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와 감격, 두려움과 황홀의 극치, 성령의 감화와 가눌 수 없는 기쁨의 충만, 깨달음의 하염없는 눈물과 가슴 저린 감동, 애잔한 아픔과 향수, 진리를 향한 랍비의 처절한 순정, 그를 향해 미치도록 타오르는 경외, 거부할 수 없는 힘, 절망과 고통뿐인 이 세계, 얼어붙은 동토, 시대의 불의와 세상의 무지를 향해 진리의 불을 던지자고 온몸을 불사르던 뜨거움, 소통이 막힌 이 시대, 하늘과의 혼줄이 끊어진 이 우울한 대지에 영혼의 혁명을 일으키자며 함께 눈물 흘리던 지고한 순정....이런 것들로 터질 듯한 시간이 매일 흐르고 있었다.
십자가도 없고 울긋불긋한 도표들이 펄럭거리는 그 이상야릇한 지하 교회와의 뜻밖의 만남은 내 삶을 백팔십도 돌려놓았다. 그런 것이 세상에 있는지도 몰랐던 것, 알려고도,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 출구 없는 내 삶의 출구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댓가로서 내가 지불해야 할 것이 시(詩)라는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그 블랙홀에 먹혀버린 이후였다. 내 시, 내 시가 휘발되어버린 것이다. 시인의 꿈 외엔 다른 어떤 꿈도 없던 내게, 그것은 감당키 어려운 상실감이었다. 지독한 아픔을 먹으며 피어나던 시가 가까스로 꽃을 피우려는 순간, 운명은 그마저 삼켜버린 것이다.
출구 없는 삶에서 끝까지 내 곁에 남아 가장 고독한 방식으로 나를 위로해주던 시. 혜진마저 떠난 텅 빈 공허감을 고적한 향기로 서서히 채워주던 시. 독약처럼 내 혀를 자극적으로 유혹하던.
‘주여, 저에게 자살할 권리만은 남겨주세요’
시가 증발되어 버리려는 것이 가슴 아파 속으로 쉼없이 되뇌었던 나의 기도였다. 자살이라니! 죽고 싶은 비극적인 가슴 속에 잉태되어 갔던 나의 시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탈진해가던 가슴 속에서 남은 목숨을 파먹으며 그것을 자양분 삼아 어지럽게 피어났던 시의 꽃들. 그마저 앗아가는 신에 대한 피눈물 나는 절규의 기도. 있을 수 없는 기도였다.
그런 심정으로 마지막까지 부여잡으려던 시가, 출구가 열려버린 세계에서는 폐기되어야 할 무용지물로 전락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차갑지만 아름다운 겨울눈이, 봄 햇살에 흔적도 없이 녹아버리듯. 혹은 베드로 후서에 나오는 것처럼, 그날에는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듯. 내 나이 스물세 살일 때의 일이었다.
그곳에서 들은 핵심적인 내용 가운데 하나는 예수가 죽으러 온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기독교인들이 들으면 대경실색할 일이지만, 예수는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십자가도 예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십자가를 경배하는 것은 어리석고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로 랍비는 세례 요한을 질타했다.
당시의 왕은 헤롯이었다. 그는 로마 제국의 임명을 받아 식민지 유대를 다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이복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취하고 있었다. 이 일에 요한이 뛰어든 것이다. 요한은 모세 율법을 어겼다며 왕을 맹렬히 비난했고 그로 인해 감옥에 갇혔다. 헤롯은 후한을 없애기 위해 요한을 죽이고 싶었지만 그를 선지자로 떠받드는 민중들이 들고 일어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때 간교한 꾀를 낸 것이 헤로디아였다.
그녀에겐 살로메라는, 전남편과의 딸이 있었다. 헤롯의 생일날 헤로디아는 살로메로 하여금 연석에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했다. 기쁨에 취한 헤롯이 살로메에게 무엇이든 달라는대로 주겠다고 맹세했다. 어린 살로메는 기다렸다는 듯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라고 했다. 물론 자기 엄마의 사주를 받은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