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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관광객이 본 서울은?…"물가 비싸고 문화재 관리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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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계에서 가장 물가 비싼 도시 2년 연속 6위
2008년 남대문 화재 충격.."문화재 관리 이해불가"

[서울=뉴스핌] 김세혁 기자 = “서울은 솔직히 관광지로선 별로죠. 물가가 너무 비싸요.”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 일본에서 일하는 호리우치 노부히데(44) 씨는 최근 서울 물가에 놀랄 때가 많다. 도쿄의 대표적 부촌 긴자에서 8년째 일하는 그에게도 서울의 물가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비싸기 때문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8일 서울에서 만난 그는 “서울 출장이 잦아 술집이나 마트를 심심찮게 가는데 물건 값이 너무 비싸다. 도쿄만큼 물건이 많은 것도 아닌데 죄다 비싼 느낌이다. 손이 잘 안 간다”고 말했다.

1999년부터 한국생활을 해온 그는 “서울과 인연이 벌써 20년째인데 물가가 놀랄 정도로 올랐다. 학생 시절 서울서 먹던 2500원짜리 왕돈가스가 그립다. 이제 서울이 도쿄보다 싼 건 교통비나 주차비 정도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일본 지인들 생각도 비슷하다. 한국이 예전엔 가깝고 물가도 싼 관광지였지만 이젠 같은 값이면 동남아나 하와이로 여행을 간다더라”고 전했다.

세계적 관광도시를 지향하는 서울시가 높은 물가 탓에 외국인들에게 외면 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뉴욕이나 런던, 도쿄, 시드니 등 유명 도시와 경쟁하려면 치솟는 물가부터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이어진다. 

2018 가장 물가가 비싼 세계 주요 도시 <그래픽=김세혁 기자>

서울의 물가는 세계 주요 도시들 중 최상위권이다. 월드이코노믹포럼이 올해 초 경제분석기관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를 인용한 자료에서 서울은 스위스 제네바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도시 6위에 올랐다.

서울은 같은 조사에서 2016년 8위, 지난해에는 6위를 차지하며 뉴욕이나 런던, 도쿄보다 물가가 비싼 도시로 악명이 높다.

외국인이 아쉬워하는 부분은 물가 말고도 있다. 즐겨찾을 문화재나 특화된 관광상품이 세계적 도시보다 적고, 특히 관리상태가 엉망이라는 반응이 많다. 2008년 2월 대한민국 국보 1호 남대문이 방화로 전소된 사건은 외국인들에게도 충격을 줬다.

2014~2016년 외국인이 한국을 관광지로 선택한 이유(2017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쇼핑이 29.3%, 자연풍경감상은 25.2%인데 비해 역사 및 문화유적 탐방은 8.2%에 불과했다. 그만큼 한국은 문화재 경쟁력이 약하다는 의미다.

프랑스 유학생 오스카 씨(27)는 “유럽 국가들은 문화재를 국민 모두 소중하게 다루고 국가 차원에서 보존한다”며 “2004년 때 부모님과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덕수궁 돌담길이 시멘트로 땜질된 걸 보고 받은 충격이 생생하다. 남대문 화재는 말할 것도 없이 쇼킹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은 한류라는 문화콘텐츠를 역사콘텐츠와 융합하는 독창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며 “이런 부분을 발전시키면 외국인들이 보다 즐겨찾는 도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starzooboo@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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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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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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