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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마리아 칼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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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24)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개막식 때 아테네 주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소프라노 가수 마리아 칼라스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장내는 잠시 숙연해지기도 하였다.
“My Life is My Work. My Work is My Life.” 라 말했던 마리아 칼라스! 그녀는 어릴 적 어머니에게 “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오페라 가수가 될 거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얘기를 하게 할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마리아 칼라스를 두고 흔히들 '오페라의 프리마돈나, '오페라의 여신', '오페라의 처음과 끝'이라고들 부른다.
오페라에서 소프라노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어서 ‘무대의 꽃’, ‘디바(Diva, 여신)’라고들 한다. 음악계에서는 소프라노의 역사를 마리아 칼라스의 전과 후(B.C, Before Callas)로 나누어 비교하고 있는데, 이는 결코 과장된 게 아니다. 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그녀에 견줄 만한 소프라노가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 칼라스는 힘찬 소프라노부터 어슴푸레한 메조소프라노까지를 소화하는 풍부하고 다양한 음색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대부분 소프라노들이 고음으로 갈수록 소리가 작아지는 반면, 마리아 칼라스의 극 고음은 중저음 못지않은 성량으로 관객들의 심금을 파고든다. 그리고 그녀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음악 속에 숨겨진 미묘한 드라마와 감정과 성격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놀라운 표현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근성도 강했다. 서른 살 무렵 2년 사이에 한때 95㎏에 달하던 체중을 30㎏이나 감량하면서 외모까지 완벽한 여신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칼라스가 라 스칼라와 메트로폴리탄 등 전 세계 최고의 오페라 극장에서 여신처럼 군림하게 된 후 평론가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두고 “낯선 은하계에서 길을 잃은 별 같다.”고 말했다. 천부적으로 맑고 고운 목소리를 타고난 소프라노가 아니면서도 감정을 담은 목소리와 풍요로운 연기력으로 듣는 이들의 가슴속을 파고들면서, 당대의 어떤 가수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개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칼라스를 '오페라의 여신'으로 불리게 한 대표적인 배역은 벨리니의 《노르마(Norma)》와 푸치니의 《토스카(Tosca)》에서의 주연 역할이었다. 그러나 칼라스에게 최고의 영예와 명성을 안겨 준 이 배역의 여주인공들이 극 중에서 겪었던 불행한 사건은 바로 칼라스의 삶 속에서도 일어났다. 사랑하는 남자의 배신, 그리고 사랑으로 인한 죽음이었다. 특히 《토스카》의 유명한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가사는 마치 칼라스의 생애를 요약한 듯하다. 노래로 세상을 얻었지만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다가 파멸과 죽음을 재촉했기 때문이다.

1923년 태어나 1977년 54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한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1923~1977). 그녀는 1923년 12월 2일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나 13세까지의 소녀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다. 본명은 마리아 칼로예로풀루(Maria Kalogeropoulos)였다. 어린 시절 뚱뚱한 외모와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주위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십대 소녀 칼라스는 오로지 한 곳 음악에 몰입하게 되었다.
대공황 이후 미국의 경제 상황이 나빠지자 칼라스의 어머니는 1937년 그녀를 데리고 고국인 그리스 아테네로 돌아간다. 여기서 그녀의 인생을 결정해준 스승 엘비라 데 이달고를 만난다. 그는 칼라스에게 성악의 기본 창법과 철학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무대 위에서의 매너와 기교까지도 가르쳤다.
1940년 11월 칼라스는 그리스 아테네 국립오페라극장에 데뷔해 일하다가 전쟁이 끝나면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뉴욕에서 배역을 얻어 보려던 노력은 계속 실패로 끝났다. 그러던 중 마침내 1947년 기회가 왔다. 이탈리아 베로나 페스티벌에서 폰키엘리의 오페라 《라 조콘다 (La Gioconda)》의 주인공 조콘다 역을 맡게 된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조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Giovanni Battista Meneghini)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만난 지 5분 만에 ‘바로 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칼라스는 회고했다. 세련됨과 교양 그리고 탁월한 예술적 감각을 지닌 오십대 초반의 사업가 메네기니는 칼라스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조언자가 되었다. 스물여섯 살의 칼라스는 28세 연상인 메네기니와 결혼하였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칼라스의 시대가 열렸다.
