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임직원 수만여명을 호령하는 대 그룹 총수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본가가 합법적 경영을 영위한다면 굳이 위축될 이유가 없는 게 작금의 시장 만능주의 현실이다. 오래전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자본 권력주의 얘기마저 일상화된 마당에 어떤 총수가 생뚱맞게 무얼 걱정한다는 말인가.
수십조, 수백조원의 오너일가 재산을 축적한 총수들이 두려워하는 게 있을까.
시침을 뒤로 돌려보면 바로 이 질문에 대답한 국내 1세대 총수가 있다.
현대기아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KCC그룹, 현대그룹등의 모태 그룹을 일궈낸 아산 정주영 회장은 지난 1984년 한 경영자 세미나에서 ‘현대 그룹 경영자로서 현 시점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머뭇거림이 없이 ‘정변(政變)’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기업인으로 자유당 정권, 허정 과도정부, 박정희 유신정권, 초기의 전두환 군사정권을 경험했던 아산은 30여년전에 그룹 경영자로서 ‘정변’이 가장 두렵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나)만큼 잦은 정변의 질곡에서 부대껴 온 세대(기업인)도 없을 것”이라고 당시 기업인들의 정서 한 대목을 내비췄다.
정치권력이 바뀌는 격변기 그 때에는 ‘부정축재(자)’낙인이 재벌들에게는 제일 두려웠던 것이다. 한편으론 ‘재벌’이란 단어를 싫어했던 아산은 정변기때 재벌이 ‘악의 대명사’로 비춰지는게 대단히 섭섭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국내를 넘어 세계의 그룹으로 우뚝 솟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도 ‘정변기의 정치권력’에 진절머리를 쳤다는 말들이 그와 관련된 책들속에 많이 남아있다.
“정치권력이 무엇이간대 평생을 바쳐 이룩해 놓은 한 사업가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아 가고 그것도 모자라서 건전한 기업활동까지 위축시킨다말이고”
한국비료 헌납, 동양방송 통폐합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틀이 지금도 작동하고 있는 가운데 호암 또한 어느 기업가이상으로 정치적 격변기를 매우 싫어했던 것 같다.
개발계획경제, 압축성장시대에서 한때 위용을 떨치다 명멸한 몇몇 그룹들은 ‘정변’ 언저리에서 그 최후를 맞았다.
그렇다면 오늘의 대한민국 경제무대에서 총수들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할까. 삼성의 이건희 회장과 현대차의 정몽구 회장은 무슨 고민을 품고 있을까.
아버지 세대의 그것처럼 ‘정변’을 그룹 경영자로서,오너로서 걱정하는 것일까.
정변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 보면 뜻은 이렇다. 혁명이나 쿠데타 따위의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생긴 정치상의 큰 변동.
2012년 7월,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적 성숙도를 짚어볼 때 사전적 의미의 ‘정변’이 발생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특히 아산과 호암이 활동하던 그 시대의 그런 정변같은 것은 입에 담기조차 부끄럽다.
그룹 총수들이 자신들이 청장년 시절에 일부 겪었던 과거의 정변 악몽을 떠올릴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재계 이익집단이나 씽크탱크 역할을 하는 일부 경제연구소들의 입을 빌어보면, 재계는 ‘또 다른 정치적 변혁’을 두려워하는 듯 하다. 이는 합법적이어서 더 무섭고 구속력이 클 수 있다.
대 그룹들은 ‘또 다른 정치적 변혁’으로 오는 12월 제18대 대통령을 뽑는 대선정국을, 그중 표심을 흔드는 ‘경제 민주화’ 이슈를 생각이상으로 깊게 걱정하는 것 같다.
야당은 출자총액, 금산분리, 불공정 하도급 거래법등 경제 민주화를 표방한 법안을 제출했고 여당도 일부 의원들이 ‘경제민주화 실천모임’을 만들어 야당못지않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순환출자 규제에 대한 여야간 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선가도에 들어선 정치인들은 이른바 ‘재벌 옥죄기’를 경제민주화의 첩경인냥 주창한다.
급기야 기업인의 횡령 배임등 경제범죄에 대해 형량을 강화하는, 직접적으로는 재벌 총수의 신상 구속을 강제화하는 주장마저 터져 나오고 있다. 총수가 횡령과 배임등의 혐의로 기소돼있는 몇몇 그룹들은 그저 난감할 뿐이다.
재계에서는 난무하는 경제민주화 논쟁이 나라경제 재정차원에서 감내할 수 있는지, 또 다른 폐해나 부정적 풍선효과는 없는 지를 따져든다. 산발적으로 반격은 하나 하지만 시대 흐름에 그 목소리는 그냥 묻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총수들은 더 두렵다.
재계 관계자들은 “ 세계 경제가 끝모를 불황위기를 겪고 있는 마당에 성장이슈가 배제된 경제민주화 논의는 어느 대통령이 책임을 질지 걱정스럽다”는 식의 발언을 사석에서는 자연스럽게 내놓는다.
기업가는 무엇보다도 경영 환경에 대한 불예측성을 가장 경계한다. 정치적 격변기의 불확실성과 궁극적으로 포퓰리즘을 멀리하고 싶은게 생리적 반응이다.
현 국면에서 건강한 기업가는 ‘경제 민주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하면 더 보탤 말이 없겠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미래가치는 정치권 리더만 만들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다.
글로벌 무한 경쟁시대에서 성장과 효율성이 아직은 필요한 영역이 남아 있다. / 편집국장 대우 산업부장 명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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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명재곤 기자 (su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