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 가버린 시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다
- 어렵고 가난했던 날들의 풍경 1
지금의 중년들이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냈던 기간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사이다. 당시의 국제상황은 치열하던 베트남전쟁이 종료될 무렵으로, 자유진영과 공산진영간의 냉전이 점차 와해되면서 해빙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시기였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북한과의 심각한 대치국면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래서 투철한 반공정신과 전체주의 사고방식이 강조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어렵기만 하던 우리의 외형적인 삶의 모습은 눈에 띄게 나아지고 있었다.
우리들의 지나간 어린 시절, 그때는 모든 것이 힘들었다. 하루 세끼를 때운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입고 사는 모습도 꾀죄죄한 것이 볼품이 없었다. 주거환경도 불결하고 열악했다. 핵가족시대가 도래하기 전이라 가족들이 옹기종기 함께 모여 사는 대가족제도였다. 자식은 재산이어서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형제들이 많다 보니 자연히 서로 다투는 일도 잦았다. 형제 중 공부 잘 하는 한두 명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도시로 떠나갔으나, 나머지는 고향에 남아 농사 등 집안일을 도우며 살아갔다. 엄격한 가부장제도로 아버지의 위세가 막강하여 아버지의 불호령이라도 떨어지는 날이면 집안 전체는 완전히 공포분위기가 되었다. 결혼은 맞선을 보아 일찌감치 하는 조혼풍습이 지배적이었다.
우선 먹고사는 것이 힘들었다. 가까스로 보릿고개를 넘어설 수가 있었다. 학교에서는 끼니를 굶는 학생들에게 옥수수 빵을 무료급식 하였다. 거리에는 거리 빵이라 불리던 국화빵 장수가 많았다. 이들은 호떡장수와 함께 우리의 입맛을 좌지우지하였다. 겨울 길거리에는 군고구마 장수와 군밤 장수가 진을 쳤다. 명동과 종로거리 등 목이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이들은 웬만한 월급쟁이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고수익을 올렸다. 또 겨울밤이면 찹쌀떡 장수들이 출출한 배를 채워 주었다. 이들은 야간통행금지 시간 이전에 장사를 끝내야 했기에 늘 시간에 쫓겨야 했다. 골목골목을 누비며 외쳐대는 그 비장함 섞인 유별난 소리에 졸음이 가시기도 하였다. “찹쌀떡 사려, 찹쌀 떠억~~.”
기찻길 옆 오막살이. 한밤중에도 지나가는 기차의 기적소리에 놀라 잠을 깨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보니 애꿎게 아이들만 하나 둘 늘어나게 되었다. 당시 주거형태는 대부분이 방이 한 두간에 불과한 판잣집이었으며 피난살이 수준을 면치 못한 상태였다. 판잣집은 새마을 사업을 거치면서 개량된 슬레이트 지붕으로 한 단계 진보하게 된다. 얼마 후에는 2층 양옥집으로 더욱 발전하게 된다. 강남이 개발되면서 부터는 아파트가 새로운 주택개념으로 정착되었다.
난방시설은 아궁이부터 시작되었다. 나무땔감을 가져다 군불을 지폈다. 온돌방의 따뜻한 아랫목을 차지하려고 형제들 간에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연탄이 등장한다. 땔감나무 재로 인해 온통 검댕을 시꺼멓게 덮어써야만 했던 부엌은 깨끗한 공간으로 변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고충이 따랐다. 이 연탄을 나르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지를 지금의 중년들은 잘 안다. 특히 겨울이 다가오면 동장군을 이기기 위해서 리어카로 연탄을 수백 장씩 날라야 했다. 그리고 헛간에 차곡차곡 쌓아올려야 했다. 또 연탄불을 꺼트리지 않으려고 어머니들은 한밤중에 일어나 연탄을 갈아야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연탄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연탄가스 중독 사고였다. 당시 신문지상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연탄가스 사고기사가 실렸다. 다행히 보일러 시설이 개발되었다.
조명시설은 호롱불과 촛불이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 전기가 집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촉수가 낮은 백열등 전구를 주로 사용하였다. 전기요금을 아끼기 위해 밤이 되면 전 가족들이 한방에 모여서 생활하기도 했다. 얼마 후 더 밝고 전기료도 싼 형광등이 등장하여 백열등을 점차 대체해 나갔다. 전기가 대중화되면서 한국전력은 한국최대의 기업이 되었으며 젊은이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장으로 떠오르게 된다.
*저자 이철환 프로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초빙위원
-현 단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재직)
*저서- 과천청사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한국경제의 선택, 14일간의 경제여행, 14일간의 (글로벌)금융여행 등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