《라 조콘다》는 칼라스와 메네기니에겐 운명적인 의미가 있었다. 그녀가 이탈리아의 무대에 처음 출연한 것이 이 오페라였고, 두 사람의 사랑이 싹튼 것도 바로 이 오페라의 리허설 때였다. 그리고 그녀가 메네기니를 버리고 오나시스를 따라가기로 결심했을 때도 역시 《라 조콘다》를 레코딩하고 있을 때였다. 또한 칼라스가 죽음을 앞두고 쪽지에 남긴 글귀도 《라 조콘다》였다. 자살을 결심하는 극적인 장면을 보여 주는 오페라 속의 아리아 가사는 현실에서도 그녀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끔찍한 순간에/ 내게 남은 건 그대 뿐/ 그대만이 내 마음을 유혹한다/
그것은 내 운명의 마지막 부름/ 인생의 노상에서 마지막 건너야 할 길...”

1950년으로 접어들면서 그녀에게 성악가로서의 행운이 뜻밖에 찾아들었다. 칼라스는 병이 난 레나타 테발디의 대타로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 입성해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배역은 오페라 《아이다》에서의 주연 ‘아이다’ 역이었다.
당시 테발디는 ‘라 스칼라’극장의 여왕이었다. 그런데 테발디에게 예기치 않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아이다 공연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극장 측은 서둘러 대역을 쓰기로 했다. 테발디의 대타로 등장한 가수가 바로 마리아 칼라스였다. 칼라스는 당시 아직도 무명이었고, 거칠고 모난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다’의 감정을 너무나 잘 표현하는 목소리에 넋이 나간 관객들은 열광했다. 작가 헤밍웨이는 ‘황금빛 목소리를 가진 태풍’이라고 칭송했고, 공연을 본 관객마다 ‘새로운 디바가 등장했다’며 환호했다.

단 한 번의 공연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칼라스는 곧바로 스타덤에 올랐고, 그 후 오페라 팬들은 ‘마리아 칼라스 파’와 ‘레나타 테발디 파’로 갈리기 시작했다. 라 스칼라 극장은 칼라스와 전속계약을 맺기에 이른다. 1951년 스칼라극장의 브라질 공연에서 대스타였던 레나타 테발디는 신인인 마리아 칼라스와 한 무대에서 교대로 노래를 불러야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테발디는 공연 전 자신이 먼저 나서 동료들에게 앙코르를 받지 말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정작 무대에서는 자신만이 앙코르 곡을 불렀다. 당연히 테발디가 칼라스를 위시한 전 동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이 사건 이후 둘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거듭했다. 한번은 《라 트라비아타》 공연에서 테발디가 키를 반음 낮춰 부르자, 마리아 칼라스는 시사 주간지 〈타임(TIME)〉과의 인터뷰에서 “자신과 테발디를 비교하는 것은 샴페인과 김빠진 콜라를 비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두 사람의 언행과 갈등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 신문에 좋은 가십거리로 보도되었다.
1953년, 3일 간격으로 테발디가 출연하는 《라 발리(La Wally)》와 마리아 칼라스의 《메데아(Médée)》 공연이 라 스칼라 극장에서 열리게 되면서, 누가 더 많은 관객을 동원할 지가 초유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결과는 칼라스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칼라스의 공연은 표가 매진됐으나 테발디의 표는 조금 남아 있었다. 이 공연을 계기로 칼라스는 테발디를 밀쳐내고 1인자 자리에 등극한다. 이후 테발디는 이탈리아를 떠나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제2의 음악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둘은 라이벌로서 경쟁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음악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쳤고 결과적으로 관객들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오페라 토스카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부르는 디바, 마리아 칼라스 <사진=이철환>

한편, 칼라스의 명성이 높아지게 되면서 점차 극장과 지휘자와의 마찰이 잦아지게 되었다. 결국 1947년부터 시작한 밀라노의 라 스칼라 오페라단 생활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녀는 1958년 1월 2일, 로마 오페라(Opera di Roma) 극장에서 이탈리아 대통령 조반니 그론키 앞에서 《노르마》를 공연했다. 그런데 하필 그날 몸이 좋지 않았다. 결국 약을 먹고 공연하였으나, 통증과 약기운으로 인해 도중에 공연을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탈리아의 청중들은 그녀를 맹비난했고, 이 일로 칼라스는 극장 측과 격렬히 싸운 후 극장과의 관계를 청산했다.
