분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으시죠.

특히 이제 지금은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를 좀 사실은 하셨는데 그리고 특히 이제 사회인이라고 이제 종교인은 일단 종교인 정치인 빼고라도 사회인이라는 거는 한 사회에서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딴 사람들의 이익을 훼손시키는 사람들이 또 우리 사회에 그건 정치인도 아니고 종교인도 아니면서도 이 사회를 좀먹는 거라고 아주 아주 매섭게 비판을 하셨거든요. 그 부분은 아직도 선생님이 그대로 보시고 계십니까?

▲(김) 박 교수가 나보다 그분들이 더 많이 아시는데 공감하는 걸 이끌어내시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우리 생활로 돌아가서 좀 느끼는 걸로 너무 잘 아니까 이제 그 말씀 가운데 이런 얘기 하시는 게 나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우리가 이렇게 사람이 이렇게 사회생활을 쭉 하다 보면 나 이기주의자의 내가 목적이고 내가 전부고 나 위해 살면 된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다 실패하고 불행해지고 버림받고

그런 사람들이 지도자가 된다든지 교수가 된든지 판사가 든지 그렇게 되면 사회가 병들어 무너지고, 그리고 대통령이라든지 무슨 대학 총장이 됐다든지 요새 같은 무슨 큰 병원에 병원장이 됐든지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사회가 무너지는 거고 이제 그렇게 돼 있거든요.

그래서 이제 쭉 그런 계층을 올라가게 되면 아무리 안 그러려고 해도 우리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도자는 지도자다워야 한다.

두 가지인데 첫째는 다 알아야 할 거 꼭 알아야 할 것을 대통령은 모르고 있었다. 그건 사회학이다. 플라톤의 국가론이 바로 그거 아니에요. 아는 지도자는 알아야 한다고 말이죠. 모르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안 되고. 그러니까 알아야 한다.

또 그게 없으면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서라도 정치화하고 해야 하는데 그걸 지금 못하고 있단 말이죠. 그래서 우리가 항상 그때 하는 얘기지만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 민주당 세대를 살고 있는데, 민주당 주역을 맡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출신이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운동권 출신이고, 우리 법조계 사람들이 머리도 우수하고 공부도 많이 하고 했지만은 사법고시 합격하고는 연관돼서 쭉 오니까 국제 감각이 너무 없었다.

너무 국제 감각이 없었고, 운동권이 공부보다도 행동주의자들이기 때문에 알 걸 몰랐다. 아는 건 다른 사람이 알게 몰랐다.

그러니까 방향을 상실하고, 또 중요한 건 역사 공부를 왜 하느냐 역사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과거가 오늘을 만들었지만 오늘이 미래를 위해 있다고 하는 걸 아는데. 역사 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과거로 돌아간다 말이지 동양의 전통이 좀 그렇단 말이죠.

우리 이규호 교수님 있지 않았어요? 우리 체플 시간에 이런 얘기하대요. 당신이 이제 오늘 채플 시간에 학생들한테 얘기하기 위해서 동양 철학교수반에 갔다고 가서 공자 맹자보다 더 훌륭한 사상가가 있느냐 없느냐 그랬더니, 공자 맹자보다 훌륭한 사상가가 어디 있냐고 그렇다고 말이죠.

근데 서양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한테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더 훌륭한 철학자가 있냐 없냐 그러면 뭐라고 그러냐 그건 옛날 사람 아니냐고. 거기에서 우리가 자랐고 앞으로는 그보다 훌륭한 사람이 얼마든지 나와야 하는 게 그런다 말이죠.

그런데 이 교수 얘기가 구하니 그만큼 우리 동양의 지도자들은 회고적이다 보수적이다. 앞으로 못 나온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이 앞섰다고 하는 건 뭐고 하니 역사 의식 때문에 미래를 본다고. 기독교가 역사 종교이기 때문에 그랬더니 미래 본다.

그래서 이제 그 비유를 이렇게 하대요. 나도 들으면서 학생들한테 그렇게 설명하는 게 제일 빠르겠다. 저보고 이제 우리 같이 걱정하는 것 가운데 문제는 정치하는 사람들 또 종교 사람

-(박) 사회지도층

▲(김) 하여튼 뭐 우리 정신적 지도자들. 저는 이제 예를 들어 말하면 중동이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 몇백 년 동안 혼란 상태를 만드는데 해결할 방향이 안 보이거든요.

