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시대 버냉키호(號)의 좌표를 찾아서...
이제 보다 구체적으로 취임 1주년을 넘어선 ‘버냉키호(號)’의 좌표와 진로를 탐색해 보자.
취임 무렵 ‘헬리콥터 벤’이라는 오명으로 시작한 버냉키의 행보는 연준의 금리 정상화가 일단락된 가운데 실로 위태위태한 여정의 연속으로 점철돼 왔다. 다행히 몇 차례에 걸친 커뮤니케이션 파문과 5~6월의 글로벌 금융 불안을 별 탈없이 순조롭게 넘어가면서, 그리고 유가 급등의 충격과 부동산 버블 붕괴 우려를 딛고 그는 이제 조금씩 자신의 전략을 조율, 재정립하면서 연준의 새로운 수장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하지만 체제 교체기의 ‘묘한’ 긴장감을 넘어선 지금이야말로 그의 진정한 기량이 현실 시험을 거칠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과연 ‘버냉키의 연준’은 어떤 행로로 조타를 잡아 나가고 있는가?
(1) 신뢰도 시험 일단락 이후 버냉키호의 진로
① 금리 행보의 확실성 시대 종언: “인내심 있는 접근”
마에스트로의 퇴장과 신임 의장 맞이로 뒤숭숭했을 연준은 2005년 말과 2006년 초 두 번에 걸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했다. 그동안 금리 정상화 차원에서 진행돼 온 점진적인 금리인상의 보증 수표 두 가지를 하나씩 차례로 제거한 것이다.
즉, 지난 2005년 12월 FOMC 성명서 상에서 버블 붕괴 이후 그 충격에 대응한 수용적 정책, 다시 말해 이례적인 저금리 기조의 대명사인 ‘accommodative’(수용적)라는 표현을 삭제한 데 이어, 그린스펀이 주재한 마지막 회의인 2006년 1월 31일 결국 매번 0.25%포인트씩의 점진적이고 확실한 금리인상을 표상하는 ‘measured’(측정된)라는 표현마저 삭제했다.
이제 주식시장 버블 붕괴의 여파가 일단락됐다는 것을 확증함과 동시에 금리 행보의 확실성 시대가 역시 막을 내렸음을 선포한 대목이다. 마에스트로 그린스펀 스스로 자신의 유제라 할 짐을 말끔히 정리한 셈이다.
직후 신임 의장으로 부임한 버냉키에게는 운신의 폭을 넓히고 이제 정상적인 통화정책을 운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는 점에서 일단 반가운 소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제 더 이상 금리 행보의 확실성이라는 안전판, 혹은 자동항법 장치가 없다는 점에서 연준 최고 책임자로서는 ‘초심내기’일 수밖에 없는 그의 부담은 도리어 더 커졌다고도 볼 수 있다. 둘 다 모두 적절한 진단일 것이다.
좌우간 사실상 ‘제로 베이스’에서 재출발하게 된 버냉키는 일단 금리인상 기조를 지속하는 것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4.5%로 물려받은 연방기금 금리 목표를 이후 세 번에 걸쳐 매번 0.25%포인트씩 인상하면서 지난 해 6월 5.25%로까지 끌어올린 것. 아무래도 취임을 전후해 그에게 따라붙던 ‘헬리콥터 벤’ 혹은 ‘인플레이션 온건파’라는 시선을 의식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신뢰도 입증용’인 셈이다.
물론 미국 경제 자체도 당장에는 이런 부담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경기침체의 전주곡으로 간주되는 수익률 곡선의 전도 현상이 거듭되고 부동산 버블의 붕괴 조짐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글로벌 금융 불안 조짐마저 가세하면서, 그는 점차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설” 채비를 챙겼다.