이후 미국의 메트로폴리탄에서도 잠시 동안 몸담아 있기도 했으나, 이 역시 극장 측과의 불화로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나 1958년 12월 19일 파리에서 가진 갈라 콘서트에서 칼라스는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이때 청중 속에 있던 오나시스는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이 내린 목소리 마리아 칼라스는 그의 예술적 명성과는 달리 사랑 때문에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운명적인 여인이었다. 1950~60년대에 오페라 계를 풍미하던 그녀였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그리 순탄치 못하였다. 칼라스에게는 자신 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세 명의 남자가 있었다.
첫 번째 남자는 이탈리아의 부유한 사업가 메네기니였다. 그는 칼라스의 첫 남편이자 매니저로서 그녀를 세계 오페라 무대에 당당히 등장시킨 인물이었다. 칼라스는 1947년 베로나 아레나 공연에서 만난 28년 연상의 메네기니와 동거하다가 곧 결혼하였다. 이후 남편 메네기기가 그녀의 음반과 각종 활동비용을 후원하였기에 칼라스는 노래와 오페라에만 전념할 수가 있었다.
두 번째 남자는 대지휘자였던 툴리오 세란핀이었다. 그는 칼라스에게 오페라 가수로서의 자신감을 심어준 훌륭한 스승이었다. 세라핀과 함께한 칼라스는 한 시즌에 바그너 《발퀴레》의 브륀힐데 역과 벨리니 《청교도》의 엘비라 역을 동시에 불러 이탈리아 오페라 계를 들끓게 했다. 어떤 소프라노도 이처럼 성격이 다른 배역을 며칠 사이에 완벽하게 바꿔가며 부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남자는 세계적인 거부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Aristotle Onassis)였다. 칼라스에게 오나시스의 만남은 그녀의 비극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칼라스가 오나시스와 첫 만남을 가졌을 당시 메네기니와는 여전히 서로 사랑하는 부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오나시스의 초대로 두 사람은 오나시스의 요트를 타고 함께 여행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이 요트 여행이 끝날 즈음에 오나시스와 칼라스는 묘한 관계로 발전되었다. 이로 인해 그동안 화목했던 메네기니와의 결혼생활은 막을 내리게 된다.
칼라스는 남편이자 후원자였던 메네기니를 버리고 오나시스와 동거생활을 하게 되었다. 1960년 초에는 오나시스를 따라 상류사회의 생활과 사교계에 다니는 가운데 작품 활동이 뜸하였다. 칼라스는 메네기니와 이혼 후 오나시스와 결혼을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1957년 칼라스는 메네기니에게 먼저 이혼을 요구하였다.
오나시스는 칼라스를 철저하게 물질주의와 향락주의에 물들게 만들었다. 무대에 오르기보다는 오나시스가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하는 것을 우선으로 했고, 자신의 연주 스케줄보다는 오나시스의 스케줄에 더 몰두하며 지냈다.
칼라스는 그야말로 몇 년간을 상류사회의 향락에 빠져 지냈다. 몇몇 사람들이 그녀에게 간곡히 충고하여 다시 무대에 오르기도 했지만, 온통 오나시스 한사람 생각으로만 채워져 있던 칼라스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오나시스를 평생의 반려자로 생각하고 핑크빛 꿈에 졌어 있던 그녀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결혼을 위해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그리스 국적으로 변경하면서까지 사랑했던 오나시스가 전 미국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 케네디와 재혼을 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칼라스는 이 무렵 아기를 유산하였다. 그의 목소리에도 이상이 생겼다. 이런 저런 이유로 공연취소가 연이어졌고 그에 따른 관객들의 비난이 쇄도하였다.

