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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톡] 서유리 "아직 보여드릴게 많아요"

기사입력 : 2013년11월18일 08:00

최종수정 : 2014년05월29일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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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이현경 기자·사진=강소연 기자]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인기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매번 그의 이름이 오른다. 그의 사진, 그가 하는 말 한마디가 대중의 눈길을 끈다. tvN ‘SNL 코리아’의 고정 크루, XTM ‘M16’의 진행자 등으로 활발하게 브라운관을 누비고 있는 서유리(29)다. 때로는 리포터로 가끔은 연기자로, 그리고 남성들과 공감하는 MC까지. 서유리는 요즘 몸이 10개라도 모자라다.

대중은 서유리를 매력 있는 얼굴과 말솜씨를 지닌 방송인으로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본업은 성우다. 서유리는 2008년 15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대원방송 성우 1기로 방송계에 데뷔했다. 20대에 성우의 꿈을 이뤘고 남들보다 빠른 사회생활이 시작됐다. 우연한 기회와 그의 성실함이 더해져 꿈의 무대에 한 발짝 더 앞서게 된 것이다.

‘될 놈은 된다’는 말처럼 미술을 전공하던 여고생 서유리에게 라디오DJ의 기회가 주어졌다. 대구가 고향인 서유리는 우연히 시내를 거닐다 지역 방송 TBC의 한 프로그램과 인터뷰를 했다. 당시 그는 표준어를 사용해 조리 있게 답변, 대번에 주목 받았다. 

“방송국 인터뷰인 것 같아 괜히 서울말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그렇게 인터뷰를 마쳤고, 프로그램 담당자가 제게 ‘말을 예쁘게 잘 한다’며 연락처를 받아갔죠. 며칠 뒤 다시 연락이 왔는데 ‘라디오 DJ를 맡아 보지 않겠느냐’더라고요. 그 방송국에 고등학생이 DJ를 맡아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는데 전 DJ가 수능 치고 학교를 서울로 가게 됐다면서요. 라디오 방송 일을 해보니 꽤 재미있었어요. 부스 안에서 목소리로 할 수 있는 일에 흥미를 느꼈죠. 제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과 연관되는 ‘성우’에 도전해보자 결심했어요.”

 

서유리는 성우 데뷔 2년 만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성우 다이어리’를 출간했다. ‘성우계의 아이돌’이라고도 불렸던 서유리는 당시 26살의 어린 나이었지만, 책을 내보자는 권유가 있었을 정도로 나름의 입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는 바쁜 활동 와중에도 자신이 직접 집필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1년간의 집필 후, 책이 비로소 세상에 나왔을 때 서유리의 기분은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듯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했던 일이 아니었나 싶어요. 당시 대원방송 전속 성우로 활동하고 있어서 무지 바빴었거든요. (전속 성우는)모든 방송의 더빙을 다 들어가요. 본래는 3~4개월 정도 집필 기간이 주어졌었는데, 저는 직접 다 써서 한 1년 정도 걸렸어요. 출간 됐을 때, 기분은 뭐랄까…정말 바닥에서 30cm 떠서 다니는 느낌이었어요. 그 날 오후 늦게까지 녹음이 있었는데, 그것도 잊고서 그냥 집으로 가버렸죠. 너무 기쁜 마음에요. 다행히 PD님께서 ‘쟤 책이 나와서 제 정신이 아니다’며 너그럽게 이해 해주셔서 잘 해결 됐어요.”

성우로서 탄탄대로를 내달리던 서유리는 tvN ‘SNL코리아’ 시즌3를 통해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냈다. 서유리는 직접 SNL코리아 오디션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성우로 대원방송에 입사할 당시에도 ‘끼가 많다’는 평을 받았다. 서유리에게 연기의 길이 시작된 건 당연한지 모른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내레이션을 하는 성우들께 SNL 시즌3 오디션에 대한 정보를 들었어요. 그전 시즌에 참여하신 ‘안쳤어’의 이상훈 선배와 김지영 선배 덕분에 SNL 제작진 측이나 장진 감독님이 성우에 대한 인식이 좋았던 듯해요. 성우는 연기도 되고, 발성도 갖춰져 있다고요. 아마 지금만큼 SNL의 인기가 높았다면 전 그때 오디션에서 떨어졌을지도 몰라요. 운이 참 좋았죠.”

SNL이 생방송으로 관객 앞에서 진행되는 무대인만큼 부담감이 분명 있을 터. 경험이 없던 서유리로선 당황스러울 법도 했다.

“아무래도 제가 연기 경험이 부족한 게 가장 문제였던 것 같아요. 정식으로 연기를 배운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울렁증이 좀 있었죠. 지금은 익숙해져서 예전보다는 무대를 즐기게 됐어요. 하지만 묘한 긴장감과 부담감은 늘 마음 한 쪽에 있어요. 특히 개그가 너무 어려워요. 시작 전 ‘오늘도 무사히 마치자’라고 항상 제 자신과 약속해요.”

