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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다양성에 대해 다루다…'메리 퀴어'-'남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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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OTT와 각 방송사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일반인 연애 리얼리티가 더욱 확장됐다. 이전에는 남녀 커플의 연애사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성(性)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예능 '메리 퀴어'와 '남의 연애'이 탄생했다.

◆ 웨이브, 성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다…'메리 퀴어'-'남의 연애'

국내 OTT 웨이브에서 국내 최초로 성 소수자들을 소재로 한 예능을 탄생시켰다. 비주류로 꼽혔던 이들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면서 화제를 모았다. 먼저 공개된 '메리 퀴어'는 당당한 연애와 결혼을 항한 다양성(性) 커플들의 도전기이자, 리얼 커밍아웃 로맨스이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메리퀴어' 포스터 [사진=웨이브] 2022.07.11 alice09@newspim.com

퀴어 커플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만큼 사회 그늘에 숨어왔던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양성애자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들의 사랑과 연애, 그리고 삶을 조명한다. 지난 8일 공개된 1, 2화에서는 서로 사랑하지만 곳곳에서 맞닥뜨리는 편견의 벽으로 좌절하는 출연진들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메리 퀴어'는 다양한 성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면, '남의 연애'는 일반 남녀의 연애 리얼리티 포맷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이번 프로그램은 동성애자 남성들이 한 집에 입주해 연애 상대를 찾는 데이팅 프로그램 형식이다.

'남의 연애' '메리 퀴어'처럼 '국내 첫'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성 소수자를 소재로 한 만큼, 이들의 로맨스를 가감 없이 보여줘 예능적 재미와 사회적 화두를 던지는 것이 기획의 취지이다.

임창혁 웨이브 편성사업부 책임 매니저는 두 예능에 대해 "꾸밈없는 현실 그 자체의 로맨스"라고 표현했다. 그는 "다양한 장르를 고민하던 중 최근 BL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현상을 보며 개인적으로 관심 없던 분야에 호기심이 생겼고, 여러 작품들을 보며 퀴어를 이해하게 되고 관심 갖게 됐다"며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또 "성소수자들의 환경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 고민과 공론화가 필요하다면 그들의 생생한 삶 자체를 보여줘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라며 "'다양성(性) 커플'이라는 단어를 빼고 연애와 결혼만 본다면 공감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 감정일 것"이라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남의 연애' 포스터 [사진=웨이브] 2022.07.11 alice09@newspim.com

◆ BL 장르로 깨진 편견…"건전한 대화의 장 되길 바라는 마음"

성 소수자들의 이야기는 사회의 비주류로 꼽혀 국내에서는 많이 다뤄지지 않았다. 이들의 이야기조차 시청자들의 거부감이나 고정관념을 야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BL 장르의 웹드라마가 방영되고 인기를 끌자, 성 소수자들에 대한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BL 장르의 경우 왓챠를 시작으로 콘텐츠미디어그룹 NEW에서도 웹IP 기반 콘텐츠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총 4편의 BL콘텐츠 제작 계획을 밝혔다.

각종 BL 드라마로 인해 성 소수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마니아층을 형성시킨 만큼, 그들에 대한 편견은 이전보다 사그라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OTT에서도 본격적으로 성 소수자들에 대한 현실을 그리는데 힘 쓰고 있다.

이에 웨이브 관계자는 "OTT는 갈수록 다양해지는 이용자들의 취향을 적극 반영하는 대안 플랫폼으로 각광받고 있다"라며 "이에 연애 리얼리티에 있어서도 '메리 퀴어'나 '남의 연애' 같은 새로운 도전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두 다양성 예능이 성소수자들의 연애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여러 담론을 파생시킬 것"이라며 "이러한 이슈들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생각해 볼 수 있는 건전한 대화의 장으로 발전하길 기대해 본다"고 덧붙였다.

alice0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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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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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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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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