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호는 호텔방을 미리 예약해 놓은 것은 아닐까. 호텔의 방 키를 둘이 만지작거리며 손짓, 눈짓, 몸짓의 향연 속에 잠겨드는 것은 아닐까. 내 가슴을 뻘건 진흙이 되도록 뭉개버린 격렬한 열정이, 한쪽의 힘겨운 의지 따위로 꺾일 수 있을까. 아니 최영호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그를 단지 내 아파트에서 새벽 한 시부터 네 시까지 만난 것이 다이다.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고 그가 입을 열도록 하지도 않았다. 그의 가슴에 무엇이 담겼는지 모른채 내 성급함에 빠져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죽음의 향기가 나도록 묵직하게 잠겨 있는 그에게서 느껴지던 구도자 같기도 한 모습.
내가 한때 미치도록 좋아한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인 히스클리프 같은 모습. 그런 직관적인 선입견에 이상하게도 매료되어 빠져있었을 뿐이다. “당신이 아내를 더 이상 학대하지 않으면 내가 현주를 양보할 수도 있소” 그 말에 담겨 있는 진정성과 헌신이나 자기 희생까지도 감당할 수 있다는 뜻에 나를 무너뜨리기도 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감동을 내가 아내에게 준 적이 있었던가. 아내의 말대로 나는 그냥 ‘기득권이 있는 사람’에 불과했던 것인가. 내가 내 아내를 지키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 사람. 최영호.
나와 삼각관계에서의 연적 사이만 아니라면 친구가 되었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무의식 속에 들었었다.
그런 그와 내 아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와 내 아내가 대학 시절에 뜨겁게 타올랐다가 시간의 공백을 두고 다시 만나 내가 모르는 어둠 속에서 또다시 타올랐다가 지금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커피숍에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
호텔이라는 단어가 나를 새삼 아프게 압박하고 있었다. 호텔이 사랑의 불로서만 치명적으로 아름답고 타오를 것 같은 착란도 오고 있었다.
인터콘티넨탈 호텔 커피숍의 긴장된 공간이 사자와 호랑이가 함께 들어앉은 동물원 같아 보이기도 했다. 두 마리 맹수가 서로의 심장 안쪽을 미칠듯한 집요함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았다. 그 집요함만으로도 나의 심장이 두 동강 날 것 같았다.
들쥐와 새 한마리가 같이 들어있는 비좁은 새장 같아 보이기도 했다. 들쥐는 가엾은 새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잡아먹을 수도 놓아줄 수도 없는 기막힌 고뇌를 하고 있을 것 같았다.
평소의 범주를 넘어서는 위험한 상상들이 나를 죽여놓고 있었다. 그쪽 공간의 긴장과 밀도가 너무 강해, 멀리 떨어진 여의도의 이 까페를 둘레에서, 바짝 감아죄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여기까지의 거리를 몽창 허물고, 까페의 실내까지, 내 테이블까지 물밀 듯이 밀고 들어와 거친 숨을 헉헉대는 것 같았다.
그 팽팽한 긴장 속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내게 익숙한 글쓰기의 에너지를 총동원해, 숨을 멎도록 조여 오는 시공의 압박을 내 두 손으로 악착같이 밀어내면서, 겨우겨우 확보해나가는 평정 속에, 심정을 짜내는 글을 써대는 것밖에는. 인터콘티넨탈 커피숍과 여의도의 낯선 까페. 그 두 개의 공간이 자아내는 불안하고 뒤섞이는 긴장 속에서, 몇 시간이고 집중되어 앉아있을 수 밖에는.
공교롭게도 그 날은, 11월 21일 한국이 부도난 날이었다.
11.21 저녁에서 자정까지. 여의도의 까페에서
재즈가 흐른다. 창 밖엔 비가 내린다. 한두 방울 떨어지더니 결국 내리고 있다.
테헤란로의 인터콘티넨탈 호텔, 아내는 그리로 차를 몰았다. 예측불허의 시간. 어떤 농도와 밀도로, 그 시간의 커피가 저어질지 모르겠다. 섬뜻, 아무도 없다. 가슴 속에 얼음칼로 베인듯한 통증이 지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