오나시스의 갑작스런 배신으로 그녀는 모든 기력이 소진되어 황폐해져 버리게 되었다. 목소리는 더 이상 전성기와 같지 않았고 연주에 대한 열정 또한 사리진 지 오래였다. 칼라스는 1965년 영국 코벤트 가든에서 열린 《토스카》 공연에서의 ‘토스카’역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자신의 세월이 다 가버렸음을 알아차린 칼라스는 프랑스로 건너가 은둔생활을 하였다.
파리에서 조용한 삶을 살아가던 중 1973년부터 그 이듬해까지 절친한 친구인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와 함께 순회공연을 떠나보았다. 그러나 성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육체적으로 무리한 공연일정을 마친 얼마 후 마리아 칼라스는 또다시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자신을 철저하게 배신했지만 마지막까지 그의 여자가 되기를 원했던 오나시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것이다. 이 소식은 칼라스에게 견딜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이었다. 결국 그녀는 모든 의욕을 상실한 채 지내다 오나시스가 세상을 떠난 3년 후인 1977년 9월 16일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우울증 약물 및 수면제 과다복용 등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칼라스는 고독을 견딜 수 없을 만큼 싫어했다. 칼라스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메네기니의 친구에게 메네기니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얘기를 털어놓았다. 친구는 메네기니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칼라스를 다시 만나볼 것을 종용했으나 메네기니는 “떠난 사람이 먼저 사과하고 돌아와야 한다”며 먼저 손 내미는 것을 거절했다.
이 시대 최고 오페라 디바의 쓸쓸한 임종을 마지막까지 지켜 본 사람은 오로지 그녀의 간호사와 집사뿐이었다. 한때 자살설이 돌기도 했다. 극심한 고독에 의한 자살이라는 것이었다. 마리아 칼라스는 죽기 얼마 전 이런 얘기를 남겼다. “지금까지 노래를 사랑해 왔지만, 나에게 남는 건 사랑밖에 없더라!”

수많은 비극 오페라의 한 장면처럼 미스터리 속에 이 세상을 떠나간 마리아 칼라스. 그녀의 시신은 화장되어 납골당에 안치되었다가 살아생전 사랑했던 그리스 앞바다 에게 해에 뿌려졌다. 그 때 그녀 나이 54세였다. 이제 그녀는 갔지만 그의 목소리는 영원히 남아 지금도 온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특별한 감동으로 적시고 있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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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설상 첫 金 최가온은 누구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한국 스키·스노보드가 오랫동안 꿈꾸던 올림픽 금메달의 주인공은 17세 3개월 여고생이었다. 세화여고 3학년 최가온이 생애 첫 올림픽 무대에서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쓰며, 한국 설상 종목 사상 첫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품에 안았다. 최가온은 13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90.25점을 받아 클로이 김(미국·88.00점)과 오노 미쓰키(일본·85.00점)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선수가 스키·스노보드 종목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리비뇨 로이터=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최가온이 13일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우승한 뒤 금메달을 깨무는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26.02.13 zangpabo@newspim.com [리비뇨 로이터=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세화여고 3학년 최가온이 13일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1차 시기 부상을 털고 일어나, 3차 시기에서 클로이 김을 제치고 극적인 역전 금메달을 따낸 뒤 태극기를 든 채 미소를 짓고 있다. 2026.02.13 zangpabo@newspim.com 최가온은 이미 국제 무대에선 검증받은 올림픽 금메달 후보였다. 2023년 1월 미국 애스펀 X게임에서 14세 2개월의 나이로 슈퍼파이프를 제패하며 클로이 김의 최연소 우승 기록을 갈아치웠고, 한국 최초 X게임 금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같은 해 12월엔 월드컵 데뷔전에서 곧바로 우승을 차지하며 월드 클래스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상승 곡선은 큰 부상으로 한 차례 끊겼다. 2024년 1월 스위스 락스 월드컵 훈련 도중 허리를 크게 다쳐 척추 골절 판정을 받았고, 수술 후 1년 가까이 재활에 매달려야 했다. 