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얼마예요?”
“만 원요”
“이거는요?”
“오천 원요”
오천 원짜리 인형을 안겨주고, 경혜를 덥석 안고 추위 속을 걸어가는 마음속에 아린 햇살이 일었다.
“아빠, 저게 더 크고 이쁜데”
더 비싼 것에 미련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괜찮아, 아빠, 이것도 좋아”
미안하다. 이놈아. 속으로 눈물이 났다.
이해되지 않는 공간이 있다고 해보자. 가령, 안암동의 지하 교회. 초혼과 환상, 꿈과 계시, 천사와의 대화, 영혼의 연금술이 자유자재로 있던 곳.
세상과 역사 속의 이질 공간들. 드러나거나 숨어 있는. 수없이 생겨났다 소멸되는. 미치광이 집단으로 오인되거나 당시에는 알려지지도 않았던 것이, 시간이 흘러 역사의 진정한 발원지라고 추인되기도 하고, 반대로 화려하게 융성했다가 결국은 공멸의 씨앗이었을 뿐이라고 낙인 찍히기도 하는. 그 불가사의 및 아이러니. 슬픈 패러독스...
거기에 속한 신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지상천국이며 화락의 품, 역사의 방아쇠, 인류 구원의 절대적이고 급박한 밧줄이겠지만, 지나가는 사람들 눈에는 이교도의 비밀집회, 광신도 집단, 정신 병동, 영혼의 매음굴, 중세의 지하 동굴 등으로 비칠 것이다. 내 벽장 속 서랍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숨 막히는 열정과 타오르는 광기, 거침없는 환상과 몽상의 숨결, 마약 같은 중독성의 글들....내겐 양보할 수 없는 애정과 진실의 공간이지만 아내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싫은, 소외의 공장이요 아픔의 산실이었을 것이다.
거실 책장 속의 책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상력, 바슐라르, 이미지, 상징주의, 랭보, 프루스트, 카뮈, 보르헤스, 앙리 미쇼, 시집, 소설, 성경, 외경, 이단 연구서, 사후 세계, 외계 문명, 우주 변화의 원리, 소립자, 신과학, 신비주의, 영지주의, 연금술, 단전호흡, 고대 문명, 노장사상, 불교 서적, 벽암록, 이슬람, 힌두, 라마, 샤머니즘, 음양오행, 주역, 정역, 서양 철학사, 마르크스, 니체, 화이트헤드, 푸코, 데리다, 들뢰즈, 라캉, 르네 톰, 바타이유, 체 게바라, 국제정치론, 세계평화론, 제3세계론, 국제금융론, 증권투자, 선물, 옵션, 한국 현대사, 중국 근대사, 세계사, 러시아 혁명, 네트워크 마케팅, 해외 배낭여행, 복잡성 이론, 정신분석...
어느 한 두 갈래로 정리되지 않고 숱한 갈래로 흩어져 달리는...사오는 책들마다 무거운 숨결을 드리운 것들이고, 내가 가볍게 읽는 것도 아니고 영육의 무게를 다 실어 읽어대니...그러면서도 더 독한 갈증에 시달려 더 독한 책들에 마음을 겨우 달래고, 그런 끝없고 무모한 혼자만의 질주...몇 평 안되는 집에 방 하나의 서랍엔 광기와 몽상의 원고 뭉치가, 거실의 책장엔 그에 버금가는 종류의 책들이...
그뿐인가...몇 십년 전에 죽은 증조부의 유서를 성경이나 불경이나 철학서인양 귀중히 여겨 붉은 죽음의 액체가 뚝뚝 떨어지는 가슴을 자랑 삼아 내보여주니...그런 감정 자체도 일관성을 갖지 못한채 바람 같은 증권 시황에 따라 흔들리고 네트워크 마케팅의 재고에 따라 끌탕의 목소리로 번져오니...솜사탕처럼 가볍고 분홍빛 풍선처럼 여리기만 한 아내가 감당할 수 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