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우리나라 사람들의 속성을 두고 종종 '냄비 근성'이라고 한다. 금방 끓어 올랐다가 금방 식어 버려서 양은 냄비와도 같다고, 스스로를 깎아 내릴 때 그렇게 부른다.
그러나 이 냄비 근성의 일부, 그러니까 금방 끓어오를 수 있는 기운은 긍정적인 힘을 갖고 있기도 하다. 월드컵 4강 진출은 우리 국민들의 무섭게 끓어 오른 응원 열기 덕을 분명히 보았을 것이며, 한국전쟁 이후 압축적인 경제 성장의 신화 역시 그렇지 않은가 싶다. 좀 더 앞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한 독립운동도 독립선언문에 쓰여있듯 흥분신장(興奮伸張)의 힘이 기반이 되었다고 본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내밀어야 했던 치욕을 금세 딛고 일어날 수 있었던 건 불같이 일었던 벤처 붐 덕이 컸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불었던 닷컴 붐, 그리고 정부 주도의 지원책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번 불씨만 만들어지면 활활 타오를 수 있는 국민성도 배경이었음이 분명하다.
새 밀레니엄을 맞아 Y2K(Year 2000)가 우려라고 떠들어댔지만 새로운 세기(정확하게는 2001년부터가 21세기이지만)에 대한 기대감이 우려를 압도했던 그 시절, 벤처기업들은 무더기로 태어나 쑥쑥 자랐다. 흥미진진했던 그 때, 이 분야 취재를 맡아 젊고 머리 좋은 창업자들, 좋은 투자자들을 많이 만났다.
벤처기업은 대개 기술 기반이었기에 '공돌이'에서 갓 벗어난 이들이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맡았다. 그랬던 터라 어딘가 미숙해 보이기도 했지만 '미래'를 꿈꾸고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 분투하던 그들의 열정적인 모습은 대부분 아름다웠다. 물론 '돈의 맛'에 취해 추하게 몰락한 뒷모습도 많이 봐야 했지만.
가끔 10여년 전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떠올려 보곤 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소식을 간간히 접하면 반갑다. 대학원에서 교수님으로 다시 만나 진정성을 깨닫고 그 때 내가 가졌던 부정적인 이미지를 비로소 버릴 수 있게 한 분도 있다. 그러나 대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 기자의 생각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나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하긴 했으니. 그러나 이 칼럼을 읽은 한 벤처기업 창업자가 올린 트윗에서 "정확한 이유야 본인만 알겠지만 한국 언론의 취재가 유별나서에 한 표"라고 언급한 것을 봤다.
맞긴 맞다. 취재는 유별나지 않을 수가 없다. 소위 '하리꼬미(뻗치기)'라고 해서 취재원이 있는 곳에서 떠나지 않고 '잠행취재'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춥고 어두운데 취재원 집 앞에 죽치고 있는 장면은 기자를 묘사할 때 자주 나오는 장면이다.
이렇게 해도 성과가 전혀 없을 수 있지만 운 좋게 취재원과 만나 한 마디 물어봐서 특종을 하기도 하니 상사(데스크)들은 이걸 지시하지 않을 수가 없고, 본인도 자처해서 이렇게 하곤 한다. 은행장이나 정부 관계자 등 고위급 인물들이 비공개 회의를 할 때 취재하러 들어갈 수가 없으니 옆 방에서 엿듣는(어떻게 보면 도청과 다를 바가 없다) 경우도 있고, 사생활을 건드려야 하는 때도 적지 않다. 가끔 사생활까지 '까발리면서' 취재한 것을 기사화할 때 이것이 기자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팩트'라는 이유로 불필요하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고선 기자로서 존재 가치가 별로 없어지는 면도 있다. 점잖게, 주는 취재거리만 받아선 좋은 기사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굳이 트윗에 답글을 달았다. "취재는 태생적으로 유별날 수 밖에 없다"고. 그 분도 동의했다. "기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 시스템과 사회 분위기의 문제가 더 크다"고 했다. 나는 유별난 취재 행위가 취재원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음을 익히 알고 있기에 "저 역시 기자를 떠나면 기자를 안 만나고 싶다"고 농담으로 다시 답을 했다. 그러자 그 분은 "요즘은 뉴스에 나올 일을 하지 않기로 하고 잘 살고 있다"고 안부를 전했다.
그 분은 은둔하고 있지는 않다. 만들었던 회사를 떠난 후 소셜 벤처기업을 찾고 만들고 지원하고 키우는 일(인큐베이팅)을 한다. 큰 조직이 하기 어려운 일이면서, 자신이 직접 벤처기업을 창업해 일궜던 경험을 나누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말 그대로 뉴스엔 별로 나오지 않는다. 그걸 원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트윗 대화를 써서 올리는 것도 처음엔 꺼려졌지만 굳이 쓰기로 한 건 그 분이 말하고자 했던 걸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해 본다.
이젠 '공룡'으로까지 불리는 NHN을 세운 이해진 이사회 의장도 "은둔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만약 이해진 의장이 지금까지 NHN의 CEO를 맡고 있다면? 분명 언론은 "욕심이 많아 떠나지도 못한다" "아름다운 퇴장이 필요하다"며 비난했을 지도 모른다.
일찌감치 '은둔'을 택했다고 '말해진' NXC(옛 넥슨)의 김정주 회장. 김정주 회장은 회사를 경영할 때에도 언론에 나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회사는 그의 지휘 하에 크게 성장했다. 지금은 물러나 있는 그는 여전히 언론과는 접촉하지 않는다. 큰 필요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가 며칠 전까지 여린 구글 개발자 회의(I/O)에서 영감을 준 것,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이 차세대 컴퓨팅 제품 '구글 글래스'를 쓰고 다니며 적극적으로 회사를 홍보하는 것도 물론 바람직한 일이다. 그들은 창업자의 자리에서 다시 경영자의 자리로 돌아온 사람들이다. 이제는 검정색 터틀넥에 청바지를 입고 세련된 프리젠테이션과 놀라운 신제품을 시연해 보이며 감동을 줬던 스티브 잡스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다.
하지만 실리콘 밸리의 문화와 우리 문화는 많이 다르다. 그렇기에 굳이 언론 등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고 '은둔의 창업자'라며 비난할 이유는 없다. 그건 기자들의 말도 안되는 '갑(甲)' 근성의 발현일 수도 있다. 내가 취재한다는데 왜 응하지 않아서 독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지 않느냐는 논리의.

"우리의 전략은 텀블러는 텀블러 대로 두는 것(Part of our strategy here is to let Tumblr be Tumblr)"이라고.
창업자들에게 자꾸 무대로 나오라고만 하지 말자. 특히나 그 때 그 창업자들이 경영을 잘 하고 있거나 조용히, 공개하지 않은 채 벤처기업을 지원한다든지 하며 자신의 달란트를 잘 발휘하고 있다면 더욱.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