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부, 비트코인 아닌 블록체인 기술자에게
블록체인으로 선전 화창베이, 기술산업 메카 부상
[뉴스핌=강소영 기자] 한국의 350만 인구가 가상화폐에 인생역전의 꿈을 실었다는 소식이 나왔다. 우려와 경고음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전 세계 가상화폐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중국에서는 최근 가상화폐를 통해 인생역전에 성공한 '선구자'들의 스토리가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중국의 대형 뉴스 포털 텐센트차이징은 22일 가상화폐 채굴 사업가와 채굴기 산업 현황을 자세히 소개한 뉴스를 보도했다.
두 기사에 소개된 사례를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 '대박 신화 주인공'들이 세계의 가상화폐 투자자들과 관련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를 소개한다.
◆ 중국 1세대 비트코인 '광부', "내 목표 자산은 16조 원이다"
중국의 가상화폐 채굴장 모습
'비트코인' 한 방에 인생을 건 나, 모두가 미쳤다고 했다.
나는 푸젠성(福建省) 룽옌(龍岩) 출신이다. 가상화폐 채굴 사업에 일찍 진출해 상당한 재산을 축적했다. 지금까지 얼마를 벌었는지 공개할 순 없지만, 내 목표액은 밝힐 수 있다. 1000억 위안(약 16조 7000억 원), 이것이 내가 벌어야 하고 모을 수 있다고 설정한 목표다.
내가 가상화폐 분야에 접어든 것은 우연과 필연의 결과다.
2014년 실연의 아픔을 딛고 작은 잡화점을 열었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 진르터우탸오(今日頭條 중국의 유명 뉴스 앱)로 성공한 사업가가 된 장이밍(張一鳴)의 고향인데, 그와 같은 인물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내가 창업할 당시 진르터우탸오의 가치는 10억 달러(약 1조 706억 원)였고, 스스로 사업 수완이 있다고 여긴 나는 그를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진르터우탸오의 가치는 이미 수 백억 달러로 급등했고, 내 목표도 그만큼 멀어졌다. 그와의 간극은 전통 사업으로는 좁힐 수 없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획기적인 아이템이 절실했다.
당시 내 사업도 나름 성공적이었다. 위챗, QQ 등 SNS를 통해 사업 규모가 삽시간에 커져나갔다. 아직도 내 QQ 계정 팔로워가 70만~80만에 달한다. 당시 때마침 전자상거래 열풍이 불면서 성장성도 있었지만 전통 사업으로는 '인생역전'의 꿈을 이루기엔 역부족이었다.
기회은 우연히 다가왔다. 2015년 남자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IT 첨단 기술을 활용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인터넷 소설을 읽게 됐고, 이때 처음 비트코인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 소설은 내 피를 끓게 했고, 일주일 넘게 비트코인에 매달려 연구했다.
결국 난 비트코인에 인생을 걸기로 했다. 당시 가지고 있던 집과 차를 판 돈으로 비트코인을 샀다. 형체도 없는 사업에 전 재산을 쏟아붓는 나를 보고 고향 사람들은 미쳤다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난 비트코인에서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돈'의 냄새를 맡았고, 성공을 확신했다.
내가 비트코인에 인생을 걸 수 있었던 건 이 분야에 정통한 동업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잡화점에서 SNS 전자상거래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알게 된 그는 블록체인 전문가였다. 그는 글로벌 블록체인 선두 기업에 모두 투자를 해본 경험자였다. 그는 2년 동안 나의 자문 역할을 했고, 투자금도 제공했다.
그를 통해 나는 '비트코인 광부'로의 길에 뛰어들게 됐다. 나는 동료 4명과 함께 광저우에서 차를 몰고 2000km가 떨어진 윈난성으로 이주했고, 본격적인 채굴에 나섰다. 기술자가 없었기에 독학으로 비트코인 채굴 원리를 습득했다. 비트코인 채굴은 사실 어렵지 않았다. 기계만 잘 관리하면 자동으로 생산되는 시스템이었다.