서유리는 SNL에  출연에 익숙해진 사람은 그 어떤 방송도 다 해낼 것 같다고 한다. 당일 나오는 대본, 연습 중에도 계속 달라지는 내용 등 SNL은 촬영에 들어가기 10분 전까지 꼼꼼하게 체크가 반복된다. 

“상대적으로 다른 프로그램이 수월할 것 같아요. SNL은 긴장의 연속이거든요. 1차 공연에서 관객의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가차 없이 빼요. 그런데 이런 부분에 대해 크루들의 불만은 전혀 없어요. 이런 일로 트러블이 생긴 적도 없고요. SNL을 위해 크루가 존재하는 것이지 크루들을 위해 SNL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는 요즘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며 미소지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본격적으로 연기자의 길을 택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연기를 정식으로 하고 싶어요. 지금 준비도 차근차근 하고 있고요. 제대로된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거든요. 성우이다 보니 부족한 점은 많지만 아직 여러분께 보여드릴 수 있는 건 좀 있어요. 시나리오 들어 온 것도 있는데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더라고요(웃음)? 저의 롤모델은 김혜숙 선생님이에요. 오랫동안 사랑받으며 꾸준히 할 거에요. 그리고 지금처럼 팬들과 SNS로 소통하며 인간적인 연기자로 거듭나고 싶어요.”
 
[장소협찬=아트씨컴퍼니]

 

 “서유리의 연관 검색어…열파참과 노출”

서유리를 포털사이트에 검색했을 때, 가장 먼저 뜨는 연관 검색어가 ‘서유리 열파참’이다. 2007년 던전 앤 파이터 걸로 활동했던 서유리는 게임 소개 코너에서 ‘열파참’을 소리 높여 외쳤다. 네티즌들은 해당 영상에 ‘서유리의 흑역사’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6년 전 동영상에는 지금보다는 다소 앳된 서유리의 얼굴이 담겨 있다.

“흑역사까지는 아니에요. 그 시절이 있어 지금까지 온 거니까요. 사실 당시 저도 자신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어떻게 꾸며야 예쁜 건지, 매력이 뭔지 인지하지 못했죠. 그 당시 몸무게와 지금 차이는 엄청나요. 성형설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전 그 이전에 다 끝난 상태였습니다. 저 그때 쉬지 않고 방송했거든요. 성형 안 했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생각하시는 것만큼 했으면 전 계속 활동 못했을 거에요(웃음).”

김슬기가 SNL의 귀여운 캐릭터를 맡았다면, 서유리는 대표 섹시 주자였다. 서유리는 키는 작지만 8등신 비율과 글래머러스한 몸매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SNL에 클라라가 합류한 후 그의 팜므파탈 캐릭터에 위기가 온 듯했다. 질투가 많은 여자이기에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도 무시 못할 듯하다.

“클라라와 비교의 대상이 됐다는 게 기분 좋은데요. 제가 섹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사실 매회 노출, 섹시 이미지가 부각돼 걱정이었죠. ‘내가 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요. 그런데 클라라가 들어와 같이 분담해줘 오히려 좋아요. 본의 아니게 라이벌 구도로 이어지는데, 저는 경쟁심 전혀 없습니다.”

여자연예인들의 섹시어필은 대중의 큰 관심을 불러온다. 쉽게 대중의 눈길을 끌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서유리 셀카, 서유리 노출 관련 키워드는 항상 그를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여자 연예인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고충이다.

“노출이 항상 화두가 되네요(웃음). 아무래도 자극적이라서 그런가 봐요. 부담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아직까지 노출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수적인 것 같아 걱정은 있어요. 그래도 예쁘게 봐주신 것에 감사해요. 이제는 저의 새로운 매력을 많이 보여드릴테니 기대해주세요.”