유소년 시절부터 '천재 보더'로 불렸던 10대 선수에게 커리어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일격이었다. 돌아온 곳도, 방식도 드라마 같았다. 부상을 당했던 바로 그 락스에서 2025년 1월 복귀전을 치른 그는 월드컵 동메달을 따내며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중국·미국·스위스에서 열린 월드컵 하프파이프를 연달아 제패하며 출전한 월드컵을 모조리 석권하는 신화를 만들었다. 월드컵에서도 1차 시기 부진 후 역전 우승을 여러 차례 연출해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 흐름은 고스란히 올림픽까지 연결됐다. [리비뇨 로이터=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최가온이 13일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극적인 역전 금메달을 차지한 뒤 시상대에서 눈물을 터뜨리자 클로이 김이 활짝 웃으며 쳐다보고 있다. 2026.02.13 zangpabo@newspim.com 이번 대회 결선은 그야말로 최가온 커리어를 상징하는 한 편의 시나리오였다. 1차 시기 두 번째 점프에서 보드가 파이프 턱에 걸리며 크게 넘어졌다. 한동안 일어나지 못한 채 쓰러져 있었고, 의료진이 슬로프 안으로 들어와 상태를 살폈다. 2차 시기를 앞두곤 전광판에 'DNS(출전하지 않는다)'가 잠시 표기될 정도로 기권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그럼에도 그는 두 번째 런에서 다시 슬로프 위에 섰다. 하지만 2차 시기에서도 초반에 또 한 번 넘어지며 점수를 만들지 못했다. 3차 시기를 앞둔 최가온의 점수는 10.00점, 결선 12명 가운데 11위. 반면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하던 클로이 김은 이미 1차 시기에서 88.00점을 받아 여유 있게 1위를 지키고 있었다. 눈발까지 다시 굵어지며 코스가 무거워진 최악의 조건 속에서, 최가온은 무리한 1080도 회전 대신 현실적인 선택을 택했다. 1080도 이상의 초고난도 기술을 덜어내고 900도, 720도 회전으로 루틴을 재구성한 뒤, 세 번째 런을 완주하는 데 모든 걸 걸었다. 결과는 90.25점. 깔끔한 착지와 구성으로 심판 점수를 끌어올리며 단숨에 1위로 도약했다. 이제 남은 건 클로이 김의 마지막 런. 하지만 김은 2·3차 시기 모두 도중에 넘어지며 점수를 보태지 못했고, 결국 최가온의 금메달이 확정됐다. [리비뇨 로이터=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최가온이 13일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 1차 시기에서 두 번째 점프 후 보드가 눈 턱에 걸리며 넘어지고 있다. 2026.02.13 zangpabo@newspim.com [리비뇨 로이터=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최가온이 13일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 1차 시기에서 넘어지자 의료진이 달려와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2026.02.13 zangpabo@newspim.com 최가온의 출발은 거창하지 않았다. 스노보드를 취미로 즐기던 아버지를 따라 보드를 타기 시작했고, 어린 시절엔 피겨 여왕 김연아를 동경해 피겨스케이팅을 먼저 배웠다. 그러다 하프파이프 특유의 공중 연기에 매료돼 보드를 선택했고, 가족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받으며 세계 정상급 라이더로 성장했다. 겉으로는 수줍은 평범한 여고생이지만, 파이프 위에 올라서면 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한 선수라는 건 코치와 동료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대목이다. 허리 부상 당시에도 "아픈 것보다 대회에 못 나가는 게 더 속상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경쟁과 무대 자체를 갈망하는 타입이다. 이번 금메달로 그는 올림픽 여자 하프파이프 최연소 금메달리스트 자리에도 이름을 새겼다. 17세 3개월에 금메달을 목에 걸며, 2018 평창에서 17세 10개월로 금메달을 땄던 클로이 김의 최연소 우승 기록을 7개월 앞당겼다. zangpabo@newspim.com 2026-02-13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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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 '100년물 채권'에 거품 경고 [뉴욕=뉴스핌] 김민정 특파원 =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알파벳이 영국 시장에서 발행한 100년 만기 회사채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월가 전략가들은 이를 두고 "신용 시장의 사이클 후반부 과열을 보여주는 최신 신호"라며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다.