초기 나와 내 동료들은 비트코인을 비축하는데 집중했다.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올랐기에 감히 내다 팔지 못했다. 오늘 1000위안에 판 비트코인이 자고 일어나면 10만 위안이 될 수도 있는데 어찌 감히 섣불리 내다 팔 수 있었겠나!
당시 아직 가상화폐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아 가격이 크게 오르지는 않았지만 2년 동안 평균 수익률은 원가의 4배를 넘어섰다. 비트코인 채굴 사업 모델은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가상화폐 1코인을 생산하는 원가가 2만 위안이라면 판매가는 5배가 넘는 10만 위안에 달했다. 가상화폐 거래가 늘면서는 거래 중개 수수료까지 챙길 수 있게 됐다.
비트코인 가격 급등에 추산 자산은 눈덩이처럼 늘었지만, 수중에 현금은 없어 고된 날을 보내야 했다. 밥을 사 먹을 돈이 없어 짜차이(중국식 짠지)에 라면만 먹으며 버티는 날이 지속됐고, 짠 내 나는 생활을 견디지 못해 중도 이탈하는 동업자도 생겨났다.
가상화폐가 아닌 블록체인 기술을 가진자가 미래의 부를 움켜쥔다.
나는 끝까지 버텼고, 인생역전을 향한 내 꿈은 더욱 커지고 있다.
나와 같은 1세대 '가상화폐 광부'는 이미 이 분야의 기득권자가 됐다. 이들은 대부분 가상화폐를 처분하고 두둑한 현금 자산을 확보했다. 현재 '가상화폐 광부'는 2.0 시대에 돌입했다. 그들의 경쟁과 승패는 가상화폐의 알고리즘 능력에서 판결 나고있다.
미래의 부는 가상화폐를 가진 자가 아닌 가상화폐의 알고리즘에 능한 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점에서 블록체인 기술은 매우 중요하다. 이젠 모두가 블록체인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나는 블록체인이 안정적인 사업으로 자리 잡는데 앞으로 3~5년의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본다. 아직은 투자 거품이 진행되는 과정이다. 내가 단순한 가상화폐 투기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광부'가 된 것도 미래 블록체인 시장의 전망을 밝게 보기 때문이다.
오늘날 비트코인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가상화폐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모두가 열광할 때 난 오히려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올해 난 중국에 있는 가상화폐 채굴기의 대부분을 처분했다. 이 기계들은 당시 1000만 위안을 주고 마련했는데, 처분 후 직원들 몫을 챙겨주고도 5~6배의 이윤이 남았다. 난중국 내가상화폐 자산을 거의 모두 현금화했다. 앞으로의 전략은 '세계화'다. 이미 루마니아, 북미 등 지역에 비트코인 채굴장을 마련해뒀다. 앞으로는 규모를 100만 대 수준으로 늘릴 것이다.
내가 이끄는 회사는 블록체인 투자 전문사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의 목표는 블록체인 업계의 '앤트 파이낸셜'이 되는 것. 나와 우리 팀은 앞으로도 이 분야에서 항상 남들보다 몇 발 앞서 갈 것이고 블록체인 업계에서 선구자의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 가상화폐 채굴기의 메카 선전 화창베이 상인, "블록체인이 선전을 성장케한다"
가상화폐 채굴기가 주력 제품이 된 선전 전자상가 모습 <텐센트차이징 뉴스 화면 캡쳐>
'황금알을 낳는 거위' 채굴기 중국이 장악했다.
나는 선전의 전자상가 1번지 화창베이(華强北)의 가상화폐 채굴기 판매상이다. 원래는 컴퓨터 부속 제품을 팔며 근근이 가게를 이어갔지만, 채굴기 판매로 업종을 변경한 후 들어오는 돈 세기도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 됐다.
중국의 남쪽, 기술과 제조업 중심지 선전에는 최근 세르비아, 러시아, 인도 등에서 온 바이어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들 대부분은 가상화폐 채굴기를 찾고 있다. 1월 중순 선전은 연일 내리는 겨울비에 기온이 뚝 떨어졌지만, 내 사업의 열기는 오히려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방금도300여만 위안(약 5억 원) 규모의 가상화폐 채굴기 100대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바이어는 러시아에서 온 손님이다. 채굴기를 공급할 수 있다는 말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냉큼 계약을 체결했다.
