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외출은 끝없이 되풀이 되었다. 내가 결혼 생활을 반추하며 되짚어보든 결혼 전 아니 유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마음에 균열을 일으킨 계기들을 살펴보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집에 잠시 들어왔다간 위험하게 차를 몰며 다시 떠나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며칠만에 들어온 아내는 안방에 들어가 잠든 아이들 곁에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무척 탈진해 보였다. 탈진의 실제적인 이유가 명료하게 잡히지 않아 지켜보는 내 안엔 검은 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내는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아이들이 벗어놓은 양말과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개고 읽다만 동화책도 가지런히 접어 손에 들고 일어섰다. 거실의 책장으로 가져갈 때 나도 따라 나섰다. 꽂고 나선 내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닥터 최의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후 아내가 적극성을 보인 게 처음이라서 자못 당황되었다.
“최영호와 만나 가능한 모든 얘기를 터놓고 난 다음에 결론을 지을께”
아내는 짤막하게 던지고는 다시 아이들이 잠든 안방으로 들어갔다. 가슴이 착지가 되는 것 같으면서도 바닥이 푹 꺼지는 듯한 감정이 일어났다. 두려운 결말이 바로 앞에 당도한 느낌, 엄연한 실재가 저벅저벅 걸어오는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 나는 어느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착잡한 기류만이 적적한 실내 공기를 휘저었다.
결국 그 날이 왔다. 여의도의 K 증권 사무실에 출근해 있던 나는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커피숍에서 아내와 최영호가 저녁 7시에 만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필 호텔의 커피숍인지 가슴이 쓰렸지만 따지지는 않았다.
저녁 6 시경에 서둘러 퇴근을 했다. 사무실을 빠져나오는 순간부터 발걸음이 불안한 나는 그 모양으로 여의도의 어둑해지는 거리를 걸어나갔다. 가슴 속이 우왕좌왕 했다. 호텔 커피숍으로 쳐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일이 더 그르칠 거라고 간신히 눈을 뜬 이성이 힘겹게 눌러대고 있었다. 그럴수록 충동은 발작이 되려 했기에 이성과 충동 간의 모진 싸움을 가슴에 안은채 나는 불안정하게 걸어나갔다. 빌딩들엔 불빛들이 점점 밝혀지기 시작했다. 길 가의 포장마차들에서도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무작정 걸어 낯선 카페에 들어섰다.
차 한잔을 시켜 앉은 자리에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무슨 말이 서로 오갈까? 아내의 비장한 태도에 최영호는 무슨 태도를 취할까? 주도권이 누가 더 강할까?
아내가 그날 잠든 아이들을 마냥 오래 바라볼 때의 느낌으론 아이들을 버릴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아니 내가 싫으면서도 아이들을 위해 억지 마음을 일으키는 것 같아 가슴은 힘들었지만 그거라도 다행일 것 같은 나약한 마음도 내게 일었었다.
아내가 만약 헤어지자는 말을 꺼낸다면, 그 말이 최영호에게 인정되어질까. 그와 헤어지려 하는 현주의 아픈 의지를, 그가 받아들이려 할까. 편집광같은 집요함과 저돌성을 지닌 그가. 모든 것을 불사하고, 자기 생명마저 바치려는 그가.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는 어떻게 나올까.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행동을 취할까. 혹시 돌발행동이라도? 아니면, 침묵마저 녹일듯한 그의 애절하고 간절한 침잠의 심연 앞에서, 마음을 억지로 다잡고 있는 아내가 도로 흔들려버리지는 않을까. 오히려 이 일로 다시 감정의 부싯돌이 부딪히면서 걷잡을 수 없는 격정 속으로 타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호텔방이 바로 위에 있는데 그 격정을 못 이겨 당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뛰어들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