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내력 깊은 집도 드물 것이다.
청풍명월의 고장. 무심천(無心川)이 도심 한가운데를 맑게 흐르고 소처럼 누운 우직한 우암산이 외곽을 지키고 있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청주. 중앙 대로가 뻗은 자리엔 철로가 지나고 있었고 지금 빌딩들로 둘러싸인 제법 넓은 광장엔 역이 있었다.
골목 밖으론 교복집, 만화 가게, 이발소, 전파상, 가게들이 있고, 좀 더 나가면 빵공장, 전당포, 자전거 수리점, 떡방앗간, 말이 끄는 수레들이 보인다. 긴 골목을 따라 깊숙히 들어오면, 무궁화 나무가 담 위로 소복히 솟은 기와집이 있다.
교동집. 역에서 매연이 날아와 외벽은 새까맣게 그을렸지만 안마당엔 화단이 세 개나 있어 포도 나무, 사철나무, 장미, 채송화들이 어우러져 피어 있다. 화단의 찰진 흙에 무궁화 하얀 꽃잎이 화사하게 떨어져 날리곤 했다. 내 유년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집이다. 지금은 철거되어 없어진 이 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넓은 대청마루와 시원한 펌프 물이다.
대청에 누워 뒷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불볕 같은 여름에도 살을 에일 듯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열기를 다 잊을 정도였다. 이 통풍 잘 되는 대청에 앉아 어머니가 내오는 수박 화채, 오이 냉채, 찐 감자, 삶은 고구마, 포도, 참외들을 맛있게 먹곤 했다.
쿵쾅거리며 뛰어놀기도 하고 나른한 낮잠에 빠지기도 했다.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부채 바람을 받던 곳도, 한여름밤 할머니에게 구수한 옛날 이야기를 듣던 곳도 이 대청이었다. 다듬이를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할머니가 오손도손 얘기를 나누며 하얀 빨래감을 두드리는 정경. 빨갛게 익은 고추, 냄새 고약한 메주들이 이 대청마루에 번갈아 널리곤 했다.
혁이 불러내 골목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다 땀이 범벅이 되면, 대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 웃옷을 벗어던진 채 펌프 아래 엎드렸다. 열이 확확 솟는 등 위로 쏟아지는, 지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펌프 물. 어찌나 찬지 온몸이 얼얼했다. 그 물을 바가지에 담아 벌컥벌컥 마시기도 했고, 건조해진 흙 마당에 뿌려 축축히 적시기도 했다. 그 차고 깨끗한 물에 미숫가루를 태워 먹던 맛도 잊을 수 없다. 교동집에 어둠이 깔리기 전 내 어릴 적의 단란함들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엔, 해피라는 이름의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아버지가 어디서 얻어온 것인데 어찌나 귀여운지 매일 안고 살았으며 대청마루에서 같이 뒹굴었다. 해피가 컸을 땐 등 위에 올라타도 나를 떨어뜨리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입학하자 문제가 생겼다. 등교할 때마다 졸졸 따라오는 것이었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쌓이던 어느 날 아침, 눈발을 맞으며 등교하는데 해피가 나를 계속 따라왔다. 내 앞으로 신나게 뛰어 달렸다가 내게 돌아오고, 또 앞으로 달려나가곤 했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지만 학교가 가까워오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가라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교실에 들어서자 교실 안까지 따라 들어왔다.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책상과 책상 사이를 헤집고 돌아다니며 교단까지 뛰어올랐다.
여자 아이들은 겁에 질려 소릴 질렀고 사내 아이들은 재미있다며 같이 장난을 쳐댔다. 가, 이젠 그만 가, 아무리 달래고 밀어내도 갈 생각을 않고 교실 안을 휘저었다. 창밖에는 함박눈이 날리고 조개탄을 태우는 난로 위 주전자에선 하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선생님이 올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슴이 동당거리면서 내 얼굴이 빨개졌다. 창피해서 어떻게 할 줄 몰라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제서야 해피는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