사실 화창베이에 나 같은 채굴기 사업가들이 한 둘이 아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 열풍 속에서 일찍이 '돈 냄새'를 맡고 채굴기 판매에 뛰어든 이들이다. 전자상거래 성장세 둔화로 활기가 주춤해졌던 화창 베이는 최근 반년 가상화폐 열기로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점포 임대료가 다시 급등하고, '서우지(手機 핸드폰)'을읊조리던 짝퉁 판매상들도 '쾅지, 쾅지(礦機 가상화폐 채굴기)'를 외칠 정도다. 사실상 전 세계 가상화폐 채굴기의 대부분이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이다. 이 부분에서 중국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고, 전형적인 셀러 시장이 형성돼있다.
특히 선전은 탄탄한 제조업 인프라와 IT 기술력에 힘입어 가상화폐 채굴기 시장을 장악할 수 있게 됐다. 세계 3대 가상화폐 채굴기 업체인 비터다루(比特大陸),자난윈즈(嘉楠耘智), 이방커지(意邦科技)도 모두 중국 기업이다. 이들 3개 업체가 전 세계 90% 이상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화창베이의 랜드마크인 사이거 광장(SEG Plaza)은 이미 전 세계적에서 가상화폐 채굴기의 메카로 통한다. "채굴기를 사려면 사이거로"라는 말이 전 세계에서 통용될 정도다.
나와 같은 화창베이 상인들은 외국 손님들을 선호한다. 정해진 출장 기간 내 원하는 상품을 필요한 양만큼 확보해야 하는 이들은 잘 따지지도 않고 빠른 시간 내 대량 주문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이다.
최근 반 년 동안 출고가 1만 위안이던 채굴기 1대 가격은 3만 위안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공급 부족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기능이 떨어지는 중고 제품도 한 대에 2만 위안이 넘게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공급 부족에 시장에선 "채굴기를 주면 할아버지로 모신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다.
선전은 전 세계 가상화폐 산업의 '메카', 블록체인이 선전을 키운다.
나는 가상화폐 열풍과 채굴기 산업 성장이 선전을 업그레이드할것으로 본다. 중국 채굴기 기업이 전 세계를 장악하고, 중국의 블록체인 기술이 세계를 선도하면서 선전의 가상화폐 관련 산업도 함께 성장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을 둔채굴기의 등장만으로도 짝퉁 제품 가격 할인 경쟁으로 버티던 선전 전자상가는 이미 기술 주도형 첨단 기기 전진기지로 변모하고 있다.
'물음표'만 남기고... 노만석 '떳떳하게' 퇴임[서울=뉴스핌] 김지나 김영은 기자 = 노만석(54·사법연수원 29기)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이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로 논란이 확산되자 14일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퇴임사에서도 논란의 핵심인 항소 포기 과정에서의 '윗선 압력' 의혹에 대한 진실은 끝내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전날 노 대행이 한 언론과 진행한 인터뷰 기사에서는 항소 포기 결정에 구조적 압력이 있었음을 시사해 퇴임 이후에도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항소 포기' 정쟁 한가운데 세워놓고...'외압 의혹'엔 입 닫은 퇴임사
이날 오전 10시 30분 대검찰청 대회의실에서 노만석 직무대행의 퇴임식이 진행됐고, 약 30분 후인 오전 11시경 퇴임사가 공개됐다. 특히 관심을 모은 대목은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 항소 포기 과정에서 법무부 외압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노 직무대행이 퇴임사를 통해 해당 의혹의 진실을 밝힐지 여부였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항소 포기 논란 끝에 사표를 낸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비공개 퇴임식을 마치고 차량을 타고 대검 청사를 나서고 있다. 2025.11.14 yooksa@newspim.com
하지만 이와 관련된 내용은 퇴임사에 없었다. 항소 포기와 관련해 퇴임사에서 언급된 부분은 "최근 일련의 상황에 대하여 검찰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검찰의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저 스스로 물러나는 만큼, 일각에서 제기되는 검사들에 대한 징계 등 논의는 부디 멈추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항소 포기 과정과 관련된 내용은 공식적으로 공개된 퇴임사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전날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당시 상황과 자신의 입장이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됐다.
