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은이 씨앗을 뿌리고 박세리(36.KDB금융그룹)가 뿌리를 내려 지금 풍성한 열매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1998년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개척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까지 그는 그 과정에서 빗겨나 있었다. 박세리가 집중조명을 받을 때 그는 없었다.
그가 미국 땅을 밟은 것은 1991년.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기 7년 전이다. 한국여자골프 미국진출의 터를 닦은 셈이다.
아마추어 시절 그는 프로 이상으로 화려했다. 1994년과 1996년 그는 미국아마추어골프협회(AJGA) ‘올해의 선수’ 상을 수상했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AJGA ‘All-American’이었다.
그는 아마추어 시절 US여자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모든 아마추어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했다. 이는 1939년 페티 버그 이후 처음이었다.
그는 2000년 프로로 데뷔한 후 LPGA투어 흥행에도 앞장섰다. 전혀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비주얼’이 되다보니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LPGA투어 대표적인 섹시골퍼였다. 2007년 미국의 한 골프전문사이트의 섹시골퍼 8인에 뽑히기도 했다. LPGA투어에 ‘배꼽티’ 열풍을 일으킨 것도 바로 그였다. 샷을 할 때 배꼽이 살짝 드러나는 옷을 입고 출전했던 것.

그는 “2001년 LPGA투어 워크숍에 참석했는데 당시 5가지 주제 중에 하나가 ‘섹스어필’이었다”며 “골프도 갤러리가 필요하고 스폰서와 관계에다 TV중계가 이뤄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섹스어필’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미국의 각 매체에서도 테니스 등과 같이 LPGA투어도 ‘섹스어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LPGA투어에서 한국여자골프의 싹을 틔운 그는 아버지(박수남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아버지의 존재를 때로는 친구였고 그냥 ‘좋은 아버지’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며 “나를 미국에 가게 해 주시고 정착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또 프로골퍼가 될 수 있도록 해 주셨기 때문에 아버지라는 존재를 한 마디로 말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사실 그가 LPGA투어에 한국여자골프의 씨앗을 뿌렸다면 그의 아버지는 밭을 간 장본인이라고 할까 그런 분이다.
[뉴스핌 Newspim] 이종달 기자 (jdgolf@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