결국 버냉키 휘하 연준은 지난 2006년 8월 FOMC 회의부터 기준금리(연방기금 금리)를 동결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금리인상 기조 혹은 긴축 사이클 자체가 막을 내렸다고 결론지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무게 중심은 인플레 리스크에 두면서도, 지난 2004년 6월 이후 총 4.25%포인트에 이르는 금리인상 효과를 지켜보면서 사태 추이를 점검하겠다는 얘기. 그리고 주택 경기 급랭을 필두로 한 미국 경제의 성장 둔화 조짐, 나아가 유가 반락 역시 이런 판단에 일조했다.
이제 말 그대로 금리 행보의 원점으로 회귀한 셈이다. 이 정도면 웬만한 완충력을 확보했다는 판단에서 금리 정상화가 진짜로 막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1주년을 넘어선 지금, 연준의 수장 교체기도 별 큰 동요없이 무난히 넘어서고 있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버냉키호의 출항에 아무런 난관이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버냉키가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적극 설파하고 있지만, 정작 그 자신도 취임 직후 한동안 이런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상당한 곤혹을 치뤄야 했다.
이른바 “바티로모 게이트”(Bartiromo-Gate), 즉 미국 CNBC의 저명한 여성 앵커 마리아 바티로모(Maria Bartiromo)와의 ‘부적절한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그 단적인 예다.
2006년 4월 말 백악관 연례 통신원 만찬회에 참석했던 버냉키는 바티로모의 유도성 질문에 휘말리면서 “시장이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는 논평을 타전케 만들었다. “시장이 당신의 의회 증언[4/27]을 올바로 이해했는가?”라는 질문에 “노”라고 응수했던 것. 이 소식은 이내 미국과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에 큰 충격을 미쳤다.
이어 6월에는 미국 채권시장협회의 대표자들과 시장의 기술적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해 가진 회담에서 그가 0.5%포인트의 금리인상 가능성을 제기했다는 루머가 일면서 시장이 요동을 치기도 했다. 물론 진상은 회담에 참석한 채권 트레이더들이 금리 향방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분전했지만, 버냉키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던 것이었지만 말이다.
좌우간 이런 일련의 커뮤니케이션 파문이 당시 글로벌 금융 불안의 기폭제로 작용했었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혹은 신임 의장에게 가혹한 시장의 못된 습성(“버냉키 때리기”)이 유감없이 드러난 계기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누군가의 말처럼, “새로운 중앙은행 총재의 아킬레스건을 찾으려 했다고 해서 금융시장을 용서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도 그 충격은 일단 큰 파장없이 대체로 순조롭게 수습되고 있다. 하지만 ‘마에스트로’ 그린스펀의 ‘향수’에 아직도 젖어있는 시장은 “학자 출신”의 신임 의장에 대해 전폭적인 신뢰를 허락하지 않는 모습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紙는 시장의 이런 분위기를 “마지못한 존경심”(grudging respect)으로 표현한 바 있다.
특히 버냉키의 ‘경제 연착륙’ 전망은 2006년 하반기 중 줄곧 시장으로부터 불신감에 시달려 왔다. 이른바 “시장과 연준의 이산(divergence) 현상”이 그것. 지금도 채권시장의 수익률 곡선 전도 현상은 이어지고 있고, 또 지난 8월 연준이 금리동결에 나선 이후 금리인하가 임박했다는 시장 기대가 수그러든 것은 1주년을 맞은 2007년 1월 말 FOMC에 와서나 가능했다.
사실상 “금리 전망의 불확정적 경로”에 기반한 그의 이른바 “인내심 있는 접근”은 아직도 성공을 속단하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뉴스핌 장보형 객원이코노미스트]
※본 특집의 저자인 장보형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한신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0여년간 국내 정보컨설팅 업체인 와이즈 인포넷에서 '국제금융/경제 팀장'을 맡아 국제 금융시장과 세계 경제 동향 점검 및 이슈 분석을 전담한 후, 현재는 '글로벌 마켓 이코노미스트'로서 프리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뉴스핌 객원 이코노미스트로 합류했습니다.












