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진이 떠난 후의 허전함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컸다. 그리고 그 어두침침한 지하 교회에서 다른 곳에선 들을 수 없는 굉장한 얘기들을 듣긴 했지만 내 것으로 삼진 못하고 있었다. 내 안엔 이미 시(詩)라는 고집스런 것이 육화되고 있었고, 종교 생활엔 체질적으로 잘 안맞기 때문이었다. 몇 번 그곳을 떠나려고도 했는데, 그때마다 혜진의 친구나 형제, 자매들이 내 꿈을 꿨다고도 하고, 환상을 보았다고도 하며 붙잡아서 머물러 있곤 했다.
사실 많은 의식 있는 대학생들이 그 이상한 지하 교회로 모여들었다. 서울대, 연대, 고대, 특히 이화여대생들이 많았다. 심지어는 대학교수, 직장인들, 외계문명에 관심 가진 사람들, 주역을 공부하는 학자, 운동권에 있던 대학생들, 기(氣)를 돌리는 역사들, 불교신자, 장로나 집사를 하던 사람들, 다양하고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1983년 84년, 여전히 춥고 어두운, 출구가 보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 이상한 지하 교회 안의 열기는 한마디로 용광로였다. 울긋불긋한 차트들이 펄럭거리고 십자가도 없는 그 낡은 지하실에서 세계를 몇 번이고 뒤집을 뜨거운 말씀들이 끝없이 흘러나왔다. 신도들은 그때마다 놀라움과 기쁨에 젖어 한없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성경을 판이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젊은 목사는 한마디로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나와 성경책 한 권만 들고 계룡산에 올라 처절한 고행과 수도를 한, 삼십대 초반의 그는 진정 수수했고 신령한 빛이 충만한 분이었다. 우리는 그를 랍비니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의 불같은 말씀 하나하나에 의해 우리 속에 박힌 단단한 고정관념들이 얼음판 부서지듯 부서져나갔고, 신앙과 우주에 대한 깊은 갈증과 풀리지 않는 고뇌들이 눈 녹듯 녹아 사라지곤 했다. 실로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기존 종교와 세계 전체에 가하는 충격적인 메스요 혁명적인 불칼이었다.
가령 그의 성경해석 방식은 기존의 일반론을 송두리째 뒤집으며 속 시원한 해갈을 느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지금이 어느 땐대 천동설적인 고리타분한 구습에 얽매여 있냐는 것이다.
그런 예들은 무궁무진한데 가령 창세기에 나오는 사람을 빚어 만들 때의 흙은 흙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사람을 어떻게 도자기처럼 흙으로 빚냐는 것이다. 그건 바보가 봐도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것이다. 그러면 흙이란 뭐냐, 흙 자체가 아니라 흙의 성분이라는 것. 즉 탄소, 수소, 산소 등 인체의 구성요소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실제 인간은 그러한 구성요소들의 복합체인 바 성경은 진리의 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것을 풀어쓰지 않고 흙이라 했냐 하면, 창세기가 써진 시대의 문화 수준에선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 탄소, 수소 등을 그 시대에 아무리 신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라 해도 알았겠냐는 것이다. 과학과 인지가 발달된 현대의 문화권에서는 그에 맞춰 흙의 의미를 재해석해야 하며, 이런 패러다임의 기본도 모른 채 흙이란 문자에 얽매여 곧이곧대로 흙 자체를 고수하는 종교관들은 이치에도 맞지 않고 낡았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성경은 비유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비유를 정확히 풀어야만 완벽한 성경 해석과 더불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도 마찬가지다. 첫째 날엔 빛과 어둠, 둘째 날엔 하늘, 셋째 날엔 땅과 바다, 넷째 날엔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한 것도 문자 그대로 풀면 말도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무슨 도깨비 방망이를 가졌냐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