인터뷰에서 노 대행은 "정권하고 검찰이 방향이 같았으면 무난했을 텐데 솔직히 지금은 (정권과 검찰이) 완전히 역방향"이라며 "검찰청을 폐지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결이 다른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법무부가 항소 포기를 압박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모든 것은 나의 결정"이라고 밝혔다. 노 대행은 "윗선의 생각이 내 생각과 다를 경우 선택지는 끝까지 맞서 싸우든가 받아들이든가 딱 두 가지"라며 "(윗선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건 내 생각이고 내 결정이 됐기 때문에 이제 와서 외압을 받았다는 건 우스운 이야기"라고 말했다.
윗선에서 항소 포기를 요구했고 자신은 항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생각이 달랐지만, 끝까지 맞서 싸울 수 없었다는 점을 내비친 대목이다.
노 대행은 또 자신의 결정은 조직을 위한 일로 떳떳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사표를 쓴 날 아침 출근길에 왜 지하가 아니라 기자들이 모인 출입문으로 걸어 들어갔는지 아느냐"고 반문하며 "조직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고, 그래서 떳떳했기 때문에 정문으로 출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퇴임식에서도 노 대행은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정문으로 들어가고 퇴청했다.
◆ 與 이참에 '검찰파면법' 강행... "내부 우려를 항명으로 보는 것 안타까워"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더불어민주당 문금주•백승아•김현정 원내대변인(오른쪽부터)이 14일 국회 의안과에 검찰청법•검사징계법개정안을 제출하고 있다. 2025.11.14 pangbin@newspim.com
노만석 대행은 스스로 '대장동 항소 포기'에 책임을 진다며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이미 항소 포기 외압 논란이 정쟁으로 번진 만큼 검찰 조직은 외풍에 더욱 크게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곧바로 검찰총장을 포함한 검사를 탄핵 절차 없이 일반 공무원처럼 파면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검찰청법 개정안('검사 파면법')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들을 '정치검사'로 규정하며 '검사 힘 빼기'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7일 노만석 대행이 서울중앙지검 지휘부와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의 항소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항소 불허 지휘를 한 이후, 전국 검사장 18명은 노 대행에게 항소 포기 경위를 설명하라고 요구했고, 참모진인 대검 부장(검사장)들까지 노 대행을 찾아가 사임을 요구한 바 있다.
노 대행은 이에 대해 퇴임사에서 "검찰 구성원들이 검찰의 기능과 정치적 중립성 등에 대한 전반적인 우려를 내부적으로 전한 것임에도, 이를 항명이나 집단행동으로 보는 일부 시각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는 조희영 전주지검 인권보호관이 글을 올려 "검사의 징계를 일반 공무원보다 엄격하게 하는 것은 '정치적 중립'을 위해서라고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다"며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대한 검찰 내부 반발을 '정치 검사들의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검사들의 반발을 가용한 법적·행정적 수단을 총동원해 저지·분쇄하겠다'며 발의한 법안이 '검사 파면법'이라고 한다"고 비판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유사 입법으로 검사 파면을 강화해도 실질적으로 검찰 업무의 성격상 파면 요건에 해당할 만한 사례가 많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조직 독립성과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위축될 수 있다"면서 "이번 법안은 당장의 정치적 시그널이나 검찰 견제 성격이 강하고, 실무적으로는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검찰의 반발을 무조건 정치적 행동으로 몰아가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우려했다.
abc123@newspim.com2025-11-14 15:20
"기생 왕수복, 광대 조건 다 갖춘 인물"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신개념 국악 방송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 제2화의 2-1편이 19일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 유튜브 채널 '뉴스핌TV'와 'K스팟(K·SPOT)'을 통해 공개됐다.
앞서 제1화에서는 올해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준비됐다. 제1화 '광복'에서는 제1편 '작금'을 시작으로 2편 '김구, 판소리 배우다', 3편 '이승만과 아리랑', 4편 '광복군'이 공개됐다.