[뉴스핌 Newspim] 이현경 기자 (89hklee@newspim.com)·사진 강소연 기자 (kang12@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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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문의 화랑담배] 제2회 광복군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 가릉호텔에서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식이었다. 미국 한인 동포들이 보내온 돈 4만원으로 조직한 군대였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0억 원 정도 된다.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 참모장 이범석 장군, 제1지대장 이준식, 제2지대장 고운기, 제3지대장 김학규, 제5지대장에 나월환을 임명했다. 지대장은 지금의 사단장에 해당한다. 모두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비롯하여 남북 만주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군 출신이었다. 한국광복군 훈련반 제1기 졸업사진. [사진= 독립기념관]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포고문을 통해 "국내외 동포들에게 알립니다. 1940년 9월 17일부로 대한민국 광복군을 창설하였습니다. 광복군은 1907년 8월 1일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한 날이 바로 광복군 창설일임을 선언합니다. 광복군은 구 한국군의 후신으로 33년간에 걸친 의병과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을 계승한 전통 무장 조직입니다"라고 했다. 대한제국 국군-의병-독립군의 군맥(軍脈)과 군혼(軍魂)을 분명하게 잇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부대 편성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여단, 사단 6단으로 편성하였다. 총 3개 사단을 조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원이 적은 상황에서 우선 지대를 만들고, 각 지대를 구대와 분대로 연계한 전투부대를 구성했다. 임시정부에서 1940년 9월 19일 중국 국민당 정부에 통보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직원 명단'에 의하면, 부대 규모가 총사령부와 4개 단위부대, 여기에다 조선혁명군 부대까지 포함하여 5000여 명이었다. 임시정부에서는 1941년 12월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1942년에는 미국 측에 "미국이 제주도를 해방 시켜 주면,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제주도로 옮긴 후, 광복군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 상륙작전을 전개하겠다."라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실제로 미국 OSS 부대(지금의 CIA)와 1945년 4월부터 8월까지 강도 높은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주요 훈련은 3개월 기간에 고공낙하, 암살법(권총에 특수장치를 하여 소리 없이 암살하는 방법), 통신(암호의 작성 및 해독법, 무전기 조작 및 수리), 교란 행동, 정보수집, 폭파 등 이었다. 일과는 07:00∼12:00 오전 훈련, 13:00∼18:00 오후 훈련, 19:00∼22:00 야간 훈련이었다. 주요 임무는 대한민국으로 낙하산과 잠수함으로 침투하여 미 공군 공습에 필요한 지형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일본군 군사시설 탐지 및 파괴 지하 유격대를 조직하여 연합군 상륙작전 시 제2선에서 연결하는 작전이었다. 마침내 1945년 8월 7일 모든 훈련을 마치고 국내진공작전 출정식을 개최했다. 개시일은 8월 10일이었다. 출정식 때 장준하 경기도 공작 반장은 "나는 조국광복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나의 죽음을 지불하면, 내 능력껏 그 대가가 조국을 위해서 결제될 것입니다. 나의 각오는 한 장의 정수표입니다. 발생인은 장준하, 결제인은 조국입니다"라는 유서까지 작성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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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이시바' 누구?...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직 사임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정국의 관심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로 쏠리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곧 총리직을 맡는 일본 정치 구조상 이번 총재 선거는 사실상 다음 총리를 뽑는 절차다. 자민당은 조만간 새로운 총재 선거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2024년 9월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경합했던 주요 인사들이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국 운영이 소수 여당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차기 총재가 야당과 어떻게 연대할지, 어떤 연립 구도를 짤지가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권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지난달 29~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다카이치가 23%, 고이즈미가 22%를 기록했다. 나란히 1, 2위다. 자민당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고이즈미가 32%로, 다카이치(17%)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카이치는 2024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에게 역전패했다. 고이즈미 역시 의원 표에서 선두에 올랐지만 당원 표에서 밀리며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당내 기반과 대중적 인지도를 겸비해 차기 선거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주자들이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981년생(44세)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2009년 중의원 첫 당선 이후 줄곧 '포스트 아베',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다. 환경상, 농림수산상을 거쳤으며 개혁 성향과 젊은 이미지로 지지층을 넓혔다. 2024년 총선에서 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농림수산상으로 복귀해 쌀 유통 개혁 등 농정 개혁에 매진했다. 대중적 인지도와 '고이즈미 브랜드'라는 정치 자산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1961년생(64세)으로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여성 정치인이다. 2021년 총재 선거에 첫 도전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3위를 기록했다. 2024년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의원 72표, 당원 109표)를 얻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역전 당했다. 유일한 여성 후보로서 '보수의 아이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던 의원 그룹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이시바 정권에서 당직 제안을 거절하며 독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야시·모테기 등 잠룡도 주목 고이즈미와 다카이치 두 선두 주자 외에 잠룡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옛 기시다파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시바 정권의 2인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은 당내 경험과 풍부한 인맥을 강점으로 삼고, 아소 다로 전 부총리와 교류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5선 의원으로, 동기 의원들과 옛 니카이파의 지원을 받으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 총재 선거 이후에도 정국 '안갯속'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 표를 합산하는 방식이 원칙이지만, 긴급 시에는 국회의원과 지방 지부 대표만 투표하는 '양원 의원 총회'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 표의 비중이 커져 파벌 역학이 중요해진다. 차기 총재가 선출되더라도 곧바로 정권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헌법상 총리는 국회에서 지명되는데, 자민·공명 양당은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야당이 단일 후보를 세워 결집할 경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민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더라도, 예산안·세제 개혁 법안 등 국정 운영은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차기 총재는 곧바로 '연립 확대'나 '정책 연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고,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어떤 야당과 손을 잡을지가 핵심 화두가 된다. 결국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단순히 차기 지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일본 정치가 다당제 속에서 어떤 연립 구도를 구축할지 시험대가 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goldendog@newspim.com 2025-09-0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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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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