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시장은 여전히 빙판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기업들은 크건 작건 비타민 결핍된 아프리카의 검은 아이들처럼 픽픽 쓰러져나갔다. 애꿎은 중소 기업 사장들이 목을 매거나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서울역 지하도는 실업자, 노숙자들로 넘쳤다. 남편이 하루아침에 실직하는 바람에 어엿한 주부가 새벽 거리에 나와 김밥을 파는 모습도 출근길에 종종 보는 풍경이었다. 심야의
지하철 안에서 멀쩡한 신사가 술에 떡이 되어 “망가졌어, 망가졌어, 시스템이 망가졌어” 퀭한 눈을 뜨고 헛소리를 질러대는 것을 볼 때면 기분이 아찔해졌다.
텔레비전에선, 우리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은 태국의 문 닫은 은행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거리, 인도네시아 주민들의 물건 사재기, 폭동, 수상한 분위기를 연속 돌려댔다. 한치 앞이 안보이는 불안 속에, 아시아가 박살난데 이어 남미, 러시아도 디폴트에 빠질 거라느니, IMF와 미국이 배후에 있다느니, 몇 명이 짤리고, 얼마가 깎이고, 누가 행불되고 하는 소리들이 끝 없이 들렸다.
내가 속한 국제금융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코리안 리스크가 커지면서 추진 중인 딜이 속속들이 깨져나갔다. 이머징 마켓에 투자한 역외 펀드들도 감당할 수 없는 손실을 입고 있었다. 과장 진급에 세 번째나 물 먹은 상황 정도는 먹힐 계제도 안되었다.
여의도 빌딩 일층에 있는 객장에 들어서면, 고객과 브로커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주식, 외환시장에 이어 기업의 자금원이 되는 채권시장도 거의 마비상태에 있었다.
주식, 환율, 채권 모두 엉망이 되어 증권회사를 통한 기업의 외자 조달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해외 CB라는 것을 통해 기업에 외자조달을 해 주는 동시에 팀의 비즈니스를 해왔는데 그 길이 막히자 우리 팀에서는 은행에 대한 마케팅 쪽으로 눈을 돌렸다. 해외 CB 대신 해외 DR이라는 금융상품에 치중했다. 그에 대한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열심히 만들어 우량 시중은행들을 찾아다녔다.
자본주의의 심장인 은행. 증권회사보다 더 본질적이며 신체의 다른 곳에 피가 돌지 않아도 그곳만은 피가 돌아야 할 은행. 해외 DR 자료를 만들어 팀장과 함께 우량에 속하는 L은행을 방문하러 가는 회사차 안에서 나는 내심 들떠 있었다. 증권회사의 국제금융팀과는 또 다를 은행의 국제금융팀의 내부를 볼 수 있다는 호기심이 일었다. 증권은 직접금융, 은행은 간접금융이라고 회사에서 배웠는데 내가 해온 직접금융시장과 다른 간접금융의 센터를 직접 목격한다는 설레임도 있었다.
하지만 팀장과 함께 L은행의 국제금융팀 안으로 막상 들어서자 삭막한 기운이 내 몸을 덥쳤다. 국제금융팀장이라는 사람과 명함을 나누며 만났는데 그는 안절부절하며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나는 그의 그 모습에 더욱 놀랬다. 내가 속한 K 증권의 국제금융팀에서 나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IMF라는 쓰나미의 최전선이 할켜놓은 갈퀴 자국을 목격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똑같은 것이 은행, 그것도 최우량에 속하는 L은행의 국제금융팀에서도 재현된 것이다. 증권회사의 국제금융팀과 은행의 국제금융팀이 동시에 쑥대밭이 되어 있는 것이다. 외환이 중개되거나 머물 그 자리가 빈사의 얼굴로 퀭해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