제2화는 '기생'을 주제로 다루며, 이날 2-1편에서는 '왕수복, 기생이 되다'를 주제로 한 내용이 공개됐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 제2화 제2-1편이 공개됐다. 본편은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TV의 유튜브 채널 '뉴스핌TV'와 'K·SPOT'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맨 왼쪽부터 최한이, 변상문. 2025.11.13 alice09@newspim.com
왕수복은 1917년 평양에서 태어나 2003년 사망했으며, 조선 민요를 세계에 알렸던 기생이기도 하다.왕수복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성격은 쾌활하고 명랑했다고 한다. 당시 잡지 '삼천리'에서는 '왕수복의 목소리가 청아했다', '우리 민족의 한의 정서를 잘 표현했다'고 평했다.
평안남도 강동군 입성면 남경리에서 태어난 왕수복은 , 화전을 일구는 농사꾼의 4남매 중 셋째다. 아버지가 이름을 '성실'로 지었으나 할머니가 '수복'으로 바꾸었고, 훗날 불같은 사랑을 나눈 소설가 이효석은 왕수복을 '실'로 불렀다.
변사로 나선 변상문 이사장은 왕수복에 대해 "그 당시 언론에서 표현하기를 '목소리가 청아했다', '조선민족의 전통적인 정서인 한을 아주 잘 표현했다'라고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7살 어린 나이에 부잣집 아이들 뒷바라지를 해주는 일을 했다. 그때 풍금 소리를 듣고 마음 속에 내재된 소리를 하게 되고, 이를 듣게 된 선생님의 추천으로 명륜 여자 공립 보통학교에 다니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 제2화 제2-1편이 공개됐다. 본편은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TV의 유튜브 채널 '뉴스핌TV'와 'K·SPOT'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맨 왼쪽부터 최한이, 변상문. 2025.11.13 alice09@newspim.com
변 이사장은 "가난해서 3년 다니다 학교를 그만두게 되고, 이후 어머니한테 기생을 권유받고, 기생 권번에 입학하게 됐다. 그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소리'였다. 가곡, 민요, 시조, 판소리 등을 배웠다"고 소개했다.
최한이 소리꾼은 "정가(가곡·시조), 민요, 판소리 등이 전통음악의 3대장이다. 저는 국악 중·고등학교를 통해 정가를 배웠는데, 변사님은 알고 계시나"라고 질문했다.
이에 변 이사장은 "시조는 가난한 사람들이 장구 장단에 맞춰서 부르는 것이고, 삼현육각 제대로 깔고 부르면 가곡이 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최 소리꾼은 "'가난'이라고 말하신 것은 개그인 걸 알고 있다. 삼현육각 편성 유무에 따라 정가가 나뉘기도 한다"라며 "시조는 한시와 고시를 가지고 운율을 붙여서 부르는 노래로, 사랑방 음악이라고도 불린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 제2화 제2-1편이 공개됐다. 본편은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TV의 유튜브 채널 '뉴스핌TV'와 'K·SPOT'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맨 왼쪽부터 최한이, 변상문. 2025.11.13 alice09@newspim.com
이어 "맑은 소리는 경기 민요, 한의 정서는 판소리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진도 아리랑' 한 구절을 가창했다. 그러자 변 이사장은 "우리 음악은 애이불비(슬프지만 겉으로는 슬픔을 나타내지 않다는 뜻)하고 낙이불류(즐거워도 지나치게 들뜨지 않다라는 뜻)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절제의 미악이 바로 우리의 소리"라고 정의했다.
또한 변 이사장은 "왕수복은 이렇게 노래뿐만 아니라 춤, 거문고, 가야금, 해금 등 악기도 배웠다"고 말했다. 이에 최한이 소리꾼은 즉석에서 가야금 연주를 선보였다.
이후 최한이는 광대(조선 말 소리하는 사람을 표현하는 말)에 얽힌 판소리를 가창하며 "광대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 번째는 인물치레, 두 번째 말 잘하는 사설치레, 그리고 다음이 득음이고 춤"이라며 "왕수복은 이를 다 갖춘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alice09@newspim.com2025-11-14 16:05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Caterpillar Inc.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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