그래서 역사가들이 공산주의는 100년이 지나면 없어질 것 같은데 중동은 저거 없애지 않는다 말이죠. 그런데 그게 왜 그런가 나보고 얘기하라고 그러면 인문학이 없었다. 휴머니즘이 없었다.

그러니까 종교를 받아들이는데 거기에 빠지고 나면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게 돼요. 그 교리에 빠지게 되면 양심적인 판단을 못하게 돼요. 그거 못한 사회는 후진국가가 돼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비슷한 그 어두운 사회가 공산주의 국가다.

난 북한에서 경험하고 지금 이제 공산주의를 많이 비교적 경험한 셈인데, 공산주의에는 그 뭐 저희 믿는 거 하나만 믿기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이 없다 하고 윤리관이 없다 그 말이죠.
그러니까 공산주의 사회가 또 이렇게 병들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가져야 하는 게 특별히 지도자가 가져야 할 것, 대학의 지성인들이 가져야 할 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아주 쉽게 말하면 세계 속에서 한국을 보자.

두 번째는 역사적인 과정에서 우리 시대를 보고 미래를 찾자. 결국은 그 두 가지 생각의 결핍 때문에 우리가 지금 혼란을 겪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이건 뭐 이런 얘기한다고 해서 우리가 잘라서 하는 얘기는 아니고, 그래도 우리는 그걸 깨달았다 그것 뿐이거든요.

깨달았으니까 우리 좀 정치하는 사람들 특별히 그랬고요. 중동 얘기했는데 종교 국가가 선진국가 된 게 기독교 사회밖에 없거든요. 기독교는 휴머니즘을 탄생시켰고, 이성적인 사고를 받아들였거든요.

그런데 다른 종교 그리 못 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교리주의에 빠지고 교회주의에 빠지게 되면 우리 기독교도 그거 못할까 봐 걱정되니까. 기독교인들도 정치계 지도자만큼 올라가라 말이지 세력 받아들여라 우리 대학이 맡은 책임자는 그런 거 아닌가 우리 책임이 말하자면

-(박) 마지막으로 조금 매듭을 조금 지을 수 있는 그것으로서 우리가 열린 사회를 열어가는 과정에서 갖추어야 할 덕목들, 스스로가 마음의 태도나, 특히 청년들에게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

▲(김) 하나만 얘기하고 싶은데요. 희망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내가 살아보니까 역경을 많이 겪어야 유명해지고 나 출세하려고 하면 출세가 안 되고 함께 갈 적에 함께 가면서 역사는 희망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건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받고난 하나의 가능성이다. 그것만 좀 가르쳐 줬으면 좋겠어요.

-(박) 선생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 시간 동안 예상보다 너무 길어진 건 아닌가 싶은데 선생님 말씀에 빠지다 보니까 이렇게 까지 왔습니다.