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 CNBC에 따르면 알파벳은 지난 10일 영국 파운드화 채권 시장에서 10억파운드 규모(1조9600억 원)의 100년 만기 채권을 발행했다. 이는 알파벳의 첫 파운드화 표시 채권이자 총 200억달러 규모의 다중 통화 자금 조달 계획의 일부다. 이번 100년물 채권에는 발행 규모의 약 10배에 달하는 주문이 몰렸으며 발행 금리는 영국 국채 10년물보다 120bp(1.20%포인트) 높은 수준에서 결정됐다. 알파벳은 지난주 올해 자본지출 규모가 185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경쟁사인 오라클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도 인프라 지출을 늘리고 있어 빅테크 기업들의 총부채 발행 규모는 향후 5년간 3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윈드 시프트 캐피털의 빌 블레인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거래가 AI 확장을 위해 공공 및 민간 시장에서 조달되고 있는 부채가 역사적인 규모를 벗어난 수준임을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블레인 CEO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적당히 높은 쿠폰(금리)의 100년 만기 채권을 팔 기회를 포착한 점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온전한 공로를 인정한다"며 "그들은 영국 보험사와 연기금들이 부채를 충당하기 위해 원했던 수요를 명확히 파악했다"고 말했다. 알파벳.[사진=로이터 뉴스핌]  2026.02.13 mj72284@newspim.com 하지만 그는 이번 100년물 발행이 시장 거품의 증거라고 강조했다. 블레인 CEO는 "나는 100년 만기 채권이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그보다 더 거품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만약 당신이 고점의 신호를 찾고 있다면 비록 그것이 훌륭하게 실행된 거래일지라도 그것은 절대적으로 고점의 신호처럼 보인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블레인 CEO는 "AI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부채 축제'의 엄청난 규모에 대한 요점은 과거 내가 보았던 수많은 상황들을 떠올리게 한다"며 "특히 시장이 하나의 테마를 잡고 그들이 무엇을 사고 있는지 정말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 말이다"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알파벳의 이번 움직임이 자금 조달 다각화 차원이라고 분석하면서도 리스크를 우려했다. 페더레이티드 헤르메스의 나추 초칼링엄 런던 크레딧 책임자는 "알파벳이 AI 자본지출(CAPEX)을 자금 조달하기 위해 시장의 맨 끝단(초장기물)에서 파운드화 발행을 준비한 것은 흥미롭다"며 "그들은 보험사와 연기금 수요를 활용하고 미국 달러 시장의 과포화를 피하기 위해 자금 조달원을 다각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리미어 미튼의 사이먼 프라이어 채권 펀드 매니저는 100년물 발행이 여전히 "검증되지 않은 바다"라고 경고했다. 프라이어 매니저는 "구매자들은 기술 기업들이 주식 시장에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업계의 본질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란스러운 글로벌 및 현지 정치 환경 속에서 6%를 조금 넘는 수익률에 자금을 묶어두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지니치앤코의 타티아나 그레일 카스트로 공공시장 공동 대표는 이번 발행이 투자자들의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고 봤다. 그는 "당신은 그 회사가 향후 100년 동안 이자를 지급하기 위해 존재할 것이라는 점에 올라타는 것"이라며 "이건 매우 드문 일이며 심지어 정부들도 100년 만기 부채를 잘 발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화 '빅쇼트'의 실제 인물로 알려진 마이클 버리도 알파벳의 100년물 채권 발행에 우려를 표시했다. 버리는 소셜미디어 엑스(X, 옛 트위터)에 "알파벳이 100년 만기 채권 발행을 모색하고 있다"며 "이런 일이 마지막으로 있었던 것은 1997년의 모토롤라였는데 그해는 모토롤라가 거물(big deal)로 여겨졌던 마지막 해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1997년 초 모토롤라는 미국에서 시가총액 상위 25위이자 매출 상위 25위 기업이었다"며 "오늘날 모토롤라는 매출 110억달러에 불과한 시가총액 232위 기업"이라고 덧붙였다.    mj72284@newspim.com 2026-02-13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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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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