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연춘 기자] 1960년대와 1970년대 우리나라 식량사정은 해방 이후부터 계속된 외곡의존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매년 쌀과 보리, 밀, 콩, 옥수수 등을 수입해 왔다.
1972년에는 이른바 녹색혁명으로 쌀의 자급을 이룩하기는 했지만 쌀 소비의 증가로 여전히 외미를 수입해야 할 형편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삼양라면의 등장은 식량수급과 외곡수입 절약효과 면에서 커다란 공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된다. 서민경제의 안정과 국민보건 향상에 큰 몫을 차지했던 셈이다.
삼양라면이 첫선을 보인 1963년만에도 쌀 3800여석의 대체효과를 그리고 1976년에는 145만 8000여석, 1980년에는 184만 8205석의 대체효과를 거두었다.

1963년부터 1980년까지의 판매실적에 한정시켜 계산한 쌀 대체총량은 1482만 7000여석이라는 엄청난 숫자로 이는 1980년 환율 710대 1로 환산할 때, 14억 달러 이상의 외화절감효과를 거둔 셈이다.
삼양식품은 정부의 획일적인 물가정책 아래에서도 꾸준히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맛의 다양화 및 고영양화에 힘써, 고급 라면으로 '장수면'와 '우유라면' 등을 개발함으로써 라면의 주식화에 한걸음 더 다가서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963년 이래 1980년까지 18년 동안 주종품목인 라면을 모두 100억 개나 생산, 공급한 외에도, 삼양축산을 통해 양질의 우유와 육류를 공급하여 국민소득의 증대와 더불어 고단백 영양섭취를 전제로 한 식생활개선을 위해 선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 출시되었던 패키지는 삼양라면에 기술이전을 해준 일본의 명성식품의 패키지 120만포를 수입하여 제품명만 삼양라면으로 바꿔 판매했다.
초기의 포장은 독자개발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명성식품의 포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같은 질감의 포장재에 닭 대신 옛 삼양식품의 마크인 주황색 원을 넣고 가운데에 삼양라면이라는 제품명을 넣었다
현재와 같은 패턴의 포장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초반. 이때의 포장은 현재와 거의 흡사, 전체 바탕은 주황색에 원의 색을 빨강으로 하고 삼양라면이라는 로고타입도 한결 다듬어진 서체를 사용했다.
그 후 1976년, 78년, 83년 등 여러 번에 걸쳐 바뀌었으나 제조 기술 발전에 따른 맛의 변화를 표기하는 정도로만 바뀌었다.
삼양라면 관계자는 "1994년 맛을 강화해 새로 재출시 되면서 세로 포장이던 것을 가로 형태로 바꾸고, 원안에는 요리되어있는 라면 사진을 넣었다"며 "굴림을 준 부드러운 서체의 로고 타입과 테두리에 금테를 둘러 품질과 가격에 맞는 고급스러움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이연춘 기자 (lyc@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