오늘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 김형석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또 여러분 마음에 많은 울림이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특히 청년 여러분 아마 오늘 이 말씀으로 큰 결단의 계기를 여러분 얻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를 더 좋은 나라로 그리고 지구촌 공동체와 화합하는 나라로 가게 되었기를 기원합니다. 말씀해 주신 김형석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시청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wideope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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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사람들] 국정 로드맵 짤 이한주 [서울=뉴스핌] 윤채영 기자 = 이재명 정부의 5년 국정 로드맵을 짤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은 이재명 대통령과 '30년지기'인 최측근 인사다. 이 원장과 이 대통령의 인연은 '성남'에서 시작됐다. 이 원장이 가천대 교수이던 시절 경기 성남시에서는 신도시 개발 문제, 광주대단지 사건 등 여러 문제가 터졌다. 두 사람은 시민운동에서 마음이 맞아 현재 인연으로 이어졌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 지난해 민주연구원장 시절 뉴스핌과의 인터뷰. 2024.06.11 pangbin@newspim.com 이 원장은 지난해 뉴스핌과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상세히 털어놨다. 그는 "필요하면 서로 불러대고 하는 관계"라며 친밀함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이 원장은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이던 시절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선언을 계기로 더욱 가까워졌다고 했다. 그는 "성남시에서 사회적 기업, 사회적 협동조합을 100개 이상 만드는 데도 같이 했고 기본소득의 원조라고 얘기할 수 있는 청년 기본소득도 성남에서 민선 5기, 6기를 거치면서 많은 사회 실험을 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이 2022년 대선에서 메인 정책으로 꺼낸 '기본소득'도 이 원장의 작품이다. 당시 대선 패배로 기본소득 정책은 다소 후퇴했지만, 대신 '기본사회'를 꺼내들었다. 이 대통령은 당대표이던 시절 당대표 직속 기본사회위원회를 구성해 인간이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된 기본권 강화 등에 주력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기본사회 공약을 강조했으며, 대통령 직속의 기본사회위도 꾸릴 예정이다. 이처럼 '기본 시리즈'를 고안한 인물로 이 대통령의 꾸준한 신임을 얻고 있는 셈이다. 두터운 의리로 민주당의 공약 개발을 하는 민주연구원장에 이어 국정 밑그림을 그리는 국정기획위원장을 맡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이 원장은 현 정부·여당이 전국민에게 25만원을 줄지 선별적으로 지급할지에 논의 중인 데 대해서도 지난해 뉴스핌과 인터뷰에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정부는 예산이 많이 들고, 선별적으로 줘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정 그렇다고 한다면, 가난한 사람한테 더 주는 것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겠다"고 했다. 해당 발언은 당시 야당 입장에서였다.  이 원장은 선별 지급이 기본소득의 고유 이념에 대해서는 후퇴한 것이라고 했지만 "전국민 지급을 끝까지 우겨야 할 사안은 아니"라고 했다. 이 원장은 16일 출범하는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정부 조직개편과 국정과제를 정리하며 이재명 정부의 5개년 국정 밑그림을 약 50일간 짤 예정이다.  ▲1956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생물학 학사, 경제학 석·박사 ▲가천대 경제학과 교수 ▲경기연구원 원장 ▲민주연구원 원장 ▲2025년 대선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정책본부장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장  ycy1486@newspim.com 2025-06-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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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신임 원내대표 송언석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송언석 국민의힘 신임 원내대표는 16일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이 제안한 5대 개혁안 당원 여론조사와 관련해 "종합적으로 고려해 혁신의 논의가 돼야 한다"고 했다. 송 원내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출 의원총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여러 의원들의 견해가 다르고 김 비대위원장 스스로 상임고문님들이랑 얘기할 때도 몇가지 부분은 곤란하단 의사 표현을 했다고 들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송언석 국민의힘 신임 원내대표가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25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출 의원총회에서 당선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25.06.16 pangbin@newspim.com 그는 당 혁신위원회 구성에 대해선 "아무래도 당을 사랑하는 마음이 일차적이고, 그런 점에서 특정 계파에 편향적으로 알려진 분들은 이번 인선에서 2차적으로 평가되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송 원내대표는 김 비대위원장의 임기 문제와 전당대회 시기를 묻는 질문엔 "조속히 정리해 특별한 반대가 없으면 (전당대회를) 조기에 개최할 수 있게 하겠다. 실무적 절차가 있어서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6월 말 이후에 어떻게 할 거냐는 문제가 발생할 건데 만약 비대위의 임기를 더 가져가야 할 일이 있으면 이헌승 전국위원장과 상의해서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에 대한 질문에는 "헌법 질서 속에 있었던 탄핵 결과에 승복하고 모든 것이 끝난 상태"라며 "잘못한 게 있으면 인정하고 반성 할 용의가 있고 그렇게 해왔다"고 했다. 송 원내대표는 같은날 선출 직후 연합뉴스TV와 인터뷰에서 '변화와 쇄신'을 강조했다. 그는 "변화와 쇄신을 통해서 앞으로 성장하도록, 미래에 갈 수 있도록 우리 당이 국민의 마음을 더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서로 협상할 것은 협상하고, 또 투쟁할 것은 투쟁하면서 의원님들의 총의에 따르겠다"고 했다. 상법개정안과 관련해선 "주주 충실의무에 대해 다시 한번 논의가 필요하다"며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함께 상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민석 국무총리자와 관련한 각종 의혹에 대해선 "국민들께 소상히 밝히는 게 먼저 우선순위로 해야 할 도리"라며 "김민석 후보자를 지명한 이재명 대통령도 지명 철회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미리 고민을 해 두시는 게 좋지 않겠나"라고 했다.  allpass@newspim.com 2025-06-1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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