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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소재는 아직도 재벌 2세와 가진건 없지만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로멘스다. 단 한번만이라도 이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열망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갖는다. 이 책의 주인공도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이다. 이처럼 완벽한 남자가 있을까도 싶지만, 그런 남자가 나를 좋아해준다면? 그냥 미친 척하고 운명이다 생각하고 그 사랑에 빠지고 싶을 것이다. (물론, 세상에 공짜도, 완벽한 것도 없다.)
영화를 보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서 재빨리 책을 인터넷으로 주문했고 책은 정확히 하루 반만에 내 손에 도착했다. 가볍고 깔끔한 디자인의 책은 산뜻한 기분을 주었다.
이 책의 저자는 두 아이의 엄마로 소설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하다가 결국 이 책 한 권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그녀는 섬세한 묘사가 탁월한 여성이다. 성행위, 그것도 변태 성행위를 이렇게 그럴 듯하면서도 마치 그림을 그리듯 섬세하고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묘사하기란 쉽지 않다. 그 때문에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많은 여성들은 책의 남자 주인공인 그레이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사고 나서 후회했다. 한 시간 동안 절반 정도를 읽고 나서 이 책을 끝까지 봐야할까? 나머지 책들도 사서 봐야하는 걸까… 결국, 세디스트의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포장해 놓고 은밀한 그 행위를 관음증 환자처럼 들쳐 보면서 만족감을 얻어야 할까?
이 영화 뭐가 문제일까. 원제는 'Fifty of Shades of Grey'이다. shade는 그림자의 의미도 있지만, 차양, 명암의 정도, 색조, 음영을 의미하기도 한다. 좀 더 의역을 한다면 Grey 50가지 컬러(음영)정도가 좋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여러가지 컬러라고 하기에는 그의 성향이 너무 은밀하고 가학적이기 때문에 어둠이 짙은 그림자 같은 색으로 표현 될 수 있는데, 겉으로 드러내기도 어렵지만, 그 안에 아주 다양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듯한 암시를 준다. 그래서 더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도 모른다.
저자가 이 제목을 선택한 진짜 이유가 궁금해 책을 구입했다. 그레이의 치명적인 매력 뒤에 가려진 그의 음울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성행위에 대해 초점을 맞춘 느낌이다.
안타깝게도 원작이 주는 야릇하고 미묘하면서도 치명적인 마력은 영화를 보는 내내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만 그런 걸까? 이 영화의 주인공은 30살이 채 안된 미혼의 섹시한 남성이며, 엄청난 성공을 거둔 CEO다.
완벽한 외모에서 풍겨나오는 거만함과 오만함은 오롯이 그이기 때문에 용서될 수 있다. 그러나 영화에선 원작을 통해 키워왔던 그레이에 대한 환상이 무참히 깨지고 만다. 영화속 그레이는 어처구니 없게도 너무 평범했다. 내 생각엔 너무 착하고 바르게 생겼다.
또, 여 주인공은 어떤가…. 이런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섹스어필한 매력을 빼고 무얼 보라는 건지 아쉽다. 책에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던 성적인 환타지는 영화속에서 표현되기 어려웠을 수 있다.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한 관객들이라면, 또는 좀 더 신비스럽고 은밀한 것을 원했다면 아마 실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꾸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OST는 들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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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한 장면 <사진=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
물론, 이는 많은 남성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여성과 데이트를 하며 여성의 비위를 맞추는 이유는 그 여자를 내 여자로 만들기 위한 통과 의례일 수 있다는 얘기다.
영화에서 남자주인공이 집착하고 있는 성적 가학행위, 즉 일종의 변태성행위에 관해 DSM-5에서는 그 자체만으로는 이상행위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 행위로 인해 사회적, 직업적인 장애와 고통이 초래될 때에만 변태성욕장애로 진단 할 수 있다.
변태 성욕의 필수 증상은 인간이 아닌 대상, 자신이나 상대방의 고통이나 굴욕감, 소아나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과 같은 상황에서, 성적인 흥분을 강하게 일으키는 공상, 성적 충동, 성적 행동이 반복되며 적어도 6개월 이상 지속된다는 점이다. 성적 가학증은 희생자의 심리적 또는 육체적 고통(굴욕을 포함)을 통하여 성적 흥분을 얻는 행위를 중심으로, 성적 흥분을 강하게 일으키는 공상, 성적 충동, 성적 행동이 반복 되며, 적어도 6개월 이상 지속디는 증상이다.
개인의 내밀한 성행위에 대해 이것이 변태스럽다 아니다를 평가하기가 쉽지는 않고 개인의 성적 취향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그저 좀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무엇으로 규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레이가 어려서 성적으로 학대를 받은 정황들이 있고 그로 인해 상당히 고통스러워했고 이로 인해 건강한 이성관계를 맺을 수 없고 이런 변태적인 성행위를 통해서만 만족감을 얻으며, 자신과 상대방에게 고통을 안겨준다면, 이는 장애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결국 그는 그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을 사랑한 여인에게도 고통과 상처를 준다. 그레이의 실체를 알고 스틸은 그를 떠난다. 그레이는 스스로 사랑을 나누지 않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거친 섹스를 즐긴다고 할 뿐이다. 그런 그에게도 잠시 사랑의 감정이 왔었던 것일까. 스틸과 사랑을 나누지만, 그녀가 자신을 만지지 못하게 하며 그녀에게 냉담하게 대한다.
결국 그녀는 울면서 그레이에게 외친다. "나한테 가까이 오지마! 이게 당신이 원하는 거야?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는 거?"
이 말의 의미에는 '상대에게 고통을 주면서 얻는 만족감따위는 사랑이 아니야, 넌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사랑받을 자격도 없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도 볼 수 있다.
박소진 한국인지행동심리학회장(′영화 속 심리학′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